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턴의 회고록
지난 한 주간 동안 미국 안보보좌관이었던 볼턴이 회고록을 내 놓았습니다. 미국 내 강경파들과 일본의 극우세력인 아베 정권이 북미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를 얼마나 조직적으로 반대했는지를 소상하게 볼 수 있어, 향후 대미 대일 외교전술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특히 한미워킹그룹에 북미,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어떤 시도도 차단하는 등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남북이 더욱 신뢰를 갖고 의연하게 대처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북한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코로나 19정국을 거치면서 중국을 통해 들어가던 식량과 물품이 줄면서 힘들게 지내고 있고 의료시설과 의약품이 턱 없이 부족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별로 효율성도 없는 대북 삐라를 보내고 있어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고 그 배후세력이 남한과 미국의 극우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보고가 있어 한반도의 평화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4대 강국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방해하고 있었다는 여러 정황들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을 볼턴의 회고록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향후 세심하게 주변 강국 특히 미국과 일본을 설득해야합니다. 등거리 외교를 어떻게 성사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 사랑의 종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를 찾아와 율법의 대강령에 대하여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율법 선생이니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냐고 묻습니다. 율법사는 율법에 근거하여 말합니다.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자신의 몸을 아끼며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율법의 대강령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선 그래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얻어맞아 거반 죽게 되었는데 그 길을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가면서 그냥 지나쳤고 상종도 하지 않던 사마리아인이 지나다 다가가선 상처에 약을 발라 싸매주고 물을 마시게 하고 자신의 낙타에 태워선 주막집으로 데려가서 잘 돌봐줄 것을 부탁하곤 자신의 길을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선 도움을 준 사람과 그냥 지나친 사람이 있습니다. 말만 무성한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대고 그 상황을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평소 환대하며 산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발동하고 기꺼이 그의 이웃이 되어 드리는 삶을 삽니다.
이 비유는 사랑이 어떻게 환대로 구체화되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으로 황금률을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십시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환대입니다. 사실 복음의 주체적인 실천은 환대입니다. 모든 존재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며 사는 삶이 기독교의 근본적 가르침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정현종 시인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환대의 의미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지요 사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안다면 환대가 될 것이라는 시인의 고백은 옳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기독교와 환대
기독교는 환대의 종교입니다. 아브라함은 세 분의 나그네를 맞아들인 것이 결국은 세 분의 천사를 맞아들인 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출생의 문이 열리는 신비를 맛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됩니다. 소돔성의 롯도 나그네를 환대함으로 소돔성이 멸망할 때 구원을 얻습니다. 기생 라합은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맞아 숨겨줌으로 구원을 얻고 다윗왕조의 기원 중 한분이 됩니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한 끼의 식사로 예언자를 환대하였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줌으로 그 모진 흉년에서도 살아남게 됩니다.
▪ 신앙, 받아들임.
폴 틸리히 신학자는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신앙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였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했습니다. 허물 많고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인바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바다가 왜 바다냐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서 바다라고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바다는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불순물을 거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다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불순물을 정화시킵니다.
하나님도 모든 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입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막 살지 않습니다.
대형 호화 크루즈선이 있었습니다. 어떤 샐러리맨이 돈을 모아 간신히 크루즈선에 승선했습니다. 그 배 안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맛난 음식, 레스토랑, 수영장을 포함한 사우나, 골프장, 오락실, 콘서트, 영화관 등등
하지만 그는 돈이 없었음으로 어느 곳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호텔로 배달되는 기본 식사만으로 몇 달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고 하선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여행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자 주변 친구들이 아니 크루즈 탑승 비용에 그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는 비용이 다 들어있었다라고 말하자 그는 억울해서 땅을 치고 한탄했답니다. 무지가 가져온 폐해입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이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관심이 있고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고 계시다는 것을 아신다면 우리의 삶은 매일이 기적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성서 일과는 마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0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 예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 예수를 맞아들이는 것은 나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는 지극히 작은 자들과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 그리고 하나님을 통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의인으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잔을 대접해도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앙의 성육신입니다. 그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으로는 안 되다며 실제적으로 이웃을 섬기고 구체적으로 나누는 삶이어야 한다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지만 아울러 철저한 행동과 실천의 종교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김종철 선생 귀천
이 땅의 녹색혁명가로 삶을 살아오신 김종철 선생님이 귀천하였습니다. 그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빈소를 찾아 참배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삭혔습니다. 그의 강연 영상을 찾아보다가 한 이야기를 발견하였습니다.
▪ 어떤 수녀 이야기
스위스의 한 20대 여성이 1970년대 한국에 배낭여행을 와 판자촌을 둘러보다가 아이들이 아이스 깨끼를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스위스에 돌아가선 짐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선 평생을 귀화하여 한국인으로 살았습니다. 은퇴 이후 충청도 어느 곳에 살고 있는 그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데 많이 화가 나 있었기에 물으니 한국에 온 것은 후회한다고 직설적으로 대답하더랍니다.
1970년대 아이스 깨끼를 나누어 먹던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인간다운 나라였는데 그 이후 50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돈 밖에 모르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며 이런 나라가 될 줄 알았으면 이 나라에 오지 않았을 거라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나라에서 돈만 아는 천박한 나라가 된 것을 꾸짖고 있습니다.
▪ 거지 대접이 왕 대접됨
러시아 이완 대제 하면 아주 선정을 베푼 유명한 분입니다. 이분은 종종 백성들의 생활을 알기 원해서 은밀하게 민정을 살피곤 했습니다. 한번은 비바람이 요란하게 내리치는 어느 날 밤에 방랑객으로 변장을 하고, 이 집 저 집 찾아 다녔습니다. 가는 집마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이 황제는 아주 참담한 심정이 되어서 도심지에서 벗어난 변두리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 대문이 열리더니, 반갑게 그를 맞아 들였습니다. 마침 아기가 순산을 했고, 산후 조리 중 이였습니다. 이 가난한 농부는 짚방석 한 개와 한 덩어리의 빵, 그리고 물 한 그릇 외에는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듭거듭 문전 박대를 받던 그 황제는, 이 마음씨 착한 농부를 만났다는 그 기쁨 때문에, 오히려 흐뭇한 마음에 짚방석에 앉아 평안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그는 농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그는 황제의 신하들과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호화로운 왕의 행차로서 농부의 집으로 갔습니다. 신하를 통해서 이 농부 앞으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황제가 마차에서 내려서 농부의 손을 잡고 '지난밤에 후한 대접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금 한 자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그 농부는 깜짝 놀랬습니다마는 조금 후에 지난 밤 과객이 바로 이 이완 대제라고 하는 것을 알고 황공하여서 엎드렸습니다. 그 황제는 그를 일으켜 세운 뒤에 말하였습니다.
"어젯밤 그대는 나를 걸인으로 영접했지만, 오늘 나는 임금으로서 그대에게 상을 내리고자 이렇게 왔노라."
농부는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어여삐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여러분도 남을 대접하십시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마7:12)
▪ 초대하기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19 정국을 지나면서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받아들이셨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어떤 존재를 만나든지 그를 하나님 대접하듯 살아가십시오. 상대방을 보이는 대로만 보지 말고 그 중심부를 보십시오. 그 속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신성과 능력이 있음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그의 한 행동을 보아서가 아니고 그의 존재를 보고 존중하십시오. 이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음의 핵심입니다. 자, 세상에 나아가 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