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이후 변화하는 세계
상태바
코로나 19 이후 변화하는 세계
  • 김경호
  • 승인 2020.06.03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가 4:3-5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다른 모든 민족은 각기 자기 신들을 섬기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 우리의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순종할 것이다.

본문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자는 유명한 미가의 꿈이 담긴 이야기다. 3절은 군사와 전쟁에 대한 꿈이고, 4절은 이상적인 경제에 대한 꿈이며, 5절은 종교에 대한 이상을 그린다. 오늘은 코로나19 이후 우리들의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특히 종교가 어떻게 변할지도 가늠해 보려 한다. 
 
문자 그대로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이 되었다. 그동안 흑사병, 스페인독감등 역사를 변화시킨 전염병과 질병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한 대륙의 질병, 국지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홍콩독감,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갑자가 이런 질병들이 창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19는 어쩌면 최초의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해당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시피하다. 세계적으로 5월 30일 현재 600만명이 확진되었고, 37만명이 사망했다. 

스웨덴은 세계 제1의 복지를 자랑하는 국가이다. 이들은 영국과 같이 집단면역을 주장하며 우리의 조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비웃었다. 집단면역의 주장은 어차피 유행할 것이니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60%이상이 감염되면 항체가 생겨서 자연면역이 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항체가 생기는 비율은 감염자의 3%에 불과하다. 스웨덴은 5월 말 현재 확진자가 36,476명 사망자는 4,350에 이른다. 인구는 한국의 1/5인 천만 명 정도이기에 비율로 보면 한국에 비해 100배에 이르는 사망자를 낳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가 어떤 질병인지도 모르는 체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대처하려고 했던 것이다. 

코로나 19는 그동안 서구사회의 기본을 흔들고 있다. 그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서구 사회는 풍요라는 신을 쫓아왔다. 자기들의 군사력의 우위, 경제력, 의료, 복지, 자본, 도시, 문명 등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코로나 19는 그 맹점을 통렬하게 드러내며 지금의 세계를 수정하도록 우리를 강제한다. 국가든지 기업이든지 종교든지 이 경고를 경청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선 거리두기로 사람들을 흩어 놓는다. 
사람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빌딩을 세우고 마치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같이 하늘까지 닿아보자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어 놓으셨듯이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도시화된 집단 문명을 거리두기로 흩어 놓으신다. 

유독 선진국에 사망자가 높다. 그들이 문명이라고 자랑하던 것들은 도시화로 사람들의 밀집도를 높혀가는 일이었다. 현재 지구인구중 도시인구는 50%정도에 이르는데 향후 빠르게 증가하여 7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서구 사회는 발달한 의료기술을 자랑했다. 그들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고급화한다는 명분으로 공공 영역이던 의료를 민영화했다. 그 결과로 미국은 10만명이 사망했고, 발달된 의료기술로 부를 축적하고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의 이탈리아는 25만명 확진되었고, 사망자가 3만 5천명에 이른다. 생명을 지키고자하는 의료의 본질을 상실하고 모든 것을 돈을 버는 것과 연관지은 결과, 결국 의료후진국이 되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공공의료의 붕괴가 가져온 혹독한 결과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몇 개월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변화들이 나타났다. 

1. 자연이 회복되고 있다. 
그 기간의 인간의 거리두기로 인해 지구의 공기가 맑아지고 오존층이 복원되고 있다. 멸종의 위기의 거북이가 해변에 나타나고 야생동물들이 공원을 거닌다.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 

올 봄 서울하늘이 맑아진 것을 경험하였다. 올해는 황사나 미세먼지로 고생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늘었지만 공기가 맑아져서 다른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죽어가지 않게 되었으며, 맑은 공기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생명을 잃는 사람보다 오히려 많다고 한다. 

한 풍자만화가 있다. 2019년에 동물들은 동물원에 갇혀있고 주변에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며 구경한다. 그러나 2020년에 사람들은 전부 자가 격리되어 자기 집 울타리 안에 갇혔고 마을 주변을 동물들이 어슬렁거리며 창 너머로 각자 집안에 갇힌 인간을 구경하고 다닌다. 이탈리아 속담은 말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하시고, 사람은 가끔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2. 전쟁이 사라졌다. 
그동안 끊이지 않던 국지전 전쟁이 일제히 휴전상태다. 예멘 내전, 시리아,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내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까지도 휴전하고 서로 협동해서 방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전쟁이 전부 누군가 부추기는 세력에 의해 증오를 낳고, 피 흘리게 했으며, 그들의 피를 통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세력은 따로 존재했다. 그러나 코로나에 대처하느라 전쟁이 사라진 것이다. 

3. 기본소득이 이루어지고, 빈부격차를 줄여야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흑인인구비율은 14%인데 확진자의 50%, 사망자의 70%가 흑인이다. 아마 흑인만 골라서 죽는다면 미국 사회가 눈 깜짝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 19는 흑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누구든지 죽음을 선사할 수 있으며, 전체 경제를 멈추게 하기에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세계 각국은 돈을 찍어내서 풀고 있다. 금융위기 때도 그랬지만 그 때는 돈을 파산하는 기업에 풀고 자본가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서민들에게 푼다.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고 배고픈 감염자들이 미친 듯이 돌아다닐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묶어두기 위해 우선 먹여 살린다. 그리고 신속하게 조치해야 함으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을 대상인가를 선별할 시간적 여유도 없기에 누구에게나 베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도 버틸 여유가 없기에 시급하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서 그렇게 악을 써도 되지 않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시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그동안 인간이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우리교회 출신이고 농촌목회를 하는 박종국 목사가 전화를 했다. 지금 전북 변산지역에서 목회 중인데, 그 지역은 코로나 확진자가 하나도 없는 청정지역이란다. 조심은 하지만 아무런 영향 없이 지내는데 국가에서 기본소득까지 주고, 농촌교회라고 지원금도 받았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농촌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범죄율도 현격하게 줄었다고 한다. 강력범죄가 90%이상 감소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코로나 이전에 강력범죄가 하루 600건에서 2건으로 줄었다. 엘살바도르도 그렇다고 한다. 

4.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성찰을 가져온다. 
서구인들이 자기들은 고부가 가치 산업만을 남기고 돈 안되는 노동집약적 사업, 공해유발사업들은 제3국에 넘겼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제조업이 무너졌다. 그런데 갑자가 교역이 중단되니 발달한 문명을 누린다는 나라들에서 휴지 때문에 몸싸움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서구에서 초기에는 마스크 쓰는 것을 비웃고 안써도 된다고 하다가 대확산을 가져왔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마스크를 만드는 시설이 대부분 제3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방역물품이 절대부족한 상황이라 의료진이 입을 방역복이 없어서 우비를 쓰고 진료한다. 기본적인 생필품 조달되지 않는다. 제일 잘사는 나라 미국에서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푸드뱅크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장사진으로 늘어선다. 그래도 그들은 차타고 음식을 받는 것이 확실히 다른 점이었다. 그동안 제3국을 노동착취, 환경착취, 자본 착취하던 문명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5. 종교도 달라진다. 
교회의 경우, 대교회주의가 유행했다. 특히 한국에서 대교회의 익명의 숲 안에 머무르는 교인들이 다수였다. 심지어는 시민 사회운동을 하는 진보인사가 한심한 이야기를 읊어대는 대교회 교인인 것은 이해가 죄지 않는 일이었다. 분석이 필요한 일이다. 그들은 아무런 의무도 없고, 최고의 음악과 춤을 공연장처럼 즐길 수 있으며, 서비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휴양시설과 묘지까지, 편리한 주차장은 덤으로 제공받는 시스템을 즐긴다. 

그런데 코로나 19 초기에 신천지 교인들이 각 교회로 흩어져 교회에 감염을 확산시킬지 모른다는 경계를 했고, 교회들은 긴장했다. 그후로 한국교회 대형교회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낮선 교인이 올 수도 없고 오면 싫어한다, 등록교인 아니면 입장 불가하고 입장 하더라도 익명으론 안된다. 자기 이름과 전화번호는 물론 체온과 몸 상태까지 기록해야 입장 가능하다. 대형교회에 확진자가 하나 나왔다하면 만 명, 수 만명이 검사하고 자가 격리해야 하니 그 피해가 막대하다. 그런데 사람이 많으니 그럴 확률도 매우 높다. 2미터 거리두기를 지키려고 에배 출석을 구역별로 제한하고 오지말라고 하는 실정이다. 

우리교회 같은 경우는 오히려 좋은 선교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운영위원회를 통해 온라인시대에 맞는 교회의 모습을 논의하고 한다......이제 예배 현장에 몇 명이 앉아 있느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 내용, 컨텐츠의 질이 소중한 시대가 되었다. 

성가대도 대형 성가대,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연주단, 솔리스트 사례해가면서 전공자 위주의 국립 합창단 버금가는 성가대는 지나가고 있다. 지난 부활절에 형제교회인 들꽃향린은 이종민이라는 뛰어난 영상제작자가 존재한다. 각자가 집에서 영상으로 찬양을 해서 보낸 후, 영상을 합성해서 합창으로 만들었다. 너무 멋있는 합창이었다. 이제 프로급 솔리스트들이 도열해서 찬양할 필요도 없다. 혼자서 여러 파트를 해서 합성해도, 대 합창단을 만들 수도 있고, 머지않아 멜로디만 녹음하면 멋있는 화음을 입혀 녹음해주는 프로그램도 나오지 않을까? 우리가 다양하게 온라인 예배를 마들 수 있다. 명상이나 기도도 마찬가지다. 주여 삼창하고 개구리처럼 와글대는 통성기도의 시대는 종료되었다. 굉장한 변화가 오고 있다. 

앞으로 우리들의 신앙에도 변화가 생겨야 한다. 

첫째, 우리가 보다 겸손하고 소박해져야 한다. 
큰 부자가 되고 대형교회를 이루고 세상 돈을 혼자 벌어들이겠다는 꿈, 큰 것을 쫓고 제일을 추구하던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 소박하게 평범한 것들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새기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되는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 

둘째, 우리가 사랑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1/3이 소멸되었다. 중세는 사람들 속에 있는 상실감,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희생양을 찾기에 나섰다. 그들은 마녀사냥으로 이백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천박한 인간들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는 방법은 증오를 키우는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 때리기, 아베가 혐한을 이용하기,... 이제 우리는 여전히 남을 헐뜯고 모함하는 이간질로 정신없는 사람들을 경계해야한다.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모이는 시대는 이렇게 이간질 하는 사람이 간혹 득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려워진다. 내용이 모두 공개되는 세계가 오면 진실성만이 통한다. 우리 모두가 영원히 살 것 같지만 갑자기 갈수도 있는 조건 앞에 한걸음 다가서 있다. 

셋째, 우리가 일상 속에 평범한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껴안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음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더불어 밥 먹을 수 있는 것이 또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는 깨달았다. 평범했던 일상이 바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제며 감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했기에 생각지도 깨닫지도 못하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자.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코로나 19로 인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었던 것들이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서 시대의 변화를 읽게 하시고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강제하시는 것들에 부응하게 하옵소서.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시고 
누구 탓으로 자신의 허물을 감추던 부끄러움을 용서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게 하시며 
평범하게 누리던 것들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