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보살피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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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살피시는 주님
  • 양재성
  • 승인 2020.08.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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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가재울 녹색교회 하늘의 소리

우리를 보살피시는 주님.
마태복음 14장 22~33절, 로마서 10장 5~17절. 

집중 폭우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30여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고 수천 채의 가옥이 침수되었고 많은 농경지가 침수되어 그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급기야 7개 지자체를 홍수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홍수가 더 큰 피해 없이 잘 지나가길 기도할 뿐입니다. 홍수는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대만, 필리핀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번 집중 호우를 보며 노아의 홍수가 재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로 많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놀라지 말라. 내가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가만히 계시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위기로부터 구하여 주십니다.   

사진제공 : 한현실님
사진제공 : 한현실님

평화통일기도주일
  오늘은 남북한 교회가 함께 지켜온 남북평화통일기도주일입니다. 남북한 교회와 세계교회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남북교회는 지난 30년 동안이나 공동의 기도문을 만들어 광복절 직전 주일을 공동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 해는 북측 교회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 남측 교회 단독의 공동기도문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라기는 남북이 신뢰를 회복하고 분단을 청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반도를 불쌍히 여기시고 평화적 통일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빌고 또 빕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신 주님
  오늘 성서일과는 마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4장의 말씀입니다. 오병이어 사건 이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배는 거센 풍랑을 만나 몹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람들이 다 돌아가는 것을 보신 후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한 밤중이 되어 제자들이 탄 배가 거센 풍랑을 만나 몹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인지하시고 일어나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이미 한 밤중이고 배가 없으니 물위로 걸어가십니다.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를 본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는 겁에 질려 있을 때 주님께서는 “내니 두려워 말라”며 자신을 알리십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의심하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큰 소리로 “주님이시거든 나로 하여금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풍랑이 거세게 일고 있는 바다를 딛고 물위로 걸었습니다. 아마도 역사 이래 최초로 물위를 걸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다시 풍랑이 일자 베드로는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며 호소하자 주님께서는 달려가셔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건지셨습니다. 그리고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며 꾸짖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니 풍랑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큰 풍랑과 웨슬리의 회심
  웨슬리 목사는 미국 조지아 선교사로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미국까지는 두 달 정도 걸리는 긴 여행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서양 항해는 항해 도중에 많은 여객선과 무역선이 폭풍과 태풍에 난파되고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을 정도로 생명을 내건 위험한 항해였습니다. 시몬즈 호는 크게 세 번의 폭풍우와 한 번의 태풍을 만났습니다. 항해 중 폭풍을 만났는데 이때 바닥에 넘어진 감리교도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평화로운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로 곁에서 독일 모라비아교인들이 저녁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모라비아교인들은 비에 젖고 바람에 넘어지면서도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그들을 계속 눈여겨보았습니다. 같은 시간에 영국인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모라비아교인들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는 예배를 막 끝낸 그들에게 다가가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두렵지 않습니까?’그 사람은 ‘네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요한 웨슬리가 다시 ‘당신들 중에 있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네, 우리들 중에는 여자들이나 어린아이들도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죽음의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며 울고 있는 영국 교인들에게로 가서 ‘저기 모라비아교인들을 좀 보십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진제공 : 한현실님
사진제공 : 한현실님

예수는 누구신가
  예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치고 풍랑도 멈췄습니다. 배안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고백합니다. “선생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태 공동체가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이 이야기와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예수는 풍랑을 잔잔케 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셨습니다.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시는 위대한 분입니다. 예수는 역사 안에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역사 밖에서 초월적 존재로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병들게 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며, 우리를 죽음으로 내 모는 어두운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세상의 문제들로부터 우리를 보살피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마태 공동체가 이해한 예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예수는 누구입니까? 누가 한 번 이야기 해볼까요? 
  그분은 우리의 삶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우리를 보살피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예수는 삶의 의미이며 시대의 희망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요, 당신의 백성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화가들이 예수를 그렸고 최고의 음악인들이 예수를 노래하고 연주하였습니다. 최고의 작가들이 예수를 썼습니다. 최고의 지성들이 예수를 고백하였습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의 선택
  베드로는 전능하신 주님과 세상의 권세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풍랑 가운데 계신 주님께서 어서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풍랑은 베드로를 삼킬 듯 달려듭니다. 이는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과감하게 풍랑 속으로 뛰어 내립니다. 그 때였습니다. 풍랑은 베드로를 집어 삼키지 않았고 베드로는 마른 땅처럼 바다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풍랑이 거세지자 베드로는 그만 물에 빠지고 맙니다. 주님은 달려가서 그의 손을 잡아 건져내시곤 배에 오르십니다. 풍랑은 그쳤고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였느냐고 꾸짖고는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평생 믿음의 길로 가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만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믿음으로 이겨내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의심하지 않으면 바다를 걸을 수 있다고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의 부재
  오늘 우리들의 교회엔 예수가 계십니까? 과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한 건가요? 많은 분들이 웨슬리 정신을 말하곤 하는데 과연 웨슬리 정신을 알게 되면 그대로 살 수 있기나 한 것인가요? 웨슬리 목사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었는지 알고나 있는 건가요? 오늘날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배반하고, 복음의 이름으로 복음을 배반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또한 웨슬리의 이름으로 웨슬리를 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기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를 모욕하는 것은 아닌지요? 두려운 일입니다. 
  교회당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곳에 예수가 없다면 거긴 강도의 소굴이이요 그 화려함은 오히려 죄가 됩니다. 교회 공동체가 아무리 재미있고 세상을 구원할 만한 많은 봉사를 실천한다고 해도 그 속에 예수가 없다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초라한 마구간이라 해도 예수가 그곳에 계시면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가 머무는 가장 거룩한 곳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의 부재입니다. 
  예수가 없는 배는 거센 풍랑에 맥을 못 추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 없는 배에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예수 없는 교회, 예수 없는 가정, 예수 없는 기업, 예수 없는 개인의 삶은 구원이 없습니다. 작은 풍랑에도 흔들리고 넘어지고 좌절합니다. 예수가 배에 오르니 거센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안전해졌습니다. 우리 삶의 평안과 행복은 예수가 우리 배에 오르실 때, 우리 삶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오르실 때 임합니다. 

교회 출석하는 이유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에 왜 나오십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설교를 들으려고, 소원을 아뢰려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나오십니까? 정말 여러분은 교회에 왜 나오십니까? 친구 때문에, 이웃 때문에 나오십니까? 아니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보험이라도 드는 마음으로 나옵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에 도움을 얻고 싶어서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를 만나 예수를 믿고 의지하러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여러분들이 바라는 것을 모두 얻는다고 해도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소용이 없습니다. 그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벨탑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예수를 만나야합니다. 예수를 우리 삶으로 모셔야합니다. 우리들이 타고 있는 배로 예수를 모신다면 그 배는 안전합니다. 우리들 삶으로, 우리네 가정으로, 예수를 모신다면 그 가정과 삶은 안전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풍랑과 예수
  어느 날인가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배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물을 퍼내고 짐을 버리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해보았지만 더 이상 배를 유지할 수 없음을 인지하였습니다. 그 때서야 제자들은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설마 주무시고 계셨겠습니까? 제 생각엔 기도하고 계셨을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깨우고선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어떻게든 해 보라고 호소합니다. 예수께서는 바람과 풍랑을 꾸짖으시니 바람과 풍랑이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며 꾸짖습니다. 
  이 상황은 그들 배에 예수가 계셨는데도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풍랑은 찾아옵니다. 때로는 홍수나 코로나 19처럼 지구적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사업의 실패나 질병처럼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풍랑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풍랑이라도 그 풍랑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풍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예수는 풍랑을 잔잔케 할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가 계신 곳에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옥에 갇힌 자가 자유를 얻고, 무지막지하게 살던 사람들이 참 사람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을 진정으로 맡겨도 될 분은 오직 예수이십니다.    

비바람과 루터의 회심
  아버지의 권유로 에어푸르트(Erfurt) 대학 법학과에 진학한 루터는 교양과정을 마치고 법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을 찾아뵙고 친구와 함께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드넓은 벌판이 캄캄해지며 폭우가 쏟아지고 무시무시한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옆에서 함께 걷던 친구가 벼락을 맞아 루터의 눈앞에서 새까만 숯덩이로 변해버린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실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믿을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루터는 그 자리에 털썩 엎드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를 구해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벼락으로 졸지에 친구를 잃고 혼비백산한 루터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 서원이야말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인류의 역사와 1500년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쓰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과 음성으로 바울을 부르셨던 주님이 1505년 7월 2일 폭풍과 벼락으로 22세의 루터를 부르사 당신의 교회를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2주 후 루터는 법학도의 꿈을 접고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친 채 전격 에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고 종교개혁가가 되어 인류가 나아갈 길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 보살피시는 예수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온 산을 헤매고 계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코로나 19가 창궐해도 홍수가 범람해도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시고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인류의 마지막 분단국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참 평화를 주시는 주님을 믿고 나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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