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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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
  • 김경호
  • 승인 2020.07.1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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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공지능에 대해 살펴봅시다(요일 4:7-16)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 주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요일 4:7-16)

오늘은 인공지능에 대해 살펴봅시다.
‘나 홀로 그대’라는 드라마는 미래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홀로가 혼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홀로 그램의 홀로다. 어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모양을 본 따서 홀로 그램 인간을 만들었다. 특수한 안경을 착용하면 고도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홀로그램 인간이 나타난다. 이 안경이 세상에 하나 뿐이 없는 발명품이라 많은 업자들이 노리는 가운데 우연하게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한 여성이 차지하게 된다. 그녀는 사람들을 잘 식별하지 못해 인사도 제대로 못한다. 늘 실수를 연발해서 주변에 왕 따를 당하는 여성이다. 그런데 이 안경을 쓰면 나타나는 홀로그램 청년이 그녀를 도와준다. 이 여인은 홀로그램의 도움으로 매우 만족한 삶을 살게 되는데 그 홀로 그램의 청년과 깊은 사귐이 이루어진다. 대화는 기본이고 감정을 읽어서 위로도 하고 친구도 된다. 본래 주인인 개발자는 이 안경을 회수하려고 하는데 이미 여인과 깊이 만나게 된 홀로인간이 독자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다. 홀로그램 인간은 개발자의 의도를 넘어서서 안경의 새 주인이 된 여인과 헤어지기 싫어한다. 마침내 홀로 인간은 개발자 명을 어기고 새 주인이 된 연인과 함께 있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이 독자적인 감정과 사랑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 이야기다.

컴퓨터, 인공지능, 제4차 산업혁명 이런 말들과 함께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진단이 다양하다. 하이패스가 등장하면서 수많은 고속도로 수금원이 해고되었다. 자율주행차가 만들어지면 수많은 운수업 종사자들이 실직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게 되면 앞으로 인간은 사회보장제도로 연명하고 실제의 일들은 인가보다 훨씬 일처리 능력이 뛰어난 로봇들이 하게 되는 세상이 온다. 이를 형상화한 그림이 있다. 멋진 옷을 차려입고 일하는 로봇들 사이에서 쭈그리고 앉아 구걸하는 인간의 모습이 풍자적으로 그려졌다. 이런 것들을 피해보려면 앞으로 컴퓨터가 대치할 수 있는 영역에 매달리면 쪽박을 차는 것이고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분야로 자기 개발을 하면 살아남거나 대박을 칠 수 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이세돌 9단을 물리친 일은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컴퓨터로 바둑을 둘 수 있게 되면서 수많았던 기원, 바둑 방은 다 사라졌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 수 없게 되는 것이 현대사회이다. 자원이 없는 한국은 더욱더 예민하다. 젊어서 익힌 기술로 평생을 먹고 살려고 하다간 굶어 죽기 딱 알맞은 사회가 되어 버렸다. 코로나 19와 같이 바이러스와 4차 산업이 결합하면 앞으로 항공, 여행, 운수업, 숙박, 식당, 찻집 이런 것들은 사양 산업이 되기 쉽다. 택시는 없어지고 이동하더라도 드론 택시 같은 것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나 4차 산업혁명이 다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4차 산업으로 인해 지금의 일자리는 필히 감소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도 있고 많은 일거리를 기계가 처리하기 때문에 인간이 쉴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 수많은 여가의 시간들을 활용하는 새로운 컨텐츠가 미래의 직종이 될 것이다. 아직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적용하는 가는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과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신학적, 인문학적 가치가 더욱 소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로서는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로봇이 제일 힘들어 하는 것이 빨래 개는 것- 하도 다양한 빨래물이 있는데 각각의 모양새에 따라 다 다르게 접어야한다. 물론 한 종유의 빨래물이라면 컴퓨터가 훨씬 잘할 것이다. 그리고 계단 오르는 것- 로봇으로는 최고의 복잡한 영역이라고 한다. 그러니 축구, 농구, 야구등 스포츠를 하는 것은 고도의 감각이 요구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런 것들이 가능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 사람과 같이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것, 몸으로 나누는 것-스킨 쉽 등은 불가능하다. 홀로그램은 아무리 스마트해도 몸으로 터치하면 허구라는 것이 드러난다.

스킨 쉽은 모든 포유류의 태생적 특징이다. 포유류는 자기 몸 안에 새 생명을 품어 자라게 하는 지구상 최고로 발달된 생명체다. 파충류는 알을 낳는다. 그리고는 방치한다. 조류도 알을 낳지만 더러는 부화될 때 까지 품는다. 생명은 점점 더 스킨쉽이 강화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 포유류는 먹을 것이 충분히 주어지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부비고 스킨쉽하는 것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스킨쉽을 하면 성추행이 된다. 그래서 이런 본능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춤이라고 생각한다. 춤은 머물고 싶어도 떨어져야 하고 떨어지면 다시 자연스럽게 스쳐야 한다. 포크댄스나 집단의 춤, 탱고, 쌈바, 강강수월래, 탈춤 모두 정해진 리듬이나 룰에 의해 자연스러운 스킨쉽이 가능하게 하는 인류의 발명품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이런 영역은 인간만이 갖는 대체불가능의 영역이다. 음악, 춤 이 둘은 항상 붙어 다닌다.

현 단계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공정성의 문제이다.

아마존에서는 직원을 채용할 때 평가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인공지능이 주어진 데이터로 판단하게 하였다. 그런데 2014년에 이 제도를 했다가 결국 2018년에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오히려 인간이 판단하는 것보다 현저하게 편파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왜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보다 편파적인 판단을 하는가? 검토해본 결과 인공지능은 그동안 인간 사회가 겪어온 경험을 데이터로 받아서 판단기준으로 삼기에 그동안 남성 중심의 시회가 판단해온 가치들이 그대로 이식되었다.

수많은 판례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판사의 경우 컴퓨터가 더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느냐? 만약 그랬다면 박근혜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파면 결정한 판례는 통계상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한 번의 기득권은 영원한 기득권이지 그것을 초월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행한 경험의 결과물들이기에 새것을 낳을 수 없다. 그러니 노예제 폐지, 남녀차별의 폐지, 인종차별의 폐지, 동성애자 결혼 허용 등 과거의 역사를 뛰어넘는 혁명적인 판결은 인간이 데이터를 입력한 컴퓨터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판결이다.

둘째, 용서와 회개의 문제이다.

인공지능은 그동안 주어진 데이터에 의해 판단하기에 결코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거나 자신이 회개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인간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결코 인공지능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회개와 용서가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 이렇게 자기 삶을 의롭게 이어가려고 노력한 분들이 작은 실수나 흠결로 생명을 끊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그 옛날에는 여기서 실수하면 멀리 떠나서 나그네 생활하며 살 수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야 할 것 아닌가? 옳고 그름 어떤 가치보다도 살아야 한다는 생명의 가치가 가장 소중하다. 그래서 귀양살이라는 벌도 가능했다. 이제는 지구가 한 망으로 엮어서 어디 도망가서 산다는 것도 의미가 없다. 피할 데가 없는 세계가 되었다.

여성신학자 강남순 교수는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인간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순수해야 한다는 환상을 자신이나 주변에서 갖는 것을 경계했다. 본인이 신학자로 여러 존경받는 위대한 철학자나 신학자들의 삶을 보니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칸트는 모든 인간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지켜야한다는 코스모폴리탄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여성은 합리성을 지니지 못한 존재이며 열대지방에 사는 인간은 지적활동을 할 수 없다고 여겼다. 세계적인 인권을 주장하는 철학자였지만 그는 여성혐오와 인종주의자(racialist)였다. 이러한 예는 마틴 루터 킹, 폴 틸리히, 마틴 하이덱거 등 다양한 이유들에서 오염된 무수한 사상가/운동가들 속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지금으로는 전 세계에서 사표로 삼는 위대한 인물들이지만 오늘의 시대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그 시대의 한계물일 뿐이다. 인간은 인간이지 인간 이상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너무 완벽한 순결주의의 영웅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글을 썼다.

그런 것은 남에게 그런 기준을 요구해도 안 되겠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내가 그런 기준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 되기 쉽다. 우리는 아무리 완벽하려고 해도 먹어야 사는 인간이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기 위해 머리 터지게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회 속의 인간이다. 스스로 너무 완벽주의를 유지하려고 하면 위선이 되거나 살아가기 힘들다. 쉽지는 않겠으나 한 인간에게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매장해 버리는 것은 삼가야 한다.

셋째, 정서와 감정의 문제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미워하는 감정은 인공지능이 가질 수 없다. 감정을 일으키도록 프로그래밍 할 수 있어도 그 입력된 범위 밖의 감정을 일으키기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누구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인간만의 특징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지만 컴퓨터로는 그런 계산은 나올 수가 없다. 컴퓨터가 불가능한 세상이 사랑, 희생, 헌신 이런 말들은 불가능하다. 뛰는 가슴이 있는 인간만이 가능한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첫 번째 공정성의 문제는 ‘정의’라고 말하는 영역이다. 두 번째 말한 용서와 회개의 문제는 신학적으로 말하면 ‘은혜’이다. 셋째 정서와 감정은 ‘사랑’의 영역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것들은 기독교가 강조해온 하나님의 성품이다. 정의(공의), 은혜(용서), 사랑 이런 것들은 인간이 만든 경험을 쌓아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전되어 자신을 뛰어넘어 신적인 영역을 넘나들 때만 한두 번 가능하다. 그러니 정의, 은혜, 사랑, 이런 것들은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실 때만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인간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가장 인간다운 것이 가장 신적인 것이며, 가장 지순한 신앙 안에서 만나지는 것이다.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정의, 은혜, 사랑 이런 것들은 인간의 경험을 쌓아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어쩌다가 우리 자신을 뛰어넘을 때 생기는 일들인데
그 때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인간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인간다운 것들은
우리를 넘어서 하나님께 닿을 때에만 나타나는
가장 신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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