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기 열사 추모 및 오월 걸상 제막식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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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기 열사 추모 및 오월 걸상 제막식 추모사
  • 새마갈노
  • 승인 2020.06.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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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울림이 있는 추모사, 감동의 물결

지난 5월 30일 있었던 김의기 열사 추모 및 오월 걸상 제막식 추모사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그날 모든 참가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의기 열사 추모 및 오월 걸상 제막식 추모사 

5.18 광주의 상처는 수난과 죽음의 과거를 고스란히 기억 속에 간직한 채, 우리 민족공동체를 정의와 평화, 치유와 화해의 길로 이끄는 진리의 등불로 부활하였습니다.

5.18 광주의 상처는 우리로 하여금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주권재민의 가치 위에 서서 민족공동체를 정의와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치유되고 화해된 상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5.18 광주의 치유되고 화해된 상처를 통찰하며, 진리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함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생명 세상, 민주와 인권, 화해와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중단 없이 열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5.18 40주년을 맞아 1980년 봄 당시 5.18의 진실을 최초로 온몸으로 증언했던 김의기 열사를 기억하고, 그의 이름을 추모하며, 그의 죽음의 사건을 역사의 부활의 상징으로 새기는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강대학교를 다니며 감리교 청년회 전국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당대의 고난 받는 민중의 현실을 농민운동을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김의기 열사는, 1980년 5월19일 광주 북동성당에서 개최된 함평고구마농민사건 투쟁승리 기념식에 참가하며 광주학살을 목격하였습니다.

김의기 열사는 양심과 이성의 요구대로 자신이 목격한 국가폭력에 의한 집단살해의 비극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고, 바로 그 증언의 사명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5월30일 이곳 회관 6층 EYC 사무실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유인물로 만드는 과정에, 계엄군의 제지를 받고 피하다 6층 베란다를 건너서 창문 밖으로 떨어져 고통 당하다가, 스물 두 해의 꽃다운 나이에 끝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국가공권력에 의한 타살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억눌리고 빼앗기고 배고프고 협박당하고 그러면서도 할말 한마디 못하고 죽은 듯이 지내는 민중이 무섭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자.’던 김의기 열사는, “일시 죽는 듯이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영원히 사는 길인 끝끝내 서서 죽길 고집”하였고, 그의 길을 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에 짓눌리며 숨통과 눈과 귀가 막힌 채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전락한 민중들의 모습을 목도하고, 김의기 열사는 외쳤습니다.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공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며, 김의기 열사는 외쳤습니다.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 김의기 열사의 영혼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이 걸상은, 무디어진 우리의 양심을 깨우고, 우리를 다시 일어나 걷게 하는 역사의 상징으로 여기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걸상에 앉아, 지금 여기,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거듭해서 묻고 있는 김의기 열사를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 시대에 추락하는 김의기 열사들을 온몸으로 함께 받아내며, 생명의 안전과 주권재민과 한반도평화를 이루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함께 용기를 내어 길을 떠납니다.

2020년 5월 3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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