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잃으면 코로나19 창궐할 최적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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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잃으면 코로나19 창궐할 최적의 조건
  • 박병상
  • 승인 2020.07.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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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원인을 묻는 무책임

김종철 선생님 별세 이후 한동안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믿고 싶지 않은데, 일이 밀려오니 버겁습니다. 그래도 기운을 내야 선생님에게 누가 되지 않겠지요.

<작은책> 최근호에 게재된 글을 잇겠습니다. 또 코로나19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임 소재를 놓고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에서 날선 공방이 이어지고, 인종차별 행태가 벌어집니다. 지역은 슈퍼전파자로 지목된 이를 비판합니다. 한데, 저는 화풀이로 보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걸까요?

우리 삶의 약한 고리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는 코로나19가 무슨 경고를 하는 걸까요? 생태적 다양성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다양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작은 변화도 견디지 못해 허우적거립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최적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삶은 무엇일까요? 고민을 담았습니다.

날이 더워지니 하루 만보를 걸으려면 오전이 좋다. 선선한 밤이 더 좋지만, 약속이 이어지면 건너뛰기 일쑤다. 약속 없으면 보통 아침 먹고 집을 나서는데, 온라인 강의 파일을 보내면 그만인 시간강사 처지라서 오전을 활용할 수 있다. 학교 방문할 기회를 잃었어도, 그나마 다행인가?

할머니의 코로나19 감염이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이어졌다는 인천발 뉴스가 나왔다. 해당 학교에 검사 설비가 급히 마련되고 전교생이 검사했다고 덧붙인 기자는 당분간 온라인 수업이 이어질 거라 전했다. 할머니는 어디에서 감염되었을까? 어설픈 물건 팔기 위해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들 불러모으는 방문판매 공간일까? 지하철 인천시청역 구내의 탁구장은 장년층이 주로 이용하는데, 탁구장도 코로나19 감염 통로가 되었다. 교회와 클럽, 콜센터와 택배회사. 우리네 세상의 약한 고리에서 연실 탈이 났다. 어디가 남았을까?

비말이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고 공원이나 거리를 걸을 때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꼭 쓰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멀쩡해 보인다. 사실 그럴 것이다. “거짓말 강사”로 알려진 젊은이가 나타난 이후, 인천이 감염 핵심지역처럼 오해받기도 했는데, 이제껏 300만 인구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300명이 안 된다. 대략 만분의 일이므로 방사능 허용기준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만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릴 확률인 1밀리시버트 이하의 방사능은 안전하다는데, 코로나19의 위험성은 암보다 분명히 낮다.

유전자가 DNA인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 가깝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RNA로 구성된 코로나19는 갑자기 나타났지만, 없던 바이러스는 아니다. 1930년대 가축에서 존재를 알았어도 의학계가 주목하지 않았다. 치명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던데, 발견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축 사이에 무증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데, 사람 사이에 증상 없이 빠르게 퍼지면서 무서워졌다. 작년 겨울에 중국 무한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코로나19는 올해 봄부터 세계 모든 국가의 뉴스를 잠식하고 말았다.

하루 확진자가 10명 아래로 이어지면서 마음을 놓았던 시민들은 거짓말 강사 이후 확연하게 늘어나는 상황에 적잖게 당황한다. 문제의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그 젊은이는 학원에서 강의한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우리의 탁월한 추적 시스템 덕분에 발각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가? 비말이 전달될 거리에서 마스크 없이 춤을 추었기에?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거리두기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거짓말을 해 역학조사를 더디게 했고 그로 인한 감염자가 늘어서? 거리두기 연장으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져서? 그렇긴 하겠다.

한데 생각해보자. 거짓말이 죄가 되는가? 십계명이 분명하게 선언했듯, 거짓말은 만악의 근원임이 틀림없다. 거짓말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어느 전직 대통령은 어릴 적 가훈이 “거짓말하지 말자!”였다고 토로한 적 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거짓말탐지기의 결과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를 판별하기에 탐지기의 성능이 정교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란다.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거라고 한 전문가가 풀이했다. 우리 법에 따뜻한 구석이 있는지 그때 알았는데, 한 젊은 학원강사의 거짓말은 확산에 다소 기여했을지언정, 코로나19 발생의 원인은 아니다.

이태원 클럽 감염자에 외국인도 있었다. 그가 주한미군인지 모르는데, 요즘 30명을 넘나드는 확진자 중에 해외 원인은 크게 줄었다. 14일 격리를 각오하고 입국하는 해외의 방문자는 98% 가깝게 줄었다지만, 주한미군은 어떤가? 우리가 그들의 입국에 앞서 인천공항처럼 검역할 수 있는가? 그 방면에 상식이 없어 섣불리 짐작할 수 없지만, 이태원 클럽에서 퍼져나간 코로나19는 그 이전과 유전자가 약간 다르다. 10명 이하로 확진자를 줄었을 시절의 코로나19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종식되었는지 모른다. 이번 바이러스는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G그룹이라고 질병관리본부가 밝혔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게 누적 확진자가 늘어나는 유럽과 미국에서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른다. 노인과 기저질환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코로나19 때문에 굶어죽게 생겼다는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일까? 코로나19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막힌 경제의 문을 조금씩 열겠다 의지일 텐데, 걱정이 앞선다. 입국자 증가로 항공사의 숨통은 다소 풀리겠지만 검역과 치료에 헌신하는 모든 국가의 보건 관계자 부담은 무척 늘어나겠지. 확진자 발생으로 교문 닫는 학교도 늘어날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중국 무한의 화남시장이 근원지일까? 무한의 바이러스 관련 연구소가 시발점일까? 거액의 연구비를 미국에서 받아온 그 연구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미국은 위험도가 높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연구를 다른 나라에 의뢰하거나 비밀리에 남의 나라에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무한에서 코로나19 변형을 연구했는지 모른다. 그 연구에 미국의 지원이 있었는지 역시 모르고 알 도리도 없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탄저병을 미군 주도로 연구하는지 알 도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코로나19의 원인이 중국? 미국? 박쥐? 천산갑? 역시 모르는데, 꼭 알아야 하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 따로 있다.

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증상으로 감염되는가? 원래 그랬을까? 변형된 결과일까? 그런 변형이 코로나19 이외에 없을까? 감기나 독감은 어떨까? 사라졌다 믿는 사스와 메르스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데, 백신은 물론이고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는 그 바이러스는 진정 사라졌을까? 드물게 남아있지만, 변형된 뒤 증상이 가볍고 뚜렷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는 건 아닐까?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킨다는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되고, 무섭게 변형될 가능성은 없을까? 티베트나 툰드라 지대의 영구동토층에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얼어붙어 있을까? 온난화된 지구에 다시 창궐할 가능성은 무시해도 될까?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연구는 진행되고 있는가?

고양이와 애완견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하는데, 문제를 일으킬 만큼 자주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데, 모피를 위해 밍크를 밀집 사육하는 네덜란드의 한 축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비위생적인 축사에서 끔찍하게 사육하는 밍크까지 감염되었다는 소식은 없는데, 비참한 사육환경은 밍크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계란과 삼계탕을 위한 양계장은 어떤가? 걸핏하면 조류독감이 창궐하는 까닭은 동물복지는커녕 비위생적으로 밀집시킨 공장식 사육과 무관하지 않은데, 잊을만하면 구제역을 창궐하게 하는 공장식 돼지 축산은 어떤가? 젖소와 고기용 소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바이러스 무방비지대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볼 때, 인간은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했다. 퍼져나가기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일 텐데, 도시 주변을 농촌이 감싸고 건강한 생태계가 사람 거주 지역 밖에 드넓게 펼쳐졌던 예전에는 아니 그랬다. 현재 비행기와 고속도로를 타고 퍼지는 감염성 질병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효율을 위해 타고난 다양성을 없앤 생명 산업에 예외가 없다. 공장과 다름없는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의 수경재배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소품종으로 광활한 농토를 채우는 미국의 옥수수밭과 콩밭도, 세계 소비량을 만족시키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밭도, 마치 한 그루처럼 똑같은 세계의 바나나농장도, 재선충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소나무도 비슷하다. 유전적 다양성과 더불어 환경 적응력마저 잃었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이동해보라. 차창 밖 풍경으로 어디가 인천이고 부천이며 의정부인지 분간이 어렵다.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거리두기 못하는 사람은 코로나19를 불러들였다. 만보 왕복하면 직접 빚은 만두를 내놓는 작은 식당이 있다. 식품회사 만두와 달리 예전 맛을 기억하게 하는 식당으로 걷는 길에 가로수라도 울창하면 좋을 텐데, 여름이 깊어지기 전부터 회색도시는 뜨겁다. 얇아 숨쉬기 편한 마스크가 나왔어도 반갑지 않다. 마스크보다 책임 있는 정책이 아쉽다. (작은책,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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