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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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 박철
  • 승인 2020.06.0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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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에서는 종교를 지월(脂月)에 비유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하는 데도, 달은 보지 않고 사람들은 문자와 경전에 얽매어서 손가락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진리에로 안내하는데 있다. 

사진출처 : 박철님 페이스북
사진출처 : 박철님 페이스북

마치 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뗏목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가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진리를 만나는데 방해물로 작용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관심을 하느님을 향하게 하기보다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키는데 묶어둔다면 그래서 우리를 구속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는 마치 종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종교 산업은 번창하였고 개업만 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무한경쟁의 바람이 불어 닥치고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이제 이러한 종교 비지네스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한국 종교계는 속되게 말해서 예수 팔아먹던 장사, 부처 팔아먹던 장사가 이제는 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더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종교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물적 팽창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던 한국종교, 상업화된 지 오랜 한국종교, 날로 번창하던 종교산업이 이제 사양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교회나 사찰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종교는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우상으로 변해 버리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변한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를 믿는다거나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진리를 믿어야 한다.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구로써의 종교를 믿으면 안 된다. 교리, 신학, 성서, 교회, 제도, 직제 등은 모두 역사적인 산물이며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들이다. 

그 존재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진리에로 나아가고 이 세상의 종살이로부터 풀려나 자유인으로 살게 하려는 데 있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게 하려는 데에 종교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제도나 율법에 얽매어 살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감리교 목사 중에 이용도가 있다. 그는 예수처럼 33세의 짧은 생을 가장 치열하게 살다 갔다. 이용도는 기독교인을 정의하기를 고통을 스승으로 삼는 사람, 가난함을 애처로 삼는 사람, 비천함을 집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했다. 평안할 때보다 고통 속에 있을 때 더 참된 진리를 배우게 되며, 어깨 힘주고 거들먹거리는 부보다 가난함을 사랑하는 아내처럼 항상 곁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높은 자리 좋아하지 않고 늘 겸비하여 낮은 자리에 처할 줄 아는 것이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이웃과 세상을 위해서 자기는 낮아지고, 가난해지고, 고통을 달게 받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의 참다운 모습이요 교회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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