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문(20. 7. 26) 성령강림 후 여덟 번째 주일
창 29:15-30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요즘 『하느님의 강』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부제는 “그리스도교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류를 찾아서”입니다. 부제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강은 그리스도교 역사와 종교의 배경 전체를 말합니다. 고대 근동부터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좌우하는 물줄기가 하느님의 강입니다. 하느님의 강은 기원전 3200년경 아직 글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초대 그리스도교를 거쳐서, 그 이후까지, 수천 년 동안 여러 문화권을 흐르며 확대되었습니다. 강을 이루는 주요 지류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문화입니다. 이들 지류는 각각 큰 강에 내용물을 제공했는데, 하느님의 강은 이들 없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강 하구에 형성되는 삼각주처럼, 하느님의 강은 그리스도교의 삼각주를 이루었습니다. 하느님의 강 삼각주는 예수의 삶과 그리스도교의 발단이 됐으며, 이 삼각주를 통과한 갈래들은 예수가 죽은 이후에 일어난 여러 그리스도교 운동들이 됐습니다.

한 부모에게서 서로 많이 다른 형제자매가 생겨나듯이, 삼각주에서 여러 강줄기가 나오듯이, 하느님의 강은 서로 크게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교를 생성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참 교리이고 무엇이 거짓 교리인지를 판명할 중앙 권력제도가 없었습니다. 그 권위는 교단들 간의 경쟁 속에서 서서히 발전했으며, 특히 2세기 후반부터 근 300년이 지나는 동안, 유대적 그리스도교인, 영지주의적 그리스도교인 및 자칭 정통주의자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생겨난 정통은 그 자체 역시 하느님의 강의 산물입니다.
『하느님의 강』은 그리스도교의 다섯 가지 핵심주제들을 다룹니다. 1. 다신에서 유일신론의 등장, 2. 유일신에서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 3. 악마와 종말론 사상의 대두, 4. 인간의 영혼과 육체 개념의 발전과 결과, 5.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출현입니다. 제가 이 책을 주목한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강』은 다섯 가지 개념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발달사입니다. 이 말은 지금 그리스도교에서 절대교리로 자리잡고 있는 개념들이 처음부터 그리 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이 각각의 개념들이 문화에 따라 달리 이해되었고, 어떤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각각의 개념이 발달하는 데에는 여러 세기가 걸렸으며 여러 전통이 함께 기여한 결과입니다. 영감을 받은 개인들과 신앙 공동체는 위기 때마다, 서로 경쟁하고 혹은 상반되는 사상을 받아들여 융합시켰습니다. 새로운 형태는 오래된 형태와 병행하여 존재했습니다. 그 각각은 단계적으로 진보하고 변형하고 혹은 퇴보하며 마침내 그리스도교 교리를 형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일신론의 발달과 우리의 신 인식에 제일 중요한 공헌은 이스라엘이나 고대 종교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고대 과학에서 나왔습니다. 우주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이해가 신과 신들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옛날 작게만 여겼던 우주는 실제로 엄청나게 큰 것임이 판명됐습니다. 일 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던 것으로 여겼던 하늘 천장까지의 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고정된 별들이 있는 궁창은 더 이상 벽돌 탑이 닿을만한 거리에 있지 않고, 수학적 계산으로 거의 무한대의 먼 거리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느님은 이제 어디 있나요? 이 새로운 우주관은 하느님을 이전의 입장과 개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을 옮겨 놓았습니다. 우주를 관리하던 옛날의 작은 신들은 새롭게 알게 된 유일신으로 대치되었습니다. 과학으로 밝혀진 우주의 실체가 그리스도교 신 개념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뜻입니다.
오늘 성서본문은 야곱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장면을 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원을 밝힙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열두 지파로 발전했습니다. 알다시피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 결속력의 바탕입니다. 열두 지파의 동맹관계가 이스라엘을 구성했습니다. 깨져서는 안 되는 동맹관계를 설명하는 기원이 야곱의 열두 아들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야곱과 네 아내로부터 나왔습니다. 오늘 성서는 야곱에게 어떻게 네 아내가 생겼는지를 증언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두 아들은 야곱의 계획이 전혀 아닙니다. 아들을 많이 낳아서 열두 지파를 이루어서 이스라엘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은 단 일 푼도 없었습니다. 야곱은 그저 한 여인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야곱이 네 명의 아내를 가진 건 전부 라반의 계획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농간에 희생돼서 자신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세 여인까지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야곱으로서는 허망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야곱만 이런 경우를 겪는 건 아닙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예상하지 못한 걸림돌과 변수의 연속이라는 것, 이렇게 얽히고설킨 관계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칠년을 노동한 대가로 사랑하는 여인을 배필로 맞이하여 첫날밤을 치르고 난 다음날 아침, 상대가 라헬이 아니고 레아인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 즉시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의 복을 가로챈 일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곱이 그런 생각이 났는지 안 났는지는 몰라도, 창세기 작가의 의도는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속았다는 이야기를 하므로, 독자들로 하여금 야곱이 에서를 속인 일이 떠오르라는 것입니다. 독자인 우리는 이 대목을 접할 때, 아... 뿌린 대로 거두는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구나, 그러므로 겸손히 서로 존중하며 순리대로 살아야 해... 등등의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또다시 칠 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이는 야곱의 계획이 다 수포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님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알콩달콩 사는 꿈을 수없이 꾸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생전 리브가의 꿈이기도 했습니다.(창 27:46) 그러나 야곱은 이제나저제나 그리워하는 어머니 리브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야곱은 자신을 덮친 실존위기를 어떻게 견뎠나요?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태도에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를 속인 외삼촌에게 딱 한 번 항의하는 거(25절) 말고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라반에 대한 분노와 화병으로 앓아눕지 않았습니다. 무엇에 중독돼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수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하였다.”(28절) “그는 또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하였다.”(30절) 성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말없이 다시 시작하는 야곱의 태도를 조용히 웅변합니다.
야곱을 온전히 견디게 한 힘은 무엇인가요? 라헬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안에 야곱의 라헬 사랑이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18절)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20절)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30절)
사람마다 세상을 사는 동기와 이유가 각각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사랑으로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본인이 계획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을 이루었습니다. 여러분을 움직이는 기운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사랑의 힘으로 사십시오. 구체적으로 사랑의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을 위하는 마음이 솟구치게 하십시오. 사랑은 괴력을 낳기도 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여러 목자들이 힘을 합해야 움직일 수 있는 우물을 덮은 큰 돌을 야곱은 홀로 돌을 굴려내고 라헬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창 29:10) 이렇게 사랑은 통상적인 범위를 극복합니다. 자기를 초월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의 불길을 불어넣어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사랑의 기운이 지류가 되고 그 지류들이 모아져서 하느님의 강이 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