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님이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 위에서 355일간의 투쟁을 마치고 내려왔습니다. 그 긴 시간은 날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355개의 목숨과도 같이 무거웠습니다. 김용희 님이 내려왔을 때 지켜보던 이들이 눈물의 환호를 보낸 것은, 그가 거둔 투쟁의 승리에 대한 감격만이 아니라, 그가 매일같이 맞이했던 죽음을 이기고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김용희 님의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김용희 님의 고공농성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철탑 위에서 흔든 복직 투쟁의 깃발에는 이 땅에서 노동자로 당당히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한과 피눈물이 담겨 있었기에, 해외와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민주시민과 해고노동자들, 그리고 삼성으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본 이들이 함께 연대했습니다. 특히 철탑 아래 농성장을 지키며 철탑 위로 날마다 생명줄을 올렸던 또 다른 삼성 해고노동자 이재용 님과 기아차 해고노동자 박미희 님의 희생적 활동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들을 포함하여, 연대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개신교대책위는 김용희 님이 철탑에 올라간 후 긴급히 시작하게 된 기도회를 두 달여 이어가는 과정에서 결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세상이 김용희 님을 외면하고 침묵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외치는 돌멩이가 되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연대였습니다. 그 후 개신교대책위는 ‘강남역고공농성공동대책위원회’ (이후 공대위) 활동과 1차 협상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1차 협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강남역 고공농성 연대투쟁은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협상의 목표와 향후 투쟁의 방식에 대하여 공대위와 투쟁당사자인 김용희 님 사이에 커다란 이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대위가 위임받아 진행한 1차 협상 내용이 당사자에 의해 거부됨으로써 1기 공대위는 거의 해산 수준이 되었고, 불가피하게 2기 공대위가 구성되었습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개신교대책위는, 건강악화로 잠시 투쟁을 중단해야만 했던 이재용 님 문제의 동시 해결을 요구하며 연대를 이어갔습니다.
새로운 각오로 투쟁이 재개되어 한 달여가 흐르던 때, 2차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용희 님이 하늘감옥에서 내려온 그 감격스러운 자리에 개신교대책위는 공식적인 축하메세지를 보내지 못하고 개인으로만 참여했습니다. 이번 연대투쟁이 가졌던 한계와 남겨진 문제들을 짚어보며 가슴 아픈 비판과 냉철한 반성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강남역 고공농성 투쟁은 반노동자경영을 해온 악덕 재벌 삼성을 향한 상징적인 노동자 투쟁이었지만, 동시에 목숨을 건 투쟁당사자의 요구를 관철해야 하는 개인 협상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연대자들의 판단도 다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쟁당사자와 연대자가 서로 신뢰하며 더욱 열린 구조로 연대의 틀을 유지했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 공대위 운영위마저 배제한 협상단의 활동과 결과발표는 우리를 당황과 실망으로 내몰기에 충분했습니다. 삼성과 합의한 세부내용을 발표할 수 없다는 것은 함께 했던 이들을 단지 동원된 군중으로 만든 꼴이 되었습니다. 더욱 우리를 괴롭힌 것은, 강남역 고공농성의 또 다른 투쟁당사자인 이재용 님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개신교대책위가 요청한 이 사안의 중요성을 2기 공대위가 간과한 점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하며, 우리 또한 공대위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그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하며 추동하지 못한 부족함을 반성합니다.
기쁨의 크기 못지않게 깊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김용희 님을 살리고, 해고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악덕 재벌 삼성에 맞서 똘똘 뭉쳐 싸우고 기도했던 모든 이들의 진정성과 헌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삼성에 경고합니다. 삼성은 자신들이 응당 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이, ‘인도적 차원’이라는 궤변을 앞세워 마치 김용희 님의 문제가 단지 철탑농성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본질을 호도했습니다. 또한, 같은 삼성 해고노동자 이재용 님의 문제에 대한 협상을 ‘갈라치기’ 하며 외면하는 기만책을 보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한 삼성의 ‘무노조경영’ 포기 약속이 이행되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만일 삼성에서 또 다른 억울한 노동자가 생긴다면, 우리는 다시 ‘외치는 돌멩이’가 되어 삼성에 대한 전면투쟁에 나설 것입니다.
2020. 6. 15
강남역고공농성 개신교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