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사드빼고 죽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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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사드빼고 죽을란다"
  • 강형구
  • 승인 2020.08.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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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마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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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강도짓하며 내뱉는 협박같지 않습니까? 목숨을 구걸하는 이에게 "살려주면 네가 뭘 줄 수 있는데?"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이미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이 얘기가 어떻게 들릴까요? 적당히 타협하고 물러서라 회유하는 얘기처럼 들리지 않을까요?
이런 말들이 예수님 입에서 나오다니?!!

오늘(8.7) 성서일과(마 16:24~28)는 '그 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는 첫번째 수난 예고 후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대드는 베드로를 꾸짖은 그 때입니다.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신 그 때지요.
그렇게 꾸짖은 후,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강도짓하면서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오늘 말씀은 분명히 목숨 잃을까 두려워 하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이지요.

자기 십자가는 커녕 스승이 질 십자가조차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하는 제자들. (두 번째, 세 번째 수난예고에서는 승리의 날에 차지하게 될 지위를 두고 서로 다투기도 했었지요.)
그런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각자 십자가를 지고 오라"는 말씀이 씨가 먹히겠습니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겠지요.
이 씨도 먹히지 않는 명령이 씨가 먹히도록 만들기 위한 설득. 
바로 그 설득이 오늘 성서일과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세속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 이미 십자가를 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조롱으로 읽겠습니까?

나는 이 말씀을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 싸움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십자가를 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지는 일을 우리가 좋아서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왜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습니까?

 

지난 화요일(8.4) 수백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쓰레기차, 가스차, 부식차, PX차, 초소 수리차 등을 들여보낼 때, 비분강개하여 경찰들을 향하여 쏟아내던 백창욱목사님의 외침이 생각납니다. "차라리 죽여라! 우리에게 총을 쏴라! 우리를 밟아죽여라!"
진밭교평화교당에 나부끼는 깃발, 사무여한(死無餘恨).
기지 정문으로 올라가는 길에 민들레합창단 이름으로 게시된 현수막 구호, "죽어도 사드빼고 죽을란다!" 
민들레합창단 할머니들의 결기가 돋보입니다.

사드기지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고 있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왜 목숨을 걸었습니까?
사드 철회가 이루어진다면, 그건 우리가 건 목숨의 댓가입니까?
아니면 제자들을 설득하는 예수님 말씀처럼, 심판의 날에 주어질 '행실에 걸맞는 보상'을 바라고 사드철회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심판의 날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권세(마 19:27-30)를 바라고 사드철회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윤동주, 십자가) 시인 윤동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댓가를 바란다는 것은 희생을 거래로 바꾸는 것입니다.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거래가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강도의 협박이나 목숨을 구걸하는 이를 향한 조롱도 아니요, 적당히 타협하고 물러서라는 회유도 아닙니다.
그것은 희생을 거래로 바꾸고자 하는 제자들의 희망이 헛된 것임을 뼈아프게 새겨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제자들처럼 망설이거나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당신. 사드 철회에 목숨을 걸고 있는 당신. 당신이 그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조차도 십자가를 피할 수 있기를 피땀흘려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지기를 소망한다는 것은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나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의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 마음과 같은 그 마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미 이 시대에 부활하신 예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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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다듬는 동안에 "죽어도 사드빼고 죽을란다!"고 외치시던 할머님 한 분이 소천하셨습니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와 개발 시대를 겪어오는 동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살아오신 그 분이 아스팔트에 몸을 굴리면서까지 사드를 막겠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후손들에게 전쟁의 씨앗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그 사랑의 마음,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엇박자로 팔뚝질을 하며 부르던 님을 위한 행진곡, 경찰들에게 들려나가지 않겠다고 당신의 몸을 꼭 붙안아달라고 하시던 집실댁 장경순 할머님를 추모합니다. 
당신이 베푸셨던 사랑이 당신의 자녀들에게만 아니라 함께했던 이웃들과 진밭교 길위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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