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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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
  • 백창욱
  • 승인 2020.06.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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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0. 6. 14)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

마태 9:35-10:8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


금요일 손집사님 카톡 글을 보고 심쿵했습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특히 제 가슴을 두드린 내용은 “제가 왜 나의 시간과 소중한 것들을 들여 교회에 가야 하는지 그로 인해 나에게 어떤 삶의 가치가 생기는지”입니다. 

손집사님이 갖는 물음은 내 물음이기도 합니다. 교우들이 자기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교회를 오는데, 이들에게 교회 오는 보람이 늘 충만하도록 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는가... 목사설교가 재미있고 위로가 충만해서 교우들이 한 주간 시름을 다 잊게 하면 좋은데... 그러질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지켜줘서 항상 감사합니다.
남들은 푹 쉬는 주일에 아침부터 준비해서 교회 나오는 일도 대단하고 힘써 노동해서 번 돈을 아낌없이 헌금으로 바치는 일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무신과 물신의 시대에, 또 자본주의 유물론에 물든 사람들한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각종 유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신자들의 갈망이나 욕구를 채워주는 기성교회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손집사님 글 내용을 생각하면서 제가 대구새민족교회에 오기까지 그간 교회 역정에 대해서 교우들과 공감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어떻게 대구새민족교회가 필생의 길이 되었는지, 또 여러분과 지금 같은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고 1 때 스스로 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갔습니다. 이를 볼 때 내 안에 확실히 종교성이 있습니다. 예장 합동교회입니다. 전형적인 근본주의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한 사람의 백지같은 영혼에 근본주의 신앙의 모든 것이 스펀지처럼 고스란히 흡수됐습니다. 지금은 근본주의 신앙을 경계하고 더 성숙한 신앙을 추구하라고 말하지만, 이때의 교회경험으로 인해 저에게도 뼛속까지 근본주의 신앙요소가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총신대 다닐 때 대자보를 통해 5.18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런 엄청난 역사비극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교회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신앙전향을 했습니다. 학교도 그만두었습니다. 덕분에 제도권에서 완전 이탈한 민중이 됐습니다. 한편 인생의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장 어두운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다니던 모교회도 떠났습니다. 그 때 교회를 떠나게 한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는데 모두 상처였습니다. 
 
비록 모교회는 떠났지만 교회는 계속 다녔습니다. 이것 역시 근본주의 신앙습관입니다. 한 이년동안 교회방황을 했습니다. 의식 있다는 교회들을 찾아 다녔는데, 거기에도 뭔가 모르는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 ‘이곳이 내 교회다’ 하는 귀속감이 없는 게 가장 컸습니다. 그렇게 교회방황을 하다가 86년 겨울에 새민족교회를 알았습니다. 그 해 여름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지금은 대안적 교회들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서 많이 있지만, 그 때는 새민족교회가 매우 드문 경우였습니다. 모교회 선배가 거기 있어서 얼굴 보러 갔다가 새민족교회와 일생의 인연이 됐습니다. 그 때 담임목사님은 교계에서 의식있는 명망가입니다. 사람들도 다 잘났습니다. 명망도 있고 내용도 있는지라 순식간에 떠오르는 교회가 됐습니다. 소문이 나서 청년학생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저도 교회가 진보적인데다가 사람 교제하는 재미에 빠져서 잘 다녔습니다. 이때 아내도 꼬셔서 새민족교회에 오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근본주의 교회 울타리에서 잘 있다가 전혀 다른 교회를 다닌지라 외로웠습니다. 그것을 잘 배려하지 못하고 저 좋은 대로만 해서, 그것 때문에 지금도 바가지를 긁힙니다. 

그런데 어느날 담임목사가 갑자기 사임하고 규모있는 교회로 갔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민족교회는 고난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교인도 청년들도 하나둘 떠났습니다. 교회는 갑자기 쪼그라들었습니다. 재정이 약한 교회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저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 새민족교회 갈 때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다닌다면 이 교회가 마지막이다... 이 교회도 별 볼일 없으면 이제 교회는 끝이다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쉽게 떠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 떠난 덕분에 새민족교회가 운명이 됐습니다. 그때가 87년 겨울인데, 그 때부터 92년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월세를 낼 수 없어서 보증금을 까먹고, 마지막에는 교회문도 닫아야 했습니다. 교회가 계속 내리막길을 가도 저는 당연히 교회를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 쭉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때 장인장모가 당신 교회로 오기를 은근히 바랬지만, 그래서 몇 번 가기도 했지만, 아, 나도 이런데서 폼 나게 교회 다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새민족교회를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 복을 받는다면 이 때 교회를 성실하게 지킨 일에 대한 응답이라고 봅니다. 생존이 급급한 교회였는데, 다행히 1992년에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1991년에 새문안교회 청년들이 따로 교회를 개척했는데,(정권에 저항하는 청년부에 부담을 느껴서 교회가 청년부를 해체했다.) 그 교회와 통합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 때 목회자가 이근복 목사님입니다. 이를 보면 세상사가 우연처럼 보이지만 다 연결돼 있습니다. 

그 뒤 신학교를 가게 되면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현저교회에서 신학교와 대학원 공부 마칠 때까지 부교역자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진로를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중 대구로 가서 개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압니다. 그 때 교회이름은 그냥 자동으로 대구새민족교회로 정했습니다. 한 번도 다른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근본주의 교회에서 전향한 후 마지막 대안으로 찾아간 새민족교회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내 평생 노선이 된 것입니다. 그 결정은 이제부터는 기성교회와는 다른 길을 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2007년 대구 논공에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교인없이 장인장모가족만 모였습니다. 간혹 사람이 오긴 했지만 잠시 있다가 갔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첫 주일에 손영준집사님이 찾아왔습니다. 대구새민족교회 첫 교인입니다. 그리고 2011년 첫 주일에 김순미집사님이 같이 왔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좋았겠습니까. 이 두 분도 다니던 교회가 있었지만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순미집사님은 성서학당에서 공부한 내용이 기존성서지식과 충돌해서 그것을 극복하느라 무진 고생을 했습니다. 참된 신앙을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 여기서 적응을 못해 돌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다행히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그리고 2011년 8월에 성서로 이사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대구새민족교회와 연을 맺었습니다. 조건도 환경도 빈약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목사가 설교를 기가 막히게 잘해서 뿅 가게 하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찾아온 것은 개인만의 의지를 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근본주의가 점령한 한국교회, 그것도 대구에서 고군분투하는 교회를 가상히 보고 보내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 외 무슨 해석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대구새민족교회가 기성교회와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끼나요? 대표적인 차별성 하나를 말하자면, 성서해석이 자유합니다. 자연히 설교도 자유합니다. 근본주의 안에 있으면 안전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진리, 진실을 찾는 길입니다. 맹목신앙, 우상을 탈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신학적으로 문자주의 성서해석은 퇴물적이고 이교적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오래됐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가장 독실한 신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교회 현실에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은 교회의 온전함을 위해서 너무도 중요합니다. 물론 그런 지식을 잘 다듬어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설교자의 별도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자책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로운 생각을 고백합니다. 전에는 대구새민족교회에서 뼈를 묻는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길은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내려놓고자 합니다. 저 역시 교회에 종속된 사람으로서 나의 생각과 판단, 결정이 교회인 여러분의 유익보다 우선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여러분이 가하다고 생각하면 함께 가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더 좋은 길을 찾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말씀 본문은 열두제자를 택하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는 내용입니다. 공관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그런데 마태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5-7절입니다. “이방 사람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 사람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오히려 길 잃은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 다니면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이 내용이 마가와 누가에는 없습니다. 마태에서 예수는 열두제자를 파송하는데 이스라엘한테만 가라는 명령을 합니다.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할 선교를 이스라엘에게만 제한합니다. 요즘 시각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시대에 로칼을 고집하다니 배타적이라고 하면서 이런저런 비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시는 다른데 보다 이스라엘 선교가 급하다는 마태복음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율법에 얽매여서 하나님나라의 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람이 제일 불쌍하지 않은가. 마태는 제 동족을 우선 구원하는 게 급선무라고 보았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대구로 변용해도 하자 없다고 봅니다. “외국으로 가지 말고, 광주로도 가지 말고 오히려 대구로 가라.” 왜 대구로 가야 하나요? 여전히 백 년 전 신앙이데올로기를 신주단지처럼 부여잡고(1910년, 미국 북장로교 총회에서 근본주의 오대강령이 나왔고, 1916년, 1923년 총회에서 재확인하였다.) 거기에다 수구우파 정치논리(기득권의 지배논리)에 세뇌돼서 그것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진리를 말하는 것이 하나님 선교의 한 방편입니다. 대구에 무수한 교회가 있지만, 다른 복음을 전할 교회는 대구새민족교회 뿐입니다. 
대구새민족교회는 그런 뜻에서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길을 자신의 방식으로 감당하는 소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에서 서로 위로하고 힘받고 세상에서는 다른 진리를 증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 노선, 생활을 기뻐 받으십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선교에 참여하십시오. 교회에 힘쓰십시오. 교회를 통하여 보람과 기쁨을 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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