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씨앗 속에서 희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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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씨앗 속에서 희망 보기
  • 양재성
  • 승인 2020.07.13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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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도 희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마태복음 13장 1~9절)

▪ 씨 뿌리는 비유
  오늘 성서 일과는 마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3장의 말씀입니다. 13장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여러 비유로 말씀하시던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한 농부가 씨를 뿌리매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비옥한 땅에 떨어졌습니다. 각기 싹이 낫지만 길가에 떨어진 씨앗의 싹은 땅이 굳어 뿌리가 깊지 않음으로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고, 돌밭에 뿌려진 씨앗의 싹은 햇볕에 타버렸고 말라버렸으며,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의 싹은 가시덤불이 기운을 막아 자라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의 싹은 무럭무럭 자라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 비유의 해석
  씨앗이 길가에 떨어졌다는 의미는 하늘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이요, 악마가 와서 그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고, 돌밭에 떨어졌다는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그 말씀으로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잡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졌다는 의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100배나 나은 삶을 삽니다. 

▪ 나는 애도한다
  '박원순'이라는 한 사람이, 7월 10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매듭지었습니다. 그에게 공적으로 붙여진 이름은 '서울시장'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인간'이기도 했습니다. 
  강남순은 애도 글에서 데리다의 “매 죽음마다 세계의 종국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명선을 놓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에 대하여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애도라고 말합니다. ‘애도한다’는 것은 ‘박원순과 함께 박원순을 넘어서 생각하기’를 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하는 데리다의 말이 담고 있는 바, 한 죽음 앞에서 우리 각자의 ‘인간됨’을 실천하는 예의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놓고 벌어지는 일이 가관입니다. 조문을 가겠다느니 가지 않겠다느니, 마치 중범죄 다루듯 정죄하는 이들과 한 인간의 고귀한 삶과 죽음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갈등하며 이를 놓고 이해득실을 가리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들, 그의 죽음의 현장에서 ‘파안대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란 도대체 누구인가’를 묻게 됩니다.  
  박원순은 법조인답게 자신의 죄에 자신의 법을 들이댔습니다. 너무나 가혹하게 사형이고 그는 스스로 그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어제 한현실 권사와 문선경 권사님과 시청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 분향을 하였습니다. 대성통곡을 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고 많은 분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헌데 한 쪽 구석에서는 박원순이가 뭐 잘 한 거 있다고 나랏돈으로 장례를 치루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루는 것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지, 그리고 무례한 사회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강남순은 독일에서 본 사잔 한 장을 기억합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유대인들이 해방되자 ‘가해자’인 독일 군인들을 발가벗기고 죽여서 그 주검을 수용소 철조망에 걸어놓고 조롱하는 사진입니다. 강남순은 이 사진을 보면서 소위 ‘피해자’들 역시 이러한 끔찍한 ‘가해자’의 모습을 품고 있는 ‘인간’임을 충격적으로 확인합니다. 인간 속에는 ‘피해자-가해자’의 가능성이 언제나 복합적으로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어떤 표지가 붙었든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애도’하는 것, 인간으로서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방식입니다. 그 누구의 죽음이라도 ‘조롱받을 죽음’이란 이 세계에 없습니다. 죽음을 선택한 그와 ‘함께,’ 그리고 그를 ‘넘어서’ 보다 인간의 권리가 확장되는 서울, 한국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제를 우리 각자의 어깨위에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강남순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의 정치사에서 여러 가지 소중한 업적을 남긴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애도한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아무런 흠 없는 ‘순수’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닌 여러 가지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 죽음마다 세계의 종국”이기 때문이랍니다. 

▪ 씨앗을 파는 가게
한 여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은 다름 아닌 천사였습니다. 
이 가게에서 무엇을 파느냐고 여인이 물었습니다.  
천사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팝니다!” 
여인은 놀랬습니다. 
한 참을 생각한 여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사랑, 행복과 지혜,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십시오.“
천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부인. 이 가게에서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이 가게는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신앙이란 씨앗을 사는 일이요. 그 씨앗으로 나무를 만드는 일입니다.

▪ 믿음의 힘
  예수님이 처음 일으킨 기적을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은 마리아의 희망적인 생각, 즉 믿음에서 나옵니다. 마리아는 이 문제의 해결을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그 분이면 해결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금방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예수의 생각이 변하여 기적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생각이 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사야서는 신비의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이 사자와 함께 놀고 호랑이가 소처럼 풀을 뜯어먹고 어린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고 사막에 강물이 흐르는 개벽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이 정말 올까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기우뚱합니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세상은 절대로 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그 얘기를 듣고는 가능합니다. 단 사람이 바뀌면 가능합니다. 
  인류가 꿈꾸는 이상 사회 건설, 하나님 나라의 실현도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데서 시작됩니다. 바뀐 사람. 변화된 사람. 깨어 있는 사람. 좋은 세상을 품은 사람이 시대를 구원하고 세상에 희망을 줄 것입니다. 

▪ 밀알이 된 사람
  예수님의 복음을 가장 적절하게 담고 있는 이야기가 한 알의 밀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을 가르치는 비유이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부탁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정신은 밀알의 비유 속에 다 담겨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씨앗은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그러기에 농부들은 굶어서 죽을지언정 종자는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종자는 당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고 미래의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씨앗 속에 담겨져 있는 비밀을 캐 봅시다. 씨앗은 이미 그 속에 나무와 꽃과 열매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대로 있다는 말씀은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 주인이 오자 내어 놓았더니 주인은 그 하나를 빼앗았고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야단을 치고 어두운 곳으로 추방하였습니다. 
  씨앗이 그 가치를 최대한 발휘하려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죽는다는 말은 희생을 말합니다. 안 죽으면 한 알 그대로 있으되 죽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작은 씨앗 속에 어찌 저 큰 나무가 들어 있었고 그 아름다운 꽃들이 숨어 있었냐며 놀라게 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죽으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오히려 기적을 만듭니다. 죽어야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 박노해 시인의 희망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인간과 희망
  사람이 주인이 된 세계관이 세상을 망쳐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망가진 세상을 살 릴 수 있는 길을 자연에서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박노해는 오랜 고난과 시련 속에서 그 비밀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가능적 존재라고 합니다.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아집과 탐욕에 노예가 되어 살면 악마적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그 뜻에 순종하여 살면 천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시인의 말은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깨어 있는 인간이 희망인 셈입니다. 그 속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시대를 직시하고 시대의 요청에 정직하게 응답하며 책임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변화된 사람이 희망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희망입니다. 
  거대한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그 속에 있는 3%의 소금 때문이랍니다. 3%의 소금만 있어도 바다는 썩지 않습니다. 그 오만가지 오염된 물을 다 받는데도 바다는 살아있습니다. 3%의 소금 때문이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썩어도 이 3%의 소금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금은 그 맛을 낼 때만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소금임을 명심하십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집니다. 버려져 세상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지금 교회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위태위태합니다.  

▪ 희망으로 초대하기
  어느 때보다도 희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에겐 무엇이 희망입니까? 집값이 올라 경제적 이득을 얻는 일입니까?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부동산 정책이 수도 없이 바뀌고 있지만 이를 조롱이라도 하듯 부동산 가격은 올랐습니다. 이번 7.10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어도 실패할 거라고 야단입니다. 가진 자들의 바램이지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나 떨어진 걸 보면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도 부동산은 잡아야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합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를 마감해야합니다. 땅값이 오르든 집값이 오르든 오른 가격은 전부 세금으로 거두면 됩니다. 두 채 이상은 세금을 두 배로 걷고 세 채 이상은 소유하지 못하도록 과세해야합니다. 집은 사는 곳이어야지 사고파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상실감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희망입니까? 
  교회가 아무리 썩어도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 교회는 희망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있으면 희망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사회가 아무리 썩어도 한 조각의 정의가 남아있고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있으면 희망은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계신 곳이 희망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니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그 품안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품에 모시고 살아간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말씀대로 행동하며 그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씨앗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그 말씀을 품고 있는 씨앗입니다. 그 씨앗은 내 삶을 통해 실현되어 하나님의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땅에 떨어져 죽는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죽는다 함은 그 말씀 그대로 행동하는 것에 내 생을 걸겠다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이 나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산 삶입니다.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는 바울의 삶입니다. 

  아울러 어떤 밭이 되어야 합니까? 어떤 씨앗이 그 밭에 떨어져도 그 씨앗을 붙들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밭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주어져도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결단이 소중함을 알게 합니다. 그렇게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몫을 100배나 발휘하며 살게 됩니다. 이 또한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작은 씨앗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나무를 보고 우리의 작은 삶 속에 깃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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