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기후우울증 환자들이여, 궐기하라!
상태바
전세계 기후우울증 환자들이여, 궐기하라!
  • 유미호
  • 승인 2020.06.02 16: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를 읽고

​기후우울증

이 책 <1.5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는 작년 8월에 나왔다. 9월 21일 대규모 기후행동을 앞두고 전격 출간되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자 하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레타 툰베리의 얼굴이 그려져있는 책표지가 매우 인상적이다. 나는 머리말에서 특별한, 의미있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기후우울증.’

기후위기에 대해 아무리 말하고 또 말해도 ‘기후침묵’에 가로막혀, 생존을 위해서 행동해야 할 시간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들이 피하기 힘든 병이다.

<1.5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12쪽

내가 왜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우울감을 느끼는가 궁금했는데, 이 때문이었을까? 우선 내 우울증에 이름을 붙일 수 있어 다행이다.

반면 다행이 아닌 건, 나의 우울증은 기후위기가 진행중이고, 기후침묵은 여전하고, ‘코로나19’도 끈질기고, 거기에 최근 인권운동가들의 충돌까지 보고 들으려니 치유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가는 듯 보인다는 것. 그런데!

 

불면의 밤을 뒤척여야 할 때

이 책에 참여한 지은이 중 한 명 조효제 님은 “기후위기, 절체절명의 인권문제”라는 글에서, 말하자면 우울증을 겪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묵묵부답에 가까운 기후침묵 앞에서는 “불면의 밤을 뒤척여야 정상”이라고 말한다(110쪽). 기후위기에 관한 문제의식의 묵직함과 심각함, 그리고 긴급한 공론화를 언급한다.

기후위기는 애초에 과학계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지구과학. 그 바람에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하여 지구인 모두가 적합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겼던 듯하다. 대중적으로 공론화된 주제였다기보다는 학술적 주제였다고나 할까···.

이제 더는 기후위기가 학술적 주제일 수 없다. 조효제 님은 기후위기를 대중적 인권운동의 주제로 다룰 것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기후위기는 인권운동의 주제다.

인권운동은 대개 인권침해가 일어난 이후에 개시되는 경향이 있다. 요즘 설왕설래 중인 위안부 운동도 과거에 자행되었던 인권침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지속적 공론화의 중요성 때문에, <정대협>과 <정의연>에 관련된 여러 비판들과는 별개로 일본군 성노예 인권운동(위안부 운동) 자체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테제가 도출될 수 있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벌써 수십 년 전부터 우리는 기후환경 침해현상들을 겪어왔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바닷물이 뜨거워지고, 이상기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모든 인권운동은 인권침해 사실을 용납하지 않고, 고발하며, 이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과 관계가 깊다. 이는 혹 아플지라도 인권침해 사실에 직면할 줄 아는 자존감 있는 인간의 움직임이다. 또 인권운동은 ‘내 몸’ 아닌 ‘다른 몸’에 일어난 인권침해 사실에 같은 인간으로서 관심을 갖는 공동체의식과 같이 간다. 자존감과 공동체의식은 지구 위에 태어난 지구인으로서 갖춰야 할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의 기본에 충실한 지구인들이라면 기후위기 앞에서 우울감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고 서글픈 느낌을 지닌 말이 되고 말았지만.

 

우울증과 희망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의 인권을 동등하게 다루는 인권운동의 전형이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신체적·사회적 삶을 유지할 기본권이 ‘불타는 지구’ 위에서는 아예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묶어두지 않으면 기본권이고 무엇이고 없다.

지구인이라는 존재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공룡처럼···.

희망이 없이 무기력해진 상태를 두고 우리는 ‘우울하다’ 진단한다. 그런 우울감에 빠진 사람들을 우울증환자가 부른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관심 갖는 와중에 기후우울증을 경험한다면 그것 자체로 (역설적 의미로 말하면)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기후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있고, 더 많아져야, 기후위기를 말하고 기후위기에 대하여 떠드는 목소리가 지금보다도 훨씬 커져서, 더 널리 공론화될 테니 말이다.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기후위기에 대하여 소리를 낸다. 그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더 예민(!)하기에, 더 우울하다. 그들이 우울한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들이 그만큼 우울한 것이 그래도 (진심으로 말하건대) 희망의 근거다. 미안하고, 또, 고맙게도···.

“전세계 노동자여, 궐기하라(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를 마지막 문장으로 하여 끝나는 책이 있었다. 나는 이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 문장을 따와서, 의미심장하게 패러디해보련다.

전세계 기후우울증 환자여, 궐기하라! (Depressing People of All Countries, Unite!)

* 글 - 이인미 (살림 지도위원, 여성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를 공부한 신학박사. 시민모임 <핵없는세상> 공동대표, 월간 새가정 전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