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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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꿈은 무엇인가?
  • 박철
  • 승인 2020.06.24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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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자연주의 작가 나다니엘 라첸마이어가 쓴 동화집 중에 "부러진 부리"라는 게 있다. 꼬마참새 이야기다. 공원 나무 위에 살면서 사람들이 흘리고 간 빵 부스러기를 먹고살던 참새 한 마리가 어느 날 부리가 부러진 것이다. 갑자기 당한 그의 불행을 동정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는 참새들 사회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춥고 배고프게 살아야만 했다. 

먹지 못해서 야위어 가고 씻지 못해서 더러운 그를 동료 참새들은 참새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어느 날 그에게 손을 내밀어 빵을 먹이는 손길이 있었다. 집을 나와 떠돌아다니던 노숙자였다. "너는 처지가 나와 같구나." 노숙자 아저씨는 빵 부스러기를 참새에게 내밀면서 말을 건넸다. 오래간만에 참새는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 빵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먹었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꼬마 참새는 그 날 저녁 처음으로 그들만의 집을 만든다. 아저씨는 공원 벤치에서 두 무릎을 세우고 몸을 웅크린다. 참새는 아저씨의 덥수룩한 머리 위에 둥지를 튼다. 아저씨가 참새의 깃털을 쓰러주며 그에게 속삭인다. "안녕, 잘 자라. 내일을 위하여." 그날 밤 아저씨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고, 참새는 부러진 부리가 다시 반듯해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꿈을 꾸었다. 소외된 두 생명은 세상이 치유되는 꿈을 꾼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꿈은 무엇일까? 거창한 게 아닐 것이다. 상처받은 나 자신을 용서하는 꿈, 상처로 인해서 아파하는 이웃과 세상을 치유하는 꿈, 노숙자 아저씨의 꿈, 꼬마 참새의 꿈이 아닐까? 그 소박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는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쳤다. 

그가 펼친 하느님 나라 운동은 종말론 교리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주변의 소외당한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 주고 어루만져주고 치유해 주어, 그들의 생명과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꿈이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변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웃의 상처를 싸매 주고 위로하여, 이 땅위에 예수가 남기고 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제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투쟁을 시작했다. 60세 정년을 앞둔 그녀의 복직투쟁이 눈물겹다. 나는 그녀의 복직투쟁을 지지한다. 반드시 복직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김진숙 위원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35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꿈
회사 규모가 줄어도 줄지 않았던 꿈
경영진이 몇 번이 바뀌는 세월 동안에도 바뀌지 않았던 꿈
해마다 다른 사안에 밀리고, 번번이 임금인상과 저울질 되면서 상심하고 소외된 세월이 35년입니다만, 저는 그 꿈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그 꿈에 다가갈 마지막 시간 앞에 서 있습니다.
제 목표는 정년이 아니라 복직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여기 사진은 40여 년 전 제 모습입니다.
왼쪽 눈 밑은 용접 불똥에 맞아 부어있고 저 시절엔 늘 어딘가 상처가 있었습니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불똥에 벌집이 된 땜쟁이 얼굴은 40여 년이 지나도 기미처럼 흔적을 남긴 채 아물었지만 가슴 속 상처에선 아직도 피가 흐릅니다.
늘 누군가 크게 다치고 자주 사람이 죽어 나가던 공장에서, 배 한 척이 바다에 띄워질 때마다 그 배를 만들 때 죽었던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담배에 불을 붙여 철판에 올려놓던 아저씨들.
진수식, 명명식은 회사측엔 경사였지만 노동자들에게 추모식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엔 빗물이 스미고 쥐똥이 섞이고 겨울엔 살얼음이 덮인 도시락을 국도 없이 넘겨야 했던 노동자들. 우리도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던 죄는 컸고 유배는 너무 길었습니다.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운 채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갔던 대공분실의 붉은 방, 노란 방.
“니 겉은 뺄개이를 잡아 조지는 데”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제가 처음 뱉은 말은 저는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김진숙입니다!” 였습니다. 사람을 잘못 보고 잡아 왔으니 내일이라도 돌아갈 줄 알았던 세월이 35년입니다. 

억압이 안정으로 미화되고, 탄압이 질서로 포장된 불행했던 시대에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빨갱이가 되고 자유의 외침은 불순분자가 되곤 했습니다. 
무수한 목숨들의 피와 눈물로 세상은 변했지만, 한진중공업은 하나도 변한게 없습니다. 
5월이면 담장을 뒤덮던 아름다운 장미꽃을 베어내고 시멘트 담장은 교도소처럼 높아졌고 노동자의 숫자는 5분의 1로 줄었습니다.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좋아 본적이 없이 늘 어렵기만 하다는 회사는 매각을 이유로 또다시 구조조정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왜 모든 고통은 노동자들의 몫이어야 합니까!
왜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올해 정년퇴직을 하는 어떤 조합원이 그러더군요.
그래도 또 안 짤리고 내 발로 나가게 돼서 천만다행이라고. 38년을 다니면서 노조 위원장의 장례를 두 번이나 치르고 선배와 후배를 땅에 묻고, 정리해고됐다 복직한 파란만장의 세월을 보내고 정년을 맞으며 후배들에게 닥칠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게 한진중공업입니다.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용노조 간부들, 회사 관리자들, 경찰들에게 그렇게 맞고 짓밟히면서도 저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울며 매달리던 저곳으로 이제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감옥에서 시신으로 돌아온 박창수 위원장은 얼마나 이곳으로 오고 싶었겠습니까!
크레인 위에서 129일을 깃발처럼 매달려 나부끼던 김주익 지회장은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겠습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꿈이 있는 곳, 우리 조합원들이 있는 곳, 그곳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2020.6.23.)

(사진) 이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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