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부산민주화운동의 순교자 임기윤 목사
상태바
5.18과 부산민주화운동의 순교자 임기윤 목사
  • 박철
  • 승인 2020.07.21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18은 40년이 지났지만 현재진행형이다

 

7월 26일 오후4시 5.18국립묘역 경내 <역사의 문>에서 고 임기윤 목사의 40주기 추도예배가 박철 목사의 인도로 열릴 예정이다.

돌아오는 7월 26일은 고 임기윤 목사(林基潤 1922~1980)의 40주기가 되는 날이다. 부산 시민들 중에 임기윤 목사를 아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임기윤 목사는 1980년 7월 26일, 5.18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관련 참고인으로 보안사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숨졌다. 임기윤 목사의 죽음은 당시 계엄군의 보도검열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40년이 지나도록 임기윤 목사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았고 조명 받지 못했다.

임기윤 목사 생전 모습

임기윤 목사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군 오신면 석정리에서 임찬하의 4남으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 조만식(曺晩植) 선생의 지도 아래 청년 운동을 하던 중 소련군의 체포령이 내려져 남하하게 되었다. 남하 도중에 소련군들에게 포위되어 일시 위기에 빠지기도 하였는데, 이때 탈출에 성공하면 목회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남하 후 1951년 중앙신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중앙신학교 사회사업과를 졸업하였다. 신학과를 졸업한 후 제주도 조천 지방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50년대 후반 임기윤 목사는 부산으로 이주하여, 1958년 부산제일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였다. 1966년 기독교대한감리교 목사로 안수 받았다.

1970년대 들어 임기윤 목사는 본격적으로 진보적인 기독교 운동에 뛰어들었다. 1971년에서 1972년에 걸쳐 부산기독교연합회 총무를 지내는 한편, 1971년 7월부터는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1975년 2월 임기윤 목사는 개신교와 구교(가톨릭)의 목회자들로 구성된 ‘사회정의구현 부산기독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여기에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중시하는 부산의 진보적 종교인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침례교와 성결교를 포함하는 개신교 목회자들로는 최성묵·김광일·심응섭·김정광 목사 등이 참여하였고, 가톨릭에서는 송기인(宋基寅)·오수영 신부 등이 참여하였다.

‘사회정의구현 부산기독인회’는 함석헌(咸錫憲)·서남동(徐南同)·문동환(文東煥)과 같은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유신 체제에 대한 반대 운동을 조직해 나갔다. 1976년에는 역시 신교·구교의 목회자들이 결성한 부산교회인권선교협의회가 창립되었는데, 회장에는 임기윤, 부회장에 송기인(宋基寅)과 최성묵이 취임하였다. 1979년에 임기윤 목사는 부산신학교 운영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앙연회 부산 지방 감리사를 맡았다. 한편으로 이 시기에 임기윤 목사는 함석헌 등 당시 재야인사들과 교유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대중(金大中) 등 정치범의 가족들을 지원하였다.

1980년 신군부는 5·16 쿠데타를 감행하면서 부산 지역 민주 인사들에 대하여 두 가지 입장을 취하였다. 그간 김대중과 관련되는 활동을 하였거나 민주화 운동을 전개한 인사들은 연행하여 구속하였고, 임기윤 목사와 같이 그동안 요시찰 대상으로 점찍어 두었던 인사들에 대해서는 예방적 차원에서 이전의 활동에 대한 조사와 일종의 정신 교육 또는 순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임기윤 목사는 교회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설교를 하였는데, 며칠 뒤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가 제일교회 교인의 이름으로 우송되었으며, 설교 때문에 경찰이 찾아와 전두환(全斗煥)의 통치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하였다. 이때 임기윤 목사는 “정치 잘하고 있다고 말 못한다.”라고 응답하였다. 이 때문에 임기윤 목사는 1980년 7월 18일 부산지구계엄합동수사단으로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1980년 조찬기도회

다음 날인 7월 19일에 임기윤 목사는 국군보안사령부 부산분실(일명 삼일공사, 현재 부산지방 병무청 자리)로 출두하였다. 이곳에서 임기윤 목사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관련 참고인으로 조사받던 중 7월 21일 12시 30분경 혼수상태에 빠져 부산 지구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이후 부산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7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임기윤목사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국군보안사령부는 가혹 행위를 부정하고 고혈압을 원인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유족들은 평소 혈압이 80~150 정도였고, 혈압으로 인한 이상 증상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더구나 부인 최광명 사모는 뒷머리 왼쪽이 3센티 가량 찢어져 피가 말라 붙어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북의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 남하했던 민족주의자 임기윤 목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군사독재정권에게 있어서 그는 민주질서를 무너뜨리는 불순한 ‘공산주의자’였고 무슨 이유를 달아서라도 ‘제거’해야 할 인물로 낙인찍혔던 것이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의 조사 결과, 합동수사단은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없는 임기윤 목사를 3일 동안이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사를 계속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쓰며 진술을 강요하는 조사관과의 언쟁으로 인해 평소 지병인 고혈압 증세가 순간적으로 악화되면서 뇌출혈로 운명하였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유가족과 관계자들은 1999년 5월 국립 5·18 민주 묘지로 이장하기 위하여 유골을 수습할 때에 두개골 부분에 외부의 가격(加擊)에 의해 생긴 것이 확실한 금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묘소는 1999년 5월에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34번지 국립 5·18 민주 묘지에 마련되었다.

5.15국립묘역 임기윤 목사 묘소

임기윤 목사가 세상을 떠나신지 4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어느 새 40년이 흐른 지금, 그만큼 성장한 민주주의 덕분에 이젠 5.18정신을 짓밟는 망언조차 가능해졌다는 것은 기막힌 현실이다. 이것조차 역사발전의 열매라면 참 희극적이고, 또 비극적이다.

민주주의는 이루어졌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를 부추기는 정론을 가장한 왜곡언론, 가짜뉴스, 막말논쟁은 민주주의가 더욱 견고히 서야 함을 일깨워 준다. 행여 우리 사회의 부족함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언제까지 광주로 대표되는 시민정신에 의존할 것인가? 정의, 민주주의, 평화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질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 결정되어질 때, 우리는 똑똑하게 그 죽음의 내면을 응시하여야 한다. 결코 열사들의 분신이나 투신을 미화하거나 찬양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몸을 던질 수밖에 얼었던 조국의 현실, 당시 정권의 구조적 타살 혐의에 그 숨겨진 사실에 대해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 임기윤 목사가 죽어가면서 외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토록 강한 신념과 의지를 불태우며 일구고자 했던 아름다운 삶의 이상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임기윤 목사는 불의한 세력 앞에 모르는 척 했으면 그만이다. 얼마든지 살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멀리 떠나가게 해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며 마지막 기도를 바치고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처럼, 임기윤 목사는 생명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생명의 모독을 너무나 참을 수 없어서 우리를 대신해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간 것이다. 그러한 불의한 세상에서는 목숨 연명 그 자체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며 죄악일 수도 있다는 것을 광주의 5월은 가르쳐주고 있다.

1980년 스러진 임기윤 목사가 소망한 아름다운 오월은 아직 꽃피지 않았다. 5.18은 40년이 지났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임기윤 목사의 삶과 죽음은 ‘그 때 거기’ 그 아픔, 그 비참, 그 절망 속에 하느님이 함께 하셨다는 고백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희망은 하느님의 공의를 믿는 우리의 죽음과 삶과 더불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오월에 대한 믿음이다.

박철 / 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샘터교회 원로목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