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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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내 아들이다
  • 백창욱
  • 승인 2020.08.07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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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진밭 아침기도회(누가 9:28-36, 2020. 8. 6)

오늘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3일 후인 9일에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다. 원폭을 투하한 당일 수십 만 명이 죽었다. 사망원인은 60%가 섬광화상으로, 30%가 건물 잔해물로, 10%가 기타 원인이다. 그런데 그 뒤에도 피폭후유증으로 당일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두 방의 폭탄을 맞은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했고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그 덕에 한국도 졸지에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남북이 갈라진 통한의 해방이다. 그리고 분단은 75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민족을 질곡으로 몰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분단의 모순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분단이 이대로 고정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정세와 상황은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원폭을 맞아 희생된 사람은 누구인가? 일본의 보통 시민이다. 전쟁을 주도한 일본 왕이나 고위 군인, 각료들이 폭탄에 죽어야 하는데 애먼 일본 민중들만 희생자가 됐다. 그뿐인가. 일본에 사는 한국 동포들도 같은 벼락을 맞았다. 그러나 일본은 자국 시민들에게만 관심을 쓸 뿐, 한국인은 방치, 배제했다. 그 바람에 재일조선인은 이중의 설움과 고통을 당했다. 끌려간 것도 서러운 데, 원폭까지 맞았으니 나라 잃은 백성의 비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글쓴이 백창욱님은 대구새민족교회,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섬기고 있다
글쓴이 백창욱님은 대구새민족교회,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섬기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진실이 있다. 미국은 원폭을 실전에 쓴 유일한 나라다. 원폭의 결과가 어떤 재앙을 초래하는가를 잘 알면서도 그 폭탄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의 호전성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미국의 호전성은 비단 태평양 전쟁 때뿐이 아니다. 건국 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말살하며 자기들의 제국을 세워 나갔고, 지금까지도 지구 전역에서 수많은 나라들을 배후 조종하여 미국의 욕망을 관철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미국에 빌붙은 정권은 자국의 민중들과 민주시민들을 수없이 죽이고 고문하고 옥에 가두며 미국의 이익에 복종해 왔다. 한국도 가장 선도적으로 미국의 욕망에 복종하며 지금까지 흘러왔다. 언제까지 이런 굴욕의 역사를 지탱할 것인지, 과연 이 나라는 자주독립을 찾을 수 있을지 광복절 때마다 한탄을 금할 수 없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가 산에서 변모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뜻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기 위해 하늘 기운을 덧입히는 내용이다. 우선 예수의 옷이 눈부시게 빛난다. 이것은 예수가 하늘영광 즉 신성을 입었다는 뜻이다. 자아가 가득한 인성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인성을 넘어 신성을 덧입는 일은 필수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두 전설인 모세와 엘리아를 상봉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한 뜻은 무엇일까? 신학교 때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그간 나온 내용을 종합하면,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두 사람 다 산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크게 경험한 사람이기에, 예수도 산에서 같은 경험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오늘 새로운 해석을 보태자면,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 모두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사람이다. 자고로 무슨 운동을 하든, 예수가 하는 하나님나라 운동 역시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 가능하다. 사람이 호응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점에서 예수는 모세와 엘리아에게 운동과 민중의 함수관계를 전수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결정적인 일이 일어난다. 하늘에서 소리가 난다. 소리 내용은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이다. 하늘에서 소리가 난 것은 하나님나라 운동의 결정적 국면에서 예수에게 큰 영감과 힘이 될 것은 분명하다. 아들과 아버지는 동일체다. 하늘에서 예수를 아들이라 칭한 것은 하나님과 예수가 동일체라는 선언이다. 율법 기득권세력들은 자신들이 늘 하나님을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며 민중을 주눅 들게 하는데, 그런 세력에 굴하지 말고 민중을 구하는 예수운동을 더욱 힘차게 전개하라는 뜻이다.

미제가 일으킨 평화와 원폭의 형용모순은 75년이 흐른 지금, 한국 땅 성주 소성리에서 평화와 사드라는 똑같은 형용모순을 범하고 있다. 한반도 재앙의 근원인 사드가 평화를 보장하는 것처럼 거짓선전을 일삼는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통탄스러운 일은 미제의 음모에 한국의 한미동맹주의자들이 장단 맞추고 있는 현실이다. 미제의 동북아지배에 부화뇌동하여 제 나라 시민들 짓밟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미동맹주의자들이 미국에 빌붙는 것을 평화라고 선전하지 못하도록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해야 한다. 거짓과 기만투성이인 사드배치를 단호히 거부하고 저항하는 건 하나님 자녀인 우리의 책무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악한 자들의 탐욕과 전쟁으로 떨어지게 할 수는 없다. 고로 사드철거투쟁은 세상을 참 평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예수가 십자가를 견뎌서 세상을 구원한 것처럼, 사드철거투쟁에 매진하여 미제에 종속된 나라를 깨우자. 지난한 투쟁이지만 견디고 견디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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