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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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 김경호
  • 승인 2020.06.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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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 6·25 민족화해 주일(설교문)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것으로써 사랑은 우리에게서 완성된 것이니, 곧 심판 날에,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형벌과 맞물려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16-19)

교회 청년 한 쌍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목사님은 결혼 주례를 하고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첫날 밤 신혼여행지로 축하 전보를 보냈다. 내용인즉 “두 분에게 요한일서 4장 18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립니다.”였다. 오늘 본문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전보 받는 분이 요한일서를 요한서로 잘못 듣고 보냈다. 두 사람은 목사님의 전보에 감격해서 무릎 꿇고 감사한 후에 말씀을 펴서 읽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제대로 말하였다."(요한 4:18)

물론 조크지만 우리가 가장 흔하게 쓰는 말 ‘사랑’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양대 의대 교수인 신영전 님의 “사랑은 없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은 없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전화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거기에 사랑이 없음을 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연신 그려 보이는 후보자의 하트 모양 안에도 사랑은 없다. 쇼펜하우어도 그랬다. 사랑은 단지 성욕과 생존 욕망의 가면일 뿐이라고,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웠던 소크라테스도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자기 가족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녀에게 임대주택 아이와 놀지 말고 친구를 밟고서라도 1등이 되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조차 자기애, 소유욕, 노후 불안의 반영이거나 집착일 뿐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조시마 장로의 말처럼, 인류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는 있지만 다른 이와 단 이틀도 같은 방에서 편안히 보내지 못하는 그런 인류애는 사랑이 아니다. 자기 종교를 믿으라고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신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했는데, 인종·종교·성적 지향이 다르다고 차별하는 종교인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도 모두 거짓이다...

누가 사랑을 이야기하는가?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남의 땅을 점령한 후 점령군이 제일 먼저 외치는 것이 ‘평화’와 ‘질서’이듯, 이 시대에 사랑을 외치는 자가 범인이다. 그는 뺏으려는 자, 주지 않으려는 자다. 깜깜한 밤 도시 전체에 펼쳐진 붉은 십자가 군상, 신용카드는 안 되고 현금으로만 통행료를 받는 화려한 사찰들은 이 땅이 공동묘지요 조폭의 소굴임을 보여준다. 사랑이란 말이 범람하는 이 시대는 사이비 종교의 시대다. ‘사이비 종교’란 특정 종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가난한 자, 아픈 자, 집 없는 자,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이주자와 난민, 성 소수자의 편에 서지 않는 종교, 약자들이 천사임을 모르는 종교가 사이비다. 이 땅에서 신의 추종자들은 미워하느라 더 바쁘고 돈을 세는 데 더 노련하다. 침략자의 맨 앞자리는 늘 그들 차지였다. 이 땅엔 종교만 있을 뿐 사랑은 없다... 당신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있다면 이럴 리가 없다. 사랑은 없다. (신영전, “사랑은 없다” 한겨레신문 2000. 1. 8)

인간이 사랑을 말하는 그것에 진정한 사랑은 없다. 우리는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인류가 가장 그리워하고 가장 간절하게 추구하는 말 ‘사랑’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면 하늘에서 불을 훔쳐다 인류에게 선사한 프로메테우스처럼 하늘에서 훔쳐서라도 우리들의 것이 되게 해야 한다. 문득 신영전 교수의 글에 눈이 가는 것은 누구보다도 사랑을 강조하며 살아온 목사인 나도 문득 내가 진정한 의미로 사랑을 말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단지 나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에 머물러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이란 나 자신과 나의 이해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기에 그것은 진정 인간의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말할 수 없다. 그는 사랑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편, 뼈저린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그 아픔의 경험에 갇혀서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확실히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것은 항상 자기 경험 속에 갇혀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들은 평생을 가져가지만 내가 받은 은혜들은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든지 인간에게 받은 것이든지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야 가능하다. 오늘 본문은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것으로써 사랑은 우리에게서 완성된 것이니, 곧 심판 날에,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는 것입니다.(요일 4:16-17)

우리 스스로의 한계에 의해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 우리가 그래도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뛰어 넘어설 기회를, 그것이 일생 한번이든, 두 번이든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초청 받는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랑 가운데 머물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늘 두려움 가운데 살아간다. 겉으로는 짐짓 센척하지만 온갖 걱정과 두려움으로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 두려움을 가지고 매사에 조심하게 만드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도 하다. 조폭들이 요란하게 문신을 하는 것도 남을 겁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가진 두려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마치 위험을 당한 복어가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 제 몸을 부풀리듯이, 겁많은 조폭일수록 요란한 문신을 한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두려움인데 심리학적으로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것을 포비아(phobia)라 한다.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창문이 없는 곳에서 느끼는 공포증, 이성에 대한 공포, 인정받지 못하는 공포 등, 지금 알려져 정신과에서 이름이 부여된 공포증만도 400여 가지가 넘는다.

그것은 특정 형태의 공포가 그 사람에게 맞춤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 모두가 갖는 공포들인데 그에게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각자가 겪은 독특한 경험과 관계된다. 우리는 그 정도에 따라 정신병이되고 정신분열도 되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도 되지만 사실 누구나 다 정신적인 아픔들, 포비아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정신과 의사들도 목사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남의 아픔을 돌보는 그들마저도 저마다 자기의 포비아들을 가지고 있다. 다 정도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기 아들, 딸에 대해서 관대한 것은 그들은 자녀에 대해서 정상과 비정상, 의와 불의, 선과 악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거나 매우 관대하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참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일4:18)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모습이다. 그런데 “두려움은 형벌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지 알면서도 왜 사랑하지 못할까? 왜 보복의 칼날을 거두지 못할까? 머리로는 온 세상 진리를 다 깨달은 것 같이 하면서도 왜 우리의 마음은 본능의 수준을 벗어나질 못할까? 그것은 우리가 베푼 사랑으로 되받게 될 형벌, 곧 내가 받게 될 상처, 예상하는 공격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성서는 말한다. 우리는 너는 나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내가 받게 될 상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온갖 방어기재들로 무장한 군사들의 싸움, 온갖 합리성과 도덕을 동원한 치열한 싸움들을 통해서 너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밀어내기보다 차라리 다르다고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오늘 성서는 말한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요일4:19)

우리의 신앙이 대단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보고 사랑한 것이 아니다. 먼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해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두려움이 나뉘게 되는 것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용기, 먼저 두려움을 푸는 용기이다. 상처 입을지도 모르는 예상되는 상대의 공격 앞에 우리를 방어하지 않고 알몸으로 내놓을 수 있는 용기이다. 우리를 묶어 놓은 한계, 스스로 안된다고 생각하는 자기 감옥,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각종 포비아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아니라’고 화내겠지만, 내가 스스로 묶여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오늘은 6.25민족화해주일이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남북 정상의 함께 이룬 4.27선언의 상징물이 비참하게 폭파되는 것을 경험했다. 통일부 장관이 사퇴를 했고 그가 그만두는 자리에서 “증오로는 증오를 이기지 못한다.”고 마치 종교인 같은 이야기를 하고 통일부를 떠났다. 아래는 남북연락소가 파괴되는 날 제가 페북에 올린 글이다.

북이 핵과 군사력을 우선으로 하던 원칙에서 경제를 병행하겠다며 주된 방향의 전환을 한 후에 남북화해 북미화해의 평화의 흐름이 열렸다. 트럼프는 계속 빈손으로 손님을 응대하였고 하노이에서는 북의 체면을 심대하게 손상케 하였다. 그나마 성과라면 남북정상이 만나서 한 4.27선언이 유일하다. 북은 비핵화 약속을 하고 일부 실행하였다. 하지만 남과 미국이 북에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실익을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의 입장에서 4.27선언은 오히려 자신들의 족쇄가 되었다. 미국은 4.27선언 뒤에 숨어 비핵화 약속의 안전판을 확보한 후에 아무런 조치 없이 북이 일방적 양보만을 요구했다. 트럼프와 볼턴이 하노이 결렬의 책임을 서로 미루지만 똑 같다. 핵을 포기하기 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볼턴의 리비아식 해결이 지금 트럼프가 충실하게 따르는 원칙이다. 아마도 내심 북의 붕괴를 기대하는 옛 전술을 연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전에는 으르릉 거리며 붕괴를 기대했으나 이제는 좋은 말로 어르며 기다리는 전술이며 남쪽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북이 판단한 듯하다.

필자가 성서학당 강좌를 통해 여러번 문재인 정부의 독자적 행동을 촉구한바 있다. 하지만 이제 북은 남측이 미국을 넘어서서 독자적으로 4.27선언을 이행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듯 하다. 그러니 아무 실익없는 4.27선언을 되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미국정권이 다시 트럼프가 되건 민주당 정권이 되던, 선거로 분주한 시기에 북은 새로운 주인과 담판을 지을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핵과 ICBM을 본격적으로 진전시켜야 하는데 그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스스로가 약속한 4.27 선언이다. 그러니 4.27 이전으로 되돌리고 북 특유의 벼랑끝 담판을 준비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1. 남이 더욱 강해져서 독자적으로 서서 4.27선언을 이행해 가거나
2. 열세한 대선 판도를 뒤집을 화끈한 트럼프의 행동을 끌어내거나
3. 아니면 다시 벼랑 끝 위기의 혹독한 정세로 가거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다음 판은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움찔할 정도의 핵과 미사일의 난장을 지나는 동안, 한반도는 전쟁위기로 남이나 북, 전체의 목숨이 외세에 의해 들었다 놨다를 몇 번 반복해야한다. 그 대가는 더욱 호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남이 치러야할 정치적 혼란과 상처는 탈북자를 국회의원으로 내세우는 저 세력들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야 할지도 모른다. 기회가 올 때 조금더 과감해야 하는 데... 우리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고는 그 두려움에 갇힐 수밖에 없다. 우리의 두려움을 넘어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평생 한번이나 두 번 있을까 말까이다.(요한일서 4: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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