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내만족(神內滿足)과 지성무식(至誠無息)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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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만족(神內滿足)과 지성무식(至誠無息)의 삶
  • 양재성
  • 승인 2020.06.16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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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신내만족(神內滿足)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교회 강단 휘장 문구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상합니다.

잠시 침묵하니,
하나님이 묻습니다.

“너, 정말 내가 있는 것으로 충분하니?”

금방 대답이 안 나옵니다.
잠시 머뭇거리고서야
“그런 거 같아요. 하나님....”

주춤거리며 자신 없는 대답에
요즘 자존감이 많이 떨어 졌나 생각했어요..

사실 그간
자존감 하나로 살아왔는데...

요즘, 처음 가보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주님이 말씀하시네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마.
네가 나를 버려도 난 너를 버릴 수 없단다..
그것이 내 운명이란다.”

눈물이 핑 도네요.
쉽게 버릴 수 있는 숙명을 가진 자와
버릴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의 만남
고마운 일입니다.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용기를 냅니다.

오늘도 평화...

이야기 둘, 至誠無息(지성무식)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는 뜻이다. 중용(中庸) 26장에 ‘지성여신 지성무식(至誠如神 至誠無息)’ 구절이 나온다. “지극한 정성은 신(神)과 같다. 성지(誠之)는 스스로 이루어 가는 것이요. 그러므로 지성은 쉼이 없다”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하여 쉼이 없다. 어미가 자식을 살피는 마음이다. 가끔 자식을 버리는 어미가 있다지만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는다. 절대로 버릴 수 없다.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믿는다면 무엇이 두렵고 염려가 되는가.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라. 그대 안에 성실함으로 충만하게 하라. 그 다음엔 아무렇게나 살아라. 그대의 모든 행동거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리라. 그대의 행보는 곧 하나님의 행보가 되리라.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다.(창32) 야곱은 나루를 건너면서 이미 지성에 이르렀다. 20년 만의 귀향이다. 자신의 축복을 가로채고 집을 나간 동생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곤 400명의 사병을 이끌고 동생을 쳐 죽이러 오는 형이다. 그를 피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런데 야곱이 형, 에서의 얼굴을 보니 이미 하나님의 얼굴로 보였다.(창33/10)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다. 형을 뵈오니 하나님을 뵙는 것 같다는 이 고백이야말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니고 또 뭐란 말인가.

결국 지성여신(至誠如神)은 지성무식(至誠無息)이다. 이 둘은 한 짝이다. 안으로 지극한 정성에 이르고 밖으로 모든 존재를 경외함에 이른다는 말이다. 오늘도 지성무식의 길을 가보자. 

생태계 보전의 길은 그 방법보다도 근본 마음이 중요하다. 존재를 들여다봐야 한다. 바울 사도는 모든 존재 안에 이미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과 능력이 있음을 간파했다.(롬1/20)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의 저자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지만 바울 사도는 모든 존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다. 바울의 위대성이다. 바울은 인간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생명 중심주의로 나간다. 

성서는 그대로 있지만 성서를 보는 눈은 다르다. 하나님은 불변하시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변하고 있다. 이 시대의 눈으로 성서를 풀고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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