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섭 목사의 유리바다와 구도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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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섭 목사의 유리바다와 구도자의 길
  • 박철
  • 승인 2020.06.30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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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효섭 목사 1주기 추도식 및 유고시집 출판기념회 열려

이 글은 2020년 6월 29일 오후3시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있었던 故 박효섭 목사 1주기 추도식 및 유고시집 출판기념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25년 전 제가 40대에 막 진입(進入)하면서 붙든 삶의 화두가 '길'이었습니다. 길이 나를 붙들었는지 내가 길을 붙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길'이라는 화두에 몰두했습니다. 박효섭 목사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 대 초반 '샘이 깊은 우물'이란 잡지에 실린 괴정교회와 박효섭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였습니다. 그때 '박효섭'이라는 이름을 처음 대하게 되었고, 그 이름은 매우 신선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강원도 정선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박 목사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박 목사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이 이 자리에 여럿 앉아 계십니다. 주로 파격적이고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특히 정선제일교회 전영호 목사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영호 목사님은 내 친구 박효섭 목사를 꼭 만나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후로 제가 감리교농목을 하면서 몇 차례 박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2004년 부산으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박 목사님과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박 목사님과의 만남은 마치 운명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작은 목소리, 선한 눈빛, 자연에 대한 경탄, 사물을 대하는 태도, 인문학적인 성찰, 예수기도, 여행담, 동방정교회 영성에 심취하게 된 과정 등을 전해 들으면서 박 목사님께 동화되고 매료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내가 그토록 전착해왔던 길 위에서 영혼의 순례자로, 도반으로 박 목사님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박 목사님은 구도자로서 하느님을 향해 길을 가신 분이고, 한 개인이면서 보편자로 세상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오랜 인류의 역사는 방황과 미로의 수많은 흔적을 기록하였으며, 희귀하게 좋은 길잡이가 나타난 일도 있으나, 보다 많은 오도의 안내자들이 인류의 역사와 그 당대의 시대정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였고, 오늘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박효섭 목사님은 참 스승이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영적 스승을 가까이 자주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복이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탁월한 영성가요, 기도자요, 신학자이셨습니다. 그는 세계신학의 흐름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편협한 종교, 생명력을 상실한 종교, 박제화된 종교, 교리화된 종교, 이념화된 종교를 매우 거북하게 여기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타 종교도 다 자기 나름의 구원의 방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시류에 영합하는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등장한 성인들이나 사막 교부들,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에 늘 귀를 기울이고 신학의 내면화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기독교 전통에서 성인이란 죄가 적은 사람이 아니라 남보다 죄를 슬퍼하는 영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대 자유인이셨습니다. 그분의 영혼은 자석처럼 언제나 떨림이 있었습니다.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아도 깊은 울림을 주는 분이셨습니다. 마음을 깨쳐 튼실한 심지를 지닌 하느님의 참 사람이셨습니다.

9년 전 연회에서 은퇴하시고 인생의 노년에 '통섭(統攝)'이란 화두를 풀어 그것을 신학화하는 작업을 시작만하고 떠나시게 된 것이 매우 애석할 따름입니다. 추운 겨울 난방도 되지 않는 사무실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박 목사님은 하나도 춥지 않다고, 따뜻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 한겨울 어느 날 오전 11시부터 장장 10시간동안을 소파에 앉아 녹색 유리병에 든 주님을 모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는 박효섭 목사님의 유고시집 <유리바다>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여행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순례자라고 인식하셨습니다. <유리바다>에서도 박효섭 목사님의 그런 생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시집을 처음 전달받고 느꼈던 것은 그분의 시적 상상력과 감수성, 사물에 대한 관찰력은 제가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고, 한마디로 그 분의 시는 신을 향하여 바치는 아름답고 진실한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유리바다를 읽다보면 샘물처럼 맑고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기도의 말씀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밝은 빛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육화되어 기쁨과 눈물로 피어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소망과 평화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저는 박효섭 목사님이 갈망했던 내면의 유리바다를 바라봅니다.

그의 시 '발칸을 다녀와서' 중, "아름답지 않은 건 인생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고서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라. 아름답지 않고서는 신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 그렇습니다. <유리바다>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과의 대면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들고, 마침내 신에게 도달하게 하는 삶의 경탄과 찬미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이 떠나신지 1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가도 우리는 박 목사님을 여전히 그리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박효섭 목사님의 시 ‘촛불 앞에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저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촛불 앞에서

깨끗한 이마
곧은 목이
당신을 닮았습니다.

뽀얗게
맑은 살결이
애기 적 당신입니다.

얼은 달
가지 새로
기울고 있는데

숨결도
멈추어
불꽃이 됩니다.

육신이 타면
빛이 되고
영혼을 사루면
사랑이 됩니까?

초록별
한 떨기 임종을 지키더니

커다란
아침으로
밝아오고 계십니다.

박철 목사(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샘터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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