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걸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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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걸어가거라
  • 백창욱
  • 승인 2020.07.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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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진밭 평화기도회(20. 7. 2), 마태 9:1-8

코로나 재확산에 따라 2월 하순부터 소성리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코로나 방역에 협조한다는 뜻으로 집회와 시위를 모두 중단하고 최소한의 일정만 유지했다. 매주 소성리에서 하는 수요집회, 토요문화제도 멈추고 김천역 앞에서 하는 수요집회, 일요집회도 중단했다. 그러나 정권은 사드철회투쟁 시민들의 협조를 또 한번 배신했다. 정권은 5월 28일-29일 소성리 불법기지에 사드장비를 기습, 강제배치했다. 설마 코로나정국에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이랴 했는데, 여지없이 우리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작전을 수행하느라 사회적 거리두기도 모두 무시하고, 늘 하던 대로 공권력 폭력을 자행했다. 경찰병력 사천 명을 풀어서 백 명도 안 되는 주민들을 봉쇄하고 사드개량장비를 들여보냈다. 이번이 여섯 번째다. 현장지휘책임자인 성주경찰서장 이정수는 주민들을 봉쇄하는 동안에 할매들을 오도 가도 못하게 고착하여 새벽에 벌벌 떨게 하는 반인륜적인 비행뿐만 아니라 생리현상이 급한 여성이 경찰들이 둘러선 곳에서 용변을 보게 하는 반인권적인 만행까지 자행했다. 할매들은 사람답게 처신하지 못하고 오직 권력의 개노릇에만 충성한 이정수를 용납할 수 없어서 매일 성주경찰서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정수는 여전히 부하들을 방패삼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후안무치한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민중을 업신여기는 나라를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병고침의 특징이 있다. 주로 나병, 귀신들림, 중풍병자를 고친다. 마가, 누가의 치유기사에서도 그렇고, 마태복음에서도 산상수훈이 끝난 후 나병환자, 귀신들린 사람, 중풍병자를 차례로 고친다. 하고많은 병 중에 나병, 귀신, 중풍병 순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이 세 가지 병은 제국의 지배와 이스라엘 율법에 눌린 민중들의 처지를 은유한다고 해석한다.
나병은 정결례 법에서 제일 저주받은 병이다. 율법에서 자동 죄인으로 낙인찍힌 민중의 처지를 나병으로 상징화했다. 나병의 처방은 무조건 분리, 배제다. 민중들은 나병환자가 배제 당하듯이, 그렇게 기득권 지배질서에서 분리, 소외됐다.

귀신들림은 로마제국의 극한적인 폭력에 눌린 사회에서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병리현상이다. 지금 같으면 세부적으로 진단, 치료받을 정신과 병증이지만 일세기에는 모두 귀신들림으로 통칭했다. 로마의 무자비한 폭력과 린치, 시도 때도 없는 부역에 가산이 털리고 정신이 돌아버린 민중이 얼마나 많은가. 복음서에 귀신들린 사람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중풍은 나병과 귀신들림이 한데 섞인 채, 임계점에 달하여 옴짝달싹 못하는 민중의 처지를 대변한다. 나병도 귀신들림도 운신은 할 수 있지만 중풍병은 몸을 전혀 운신하지 못한다.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민중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가 이러한 민중의 처지를 외면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 쟁점은 병의 근원이 무엇이냐에 대해서이다. 율법의식에 절어 있는 율법학자들은 사람이 병이 들거나 뭐가 잘못되면 무조건 원인을 개인의 죄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정말 죄 때문이어서라면 수긍해야겠지만, 율법학자들의 진단은 철저히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부패와 허물을 가리는 수단일 뿐이다. 모든 잘못의 원인을 개인의 죄 때문이라고 못박아놓으면 다른 원인들, 예컨대 지배집단의 무능, 부패, 모순투성이 사회질서에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 면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율법학자들의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기에 단칼에 핵심을 찔렀다. 중풍병자를 치유하면서 말하기를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했다. 너희들 판단대로 모든 게 죄 때문이라면 내가 그 죄를 없애겠다. 죄를 용서함으로 죄를 원인무효 한다는 파격적인 선언이다. 하나님만이 용서할 수 있는 죄를, 사람이 용서한다는 개념은 이스라엘 지배질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 있기에 담대하게 선언했다. 가히 복음이라고 칭할만한 혁명선언이다. 죄의 기제에서 해방된 중풍병자는 자리를 들고 일어서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분단세월이 75년인 한국에서 안보는 일세기 이스라엘 율법질서 버금가는 지배개념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진저리나게 겪어왔듯이 안보는 권력자의 지배수단에 불과했다. 종내 안보 만병통치약은 미제 사드무기까지 들여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속관계가 오래돼서 한국을 위한 안보가 미제 패권전략과 동일시하는 데까지 번져버렸다. 이제 문재인정권은 밥 먹듯이 공권력폭력을 동원하여 사드무기, 장비를 뻔질나게 들고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주저하며 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제의 종노릇을 자처한다. 참으로 비통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이다. 예수가 율법질서를 파타하기 위해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담대히 선언하듯이, 우리 역시 담대히 서자. 미제사드를 물리쳐서 안보개념을 새로이 하자. 미제패권전략에 종속된 안보를 파타하고 오직 한국이 자주주체인 안보를 세우자. 중풍병자가 자리를 들고 일어났듯이, 소성리 민중이 사드없는 세상에서 제 숨 편히 쉬게 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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