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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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 김기원
  • 승인 2020.06.16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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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서일과>

열왕기상 21:1-16, 마태오복음 5:38-42 (시편 5:1-5)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40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41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 42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

(마태 5:38-4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39절)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인간성을 해치게 된다는 근본으로 되돌아간다. 하늘 뜻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라는 것. 지혜롭고 결기있는 저항이 요구된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인간성을 해치게 된다는 근본으로 되돌아간다. 하늘 뜻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라는 것. 지혜롭고 결기있는 저항이 요구된다.

동태복수법은 폭력의 순환이 대개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보고 만들어 놓은 규제입니다.

상한선을 그어놓은 겁니다.

한 대 맞은 이는 보통 두 대 세 대로 앙갚음하니까

한 대 맞았으면 한 대만 때려야 한다는, 몹시도 인간적인 법 규정이지요.

예수님은 이 법의 근본 뜻은 그렇게 얄팍한 데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동태복수법이란 원래 폭력 근절을 원하시는 하느님 뜻 아래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폭력을 동일한 폭력으로 맞서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폭력의 악순환은 비폭력 저항으로 끊을 수 있다 하십니다.

폭력에 대한 비폭력 대응은 일면 무기력해보이고 굴욕적인 듯하지요.

하지만 오늘 가르침은 참 뼈대 있는 말씀이잖아요.

비폭력이라 해서 굴종하라는 말이 아님을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가르치시네요.

로마식민 지배에 성전체제와 종교적 경제적 신분체제의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던 민중들이었습니다.

‘윗사람’들은 백성을 종 다루듯 모욕적으로(손등으로) 뺨을 때리기 예사였고

백성들은 소출의 절반 이상을 앗아가는 가렴주구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식민주둔군은 걸핏하면 사람을 징집해서 짐을 운반하는 노역을 시키곤 했습니다.

​예수 말씀인즉

인격적 모욕인 뺨 때리기에는 눈을 부릅뜨고 다른 뺨을 대는 저항을,

옷을 빼앗으려는 이에게는 아예 홀라당 모든 것을 다 벗어주는 스트리킹을,

군인들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 징집한 이를 5리 이상 못 부리게 했으니 아예 10리 길을 가보라는 거지요.

해학적이고 적극적인 저항방법입니다.

사회적 폭력에는 마땅히 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폭력의 악순환 고리에서 해방되려면 상당한 지혜와 인내가 필요할 터입니다.

물론 이는 간(間)개인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요.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통 크고 거룩한 하늘마음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6·15공동선언 20년에 폭력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듣는군요.

미제국의 식민지배 폭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굴욕을 마다않는 맹종세력들의 언어폭력이 도드라지는 때

평화번영을 위한 자주통일 의지를 곧추세워야겠습니다.

요는 ‘폭력’이 모든 인간성을 해치게 된다는 근본으로 되돌아갑니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폭력에 노출될 우리입니다.

하늘 뜻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라는 것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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