해원만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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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만이 길이다
  • 백창욱
  • 승인 2020.08.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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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진밭 아침기도회(20. 8. 13, 마태 18:23-35)

내일모레 815는 광복 75년이다. 그러나 분단 75년이며 미제 식민지 75년이기도 하다. 이렇게 긴 세월, 해방이 분단과 미제 식민지로 이어질 줄 알았으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가서 새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다. 1945년 12월 중순, 모스크바에 모인 미국소련영국의 외교책임자들은 “한국의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또 임시정부를 통해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의 4개국이 최장 5년간 신탁통치를 하고, 그 후 총선거를 실시하여 완전한 독립국가를 수립한다.”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를 필두로 언론의 보도는 정반대였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했다는 가짜뉴스로 대중을 오도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통치의 주체가 임시정부라거나, 최장 5년의 기간을 거쳐 자유 총선거에 의해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보장한다는 합의 내용에 방점이 찍히지 않고, 새로운 식민통치가 시작되는 것처럼만 인식되도록 선전한 것이다. 미국의 농간과 동아일보의 의도적인 거짓뉴스가 결정적이었다. 냉정하게 신탁통치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동아일보는 식민지배의 연장인 것처럼 보도를 해서 대중의 반탁정서에 불을 질렀다. 그 결과 남조선은 찬탁 반탁, 좌우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대립전선이 만들어졌다. 우익정치인들은 모두 반탁에 올인했다. 미국이 설계한 한반도 지배전략에 남한 대중이 보기 좋게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분단은 고착화될 것이 더욱 뻔하고 좌우 남북의 악감정을 볼 때 내전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어찌 되돌리랴. 요는 앞으로가 문제다. 한민족은 남북분단, 좌우대립을 정치적으로 극복하고 일상에서 화해평화의 세계를 누릴 수 있을까.

오늘 복음서 말씀인 하나님나라 비유의 교훈은 명확하다. 비유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참으로 어리석다. 이 종은 왕에게 일만 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빚졌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돈이다. 왕은 종을 가엾게 여겨서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자비를 입었다. 그런데 이 종은 왕의 면전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동료에게 무자비하게 굴었다.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가 돈을 갚지 않는다고 감옥에 쳐 넣은 것이다. 급기야 다른 종들이 이 종의 무자비한 행동에 분개하여 왕에게 일러바쳤다. 그래서 욕심 많은 주인공은 돈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달란트와 데나리온의 화폐가치를 따지면 이 종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자비했는지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한 데나리온은 4그람 정도의 은화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한 달란트는 20-40키로 정도의 금이다. 6000 데나리온이다. 노동자의 16년 품삯이다. 한 달란트가 이 정도니 일만 달란트는 엄청난 금액이다. 어리석고 욕심 많은 종은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는 자비를 얻었으면 자신도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에 대해 자비를 베풀 만한데 인정사정없이 행해서 완전히 인심을 잃었다. 게다가 자신도 감옥에 갇혔다. 돈 액수를 볼 때 갚을 길은 없다. 즉 평생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이 비유의 결론은 이렇다.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결론을 보니 채무관계 이야기가 아니다. 이해하기 쉬우라고 돈을 소재로 했을 뿐, 돈은 용서에 대한 은유다. 빚을 탕감 받듯이 서로가 원한 품지 말고 용서하라는 교훈이다. 보통 이 비유는 개인 대 개인에 대한 윤리로 많이 말해왔다. 하지만 나는 이 비유를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 적용하고 싶다.

해방 후 남북은 서로 끝간데 없는 적대감으로 일관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서로를 원수시했다. 이런 정서는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찬탁반탁이 빚은 좌우대립이 시발점이었고, 그 뒤 미제 지시를 받는 꼭두각시 정권의 체제이데올로기로 극단화되었다. 한국전쟁 전후로 무수한 사람들이 이념으로 죽임을 당했다. 전쟁 이후 지금까지 정권은 분단이데올로기를 악용하여 대중의 삶을 깊이 간섭했다. 이념과 그에 따른 원수 감정은 분단과 미제의 식민지배를 더욱 정당화하는 발판이 됐다. 그렇게 해방 후 지금까지 75년 긴 세월을 적대감정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어떻게 끊는가? 알고 보면 우리는 태어나서 숨 쉬고 사는 자체가 하늘과 부모와 형제와 이웃과 자연의 은혜를 입고 산다. 일만 달란트의 자비를 얻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이념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악감정을 품는 것은 지독한 어리석음이다. 해원만이 길이다. 이제 분단과 그에 따른 고착질서를 넘어서자. 서로 용서하고 자비하자. 용서와 자비의 기운에 하늘도 감응하여 사드철거투쟁에도 기운을 보태 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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