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화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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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화민족
  • 김홍한
  • 승인 2020.06.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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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1945년 10월 9일)

단재 신채호는 1135년의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상 1천 년래 제1대사건’이라고 극찬하였지만 나는 ‘조선 반만년 역사의 제1대사건’으로 1443년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들고 싶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시고 1446년 반포하심으로 우리민족은 문화민족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말은 있었으되 글이 없어서 한문을 빌려 썼다.

그런데 우리말이 중국어와 달라 한문으로는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표현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문이 지극히 어려워 알 수 있는 이가 매우 적었으니 백성의 대부분이 문맹이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 중에 말이 없는 민족은 없다. 그러나 글이 없는 민족은 많이 있다. 말이 있으되 글이 없으면 결코 문화민족이라 할 수 없다. 글이 없으면 지식의 축적과 전달이 되지를 않으니 어떻게 높은 문화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되었으되 한글은 사용되지 못하였다. 한글의 사용에 반대가 극심하였으니 뿌리 깊은 사대사상이 그 원인이다.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반대 요지 6가지 중 두 가지만 살펴본다.

“첫째, 대대로 중국의 문물을 본받고 섬기며 사는 처지에 한자와는 이질적인 소리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한자와 다른 글자를 가진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티베트) 등은 하나 같이 오랑캐들뿐이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이다.”고 했다. 그때 그 당시에는 어쨌든지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이유라는 것이 참으로 황당하다. 최만리의 이러한 생각이 당시의 지식인들에게는 보편적인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도 그렇게 여겼는지 한글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880년 우리나라에 기독교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기독교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었다. 1500년 한국 불교의 역사에 불경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2000년 한국유교의 역사에도 유교 경전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기독교는 이 땅에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한글 성경을 출판하였다. 성경은 상류층 지식인들의 종교가 아닌 조선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민중의 종교로 들어온 것이다.

이로써 기독교는 한글을 살려냈고 한글은 기독교 복음을 모두에게 전파해 주었다. 한글을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 한글로 한국 민족에게 전혀 새로운 큰 사상인 기독교 사상을 한글로 담아냈다. 한글을 살려내고 그 안에 큰 사상을 담아냈으니 우리 민족의 정신을 살려냄이요 우리 민족을 문화민족이 될 수 있도록 한 결정적인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 반만년 역사의 제1대 사건’으로 주저하지 않고 한글 창제를, 2대 사건으로는 기독교의 전래와 한글 성서의 편찬을 들고 싶은 것이다. 

한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를 거듭한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 회원들 역시 기독교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1926년에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여 행사를 거행했고 1928년에 명칭을 '한글날'로 바꾸었고 1945년에 10월 9일로 확정했다. 

이제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거의 최고수준의 문자 해독률의 자랑하는 문화민족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우며 우리의 정서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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