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와 생명 살림
상태바
채식주의와 생명 살림
  • 유미호
  • 승인 2020.06.01 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느슨한 채식을 하기까지

 

20년쯤 되었을까?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창3:19)’는 말씀을 받으며 성찬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흙에서 생명운동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을 때여서, 말씀이 특별하게 받아들여졌다. 주말농장에서 짓던 농사에서 만지던 흙은 만질수록 자신이 틔워낸 생명을 통해 맑은 공기와 초록의 향기, 그리고 먹을거리가 되어주었다. 결국은 창조의 섭리에 따라 내 삶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해주었다.

 

그러다 창조의 은혜를 누린 몸이 이 땅 동식물의 아픔과 괴로움을 공감하는데 둔한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회개의 몸 기도로 생활단식을 했고, 그 덕분에 조금은 더 고마운 마음으로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있는 물을 마시고, 만인의 노고가 스며있는 음식을 먹고, 베 짜는 이의 피땀이 서려있는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들의 안부를 묻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다고 생각되었던 어느 날, 느슨하지만 채식을 시작했다. 간간히 느끼던 육식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기도 했는데, 동물을 덜 소비하겠다는 결심에 따른 것이다. 하루 한 끼를 생채식을 할 때도 있었다. 이런 작은 실험이 습관화 된 건 2011년 구제역 파동 때이다. 뉴스에서 살처분 되는 중에도 자식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어미 소를 보고 받은 큰 충격 때문이었다. 종교인들과 합동기도회를 열면서 틀어놓았던 현장 영상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어 눈을 감았지만 그들의 비명소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끔찍하고 처참해 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

물론 때때로 고기를 안 먹겠다고 버티기 힘들 때도 있었다. 기어이 먹이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다가오는 이나 선택의 여지없이 제공되는 밥상은 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불편함이 사라지게 된 건, 음식과 우리의 관계를 하나님의 뜻에 비춰보고 내 필요를 넘어 제공되는 것에 대해 용기 있게 거절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느슨하게 시작되었지만 채식은 내게 매일매일 대하는 음식을 진심으로 창조주의 선물로 여기며 기쁘게 취하게 했다. 채식을 통해 밥상을 달리 보게 되고, 더불어 내 몸은 물론 날마다 숨 쉬고, 마시고, 먹는 공기와 물과 밥을 주는 지구가 자체로 우리 밥상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채식을 한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달리 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수도.

 

채식을 한다는 것의 의미

 

요즘 채식 하는 이들은 많이 늘고 있다. 어떤 이유로 채식을 하게 된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 과거엔 동물보호나 환경 윤리, 특히 종교적인 이유가 컸다. 그런데 요즘은 건강상의 이유가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쁜 일상에 채식과 슬로푸드와는 거리가 먼 인스턴트에 육식 위주의 식사를 하니, 초등학교 한 학급당 3~4명이 아토피 환자고, 10가구 중 1가구가 환경성질환을 앓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전체 질병 사망자의 71.5%인 2,557만 명이 육식에 의해 사망하고 있다. 과잉 생산된 곡물이 가축사료가 되면서, 축산업이 커지고 그로 육류 소비가 과다하게 늘어난 탓이다. 채식을 하면, 일반인들보다 20% 이상 장수하고, 심근경색증이 일어날 확률도 일반인에 비해 25%, 뇌출혈도 32%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보고도 한 몫을 했다.

 

물론 이들은 건강 때문에만 하지는 않는다. 시작은 그러했을지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음식 이외에 옷, 생활용품 등도 조금씩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구의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것을 우려해 동물 보호와 더불어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비건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채식 관련 정보를 찾으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이나 모피 등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자들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세계적 의학저널인 란셋(Lancet)이 기후변화를 현대인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라고 밝히면서, 온실가스의 절반을 차지하는 축산업과 그 부산물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사실 채식을 한 끼를 하면 비채식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1/4 이하로 줄이는 효과가 난다.

 

그러고 보면 채식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식생활을 바꿔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지구와 거기 거하는 모든 생명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단순히 자신의 건강을 위한 것이든 신념을 위한 것이든, 그 어떤 이유에서든 채식을 시작함으로 인간과 자연 모두가 골고루 풍성히 먹고 누리게 하는 음식을 먹게 되길 소망해본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로 보는 채식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모두 결핍이 아닌 필요를 넘어선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폐기에서 오는 문제이다. 이러한 시기에 중요한 것은 더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질 좋은 음식을 필요만큼 아니 조금 덜 먹느냐이다. 많이 먹어서 아픈 이들이 못 먹어서 아픈 이들보다 더 많은 시기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육식이 아니라 채식을 선택하는 건, 적정량을 먹어 건강하고자 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지탱해주는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시간이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는 때이니, 코로나19보다 더 긴급하게 조처를 취해야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최선의 선택으로 오래 전부터 채식을 추천해오고 있다.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소가 제시한 한 끼 식사에 대한 비교연구로 보면, 음식 1kg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채식 식단은 0.41kg, 소고기 요리를 넣은 일반 식단은 4.59kg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산화탄소보다 메탄가스가 20여 배나 더 강력한 온실가스이니, 채식을 선택하는 건 아픈 지구가 내는 신음소리를 듣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도 창조하실 때에 육식 위주의 식생활이 미칠 영향을 알고 계셨나 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본래 채식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창 1.29-30)고 하셨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외에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을 인간도 동물도 다 먹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니 그때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두려움 없는 평화가 있었고, 서로 상호공존 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채식은 선하고 육식은 악하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모두 채식을 통해 신음하는 창조세계의 회복을 꿈꿀 수는 있지만, 나 아닌 남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게 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먹을 것은 각자 각자의 고유한 선택사항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도 결정되는 것이고 말이다.

 

더구나 하나님은 노아 홍수 이후에 육식을 허락하시기도 했다. 어느 것이 더 선한가 하는 논쟁으로 서로 힘을 빼기보다는, 느슨하게라도 채식을 하면서 ‘홍수 이후에 허락하신 육식(창 9,3)’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안에서 깊이 성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특히 허락하셨으나, ‘피째 먹지 말라’하신 말씀을 우리가 겪고 있는 질병과 야생동물 및 가축들의 고통, 기후 위기의 상황 속에서 깊이 성찰해볼 일이다. 그러면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으리라”(사 65,25)하신 것처럼, 죽임이 없는 창조 질서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될 것이고, 기꺼이 채식을 연습할 마음도 생겨날 것이다.

 

물론 채식 연습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채식도 그 종류가 다르고 단계가 있어 다양하다. 그러니 음식의 섭취 범위에 따라 재미있게 연습할 수 있다. 거부감 없는 채식법을 골라 경험하면서, 나와 우리, 지구를 위한 건강한 식생활 방식을 찾아내보자.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간혹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닭고기와 같은 흰 살 고기까지는 먹는 ‘폴로(pollo)’ 베지터리안, 유제품과 동물의 알은 먹는 ‘락토-오보(lacto-ovo)’, 유제품과 알, 생선(어류)을 먹는 ‘페스코(pesco)’ 베지테리안, 동물성 아닌 채소와 과일만 먹는 ‘비건(vegan)’, 적극적 채식주의자로 과일, 곡물, 잎사귀만 먹는 ‘프루테리언(fruitarian)’이 있으니, 선호하는 것에 따라 일정기간 즐거이 연습해 볼 수 있다.

 

특별히 ‘비건’들은 동물성을 배제한 식물로만 식단을 꾸려 먹는 채식주의자로서만이 아니라 동물을 죽여서 만드는 모든 제품을 거부한다. 동물권을 인정하고, 동물들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게 하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신념과 가치를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인데, 이들이 고민하는 것을 찾아 함께 공부하며 나누어보자.

지속가능한 세상을 향한 채식 연습

 

신앙적으로 서로 조화롭게 있어 ‘참 좋다’ 하셨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육식을 즐기는 게 하나님의 영이 깃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생명까지 해하는 것이라 고백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지금의 기후 위기도 하나님이 건강하게 성장시킨 생명을 거부하고, 가축이나 야생동물들을 고통 중에 죽어가게 하면서 먹어 생긴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이같이 생명의 고통을 먹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연과 다른 생명에게 잔혹 행위를 반복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생명의 질서를 깨고 그들에게 가한 폭력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와 모두의 평화를 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전 세계적으로 비거니즘 문화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들은 동물에게서 오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도 취하지 않기까지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는 아예 비건 거리(쉬벨바이너)가 생길 정도로, 자신은 물론 지구 건강을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보다 기대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만큼 채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나라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밥상은 곡식과 채소가 주재료였듯 원래 채식에 가까웠다. 각자 각자가 밥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도전해본다면,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기후 위기에 직면해 동식물이나 산림, 토지뿐 아니라 먹거리까지 위협받고 있다. 긴급한 조처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히려 그 상황을 부추기는 일상을 살고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육식을 뒷받침하는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와 산림 훼손이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축산업은 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영양소인 단백질을 공급해주지만, 그 대가로 지구와 그 속에 사는 생명들이 위험이 처하게 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이르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축산을 통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메탄인데, 이산화탄소보다 온실가스 효과가 23배 높다. 뿐만 아니라 같은 칼로리의 곡물을 생산할 때보다 축산업은 수십 수백 배의 땅을 사용해야 해서 숲을 파괴하게 되고, 또 식량과 물 문제도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

 

모두가 비건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채식 인구가 겨우 전 세계의 약 6%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허무맹랑한 추측일 수 있지만, 모두가 채식을 한다면 위기를 넘어 세상을 지속가능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모두가 완전 채식을 하면 전 세계 음식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0%인 96억 톤을 연간 감소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와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채식이 빠른 효과를 낼 것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여럿 나와 있다.

 

작금의 지구 위기를 보면서 신음하는 피조물들 앞에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싶다면, 일주일에 단 하루씩만이라도 채식을 하며 하나님이 처음 허락하셨던 식생활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던’ 식생활은 우리의 몸은 물론 창조세계,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우선 성경은 노아 홍수 이후의 육식이 허용하긴 했지만, 분명하게 처음 시작을 채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흔적은 우리 인간의 몸이 그대로 증명한다. 우리 몸은 채식에 좋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채식하는 동물들처럼, 풀을 잘게 부술 수 있게 치아는 뭉툭하고 침에도 채식동물에게만 나오는 아밀라이제 소화효소가 들어있다. 위에는 고기를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 위산이 분비되지 않는다. 육식동물에 비해 산의 농도가 10배 이상 낮다. 소장 역시 채식동물과 닮아서 긴데, 이는 우리 몸이 애당초 육식보다 채식에 더 적합하게 창조되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의 선택, 채식

 

우리는 오늘도 먹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고 느끼고 또 맛본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모두가 골고루 풍성하게 누리게 하신 창조세계이다. 하나님은 친히 만드시고 ‘참 좋다’고 감탄하신 이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시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계신다. 날마다 창조세계와 가까운 삶을 살며 채식을 즐긴다면, 신음하는 피조물의 아픔을 자연스레 공감하게 될 것이고, 그에 필요로 하는 도움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해가게 될 것이다. 날마다 먹는 것을 통해, 신음하는 피조세계의 이웃으로 거듭나게 되길 소망한다.

 

분주한 일상을 보내며 음식을 먹다보면 사소하게 여기기 쉽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결코 사소하지 않다. 오히려 미래의 우리와 세상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행위이다. 우리 몸과 지구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기후 위기 시대의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워줄 식생활로는 채식만한 게 없다. 채식은 나와 후손을 위해 생명을 선택하는 일이다.

 

만약 익숙한 것이 좋고 분주한 일상이 먹는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핑계대게 하고, 채식을 하는 것이 머뭇거려진다면, 우선 육류 생산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고통 받게 하고 있는지 측정해보자. 나와 우리의 ‘탄소발자국’을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후손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공감하게 하고, 또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답을 찾아가게 할 것이다(http://www.bbc.com/news/science-environment-46459714).

 

먹고 있는 고기의 종류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 7kg이 필요하다. 전 세계 13억 명이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데, 해마다 10억 마리의 소가 전체 곡식 생산량의 3분의 1을 먹어치우고 있다. 게다가 축산업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전 세계적으로 운송업보다 18%나 높은데(유엔식량농업기구), 자신이 한 몫하고 있음을 안다면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살피는 여정으로서 채식을 연습해보자. 신음하는 피조물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채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자신은 물론 고통 중에 있는 지구는 위로를 받고 또 치유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채식에 대한 염려가 있다면, 우선 먹는 횟수와 양을 줄이는 것으로 출발해도 좋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채식을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해봐도 좋다. 한 사람의 채식은 매년 1인당 1천2백24평의 나무를 살려, 50년이면 1인당 약 6만 평 이상의 숲을 보호한다고 하니까, 70명의 성도가 한 주에 하루 온전히 채식을 하면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교회적으로는 '고기 없는 주일'을 정하여 교회 밥상은 물론 성도들의 가정 식단에서 채식의 비율을 높여가도록 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면 성도들의 상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고, 그 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영이 가득해질 것이다.

 

물론 채식만이 창조 질서에 따르는 올바른 생태적 식생활이라고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단지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명 위기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채식의 의미를 시대적 상황 속에서 깊이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일정기간을 정해 채식 연습을 하면서 말이다. 채식은 단순히 개인의 먹는 습관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지구 저편의 타인은 물론 지극히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새로이 조명되고 있는 채식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식생활에 변화를 주어보자. 지구라는 ‘작은 행성을 위한 식단(프란시스 무어 라페)’을 만들어보고,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요리해 나눠먹는 법’을 알아 창조주 하나님과 신음하는 피조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식사를 해보자.

 

그리스도인으로 먹는다는 것

 

먹는다는 것은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 살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이 깃든 성전을 살리는 거룩한 일이다. 이같이 소중한 먹는 일을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세상의 정성을 알아차리는 것일 게다. 지금 나는 자신의 생명을 맘껏 뽐내며 자라다 제 생명을 나에게 먹을거리로 기꺼이 내어준 생명을 알아볼 수 있는가?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은 고기든 열매든 풀이든 낱알이든 '피째(생명의 고통)' 먹지 않는 생명의 음식인가?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을 살피는 일을 시작해보자. 그러면 밥을 대할 때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먹이로 내어주셨던 주님(요 6:51)을 모시게 될 것이고,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것을 보시고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앞장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밥, 생명을 살고 또 살리는 밥을 먹고 먹이기 위한 채식을 시작해보자. 코로나로 아직 교회 공동식사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6일 동안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주일 하루만큼이라도 채식을 통해 주님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즐기게 해봐도 좋겠다.

 

한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만 채식해도 일 년이면 나무 15그루를 심는 효과가 난다고 한다. 성도들이 주일 하루만이라도 철따라 자연에서 오는 곡채식으로 생명의 양식을 나누게 된다면, 거룩한 성전(고전 3:16~17)으로 거듭나 생명의 씨앗을 심고 가꿈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을 여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밥상에 올리는 식단을 채식 위주로 바꾸는 것 말고도, 식품 생산과 유통 시스템의 변화시키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하는 데 고비용이 드는 고기에 더 높은 가격을 매기고, 과일과 채소는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식품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버려지는 음식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세우게 된다면, 매일매일의 밥상을 통해 즐겁게, 넉넉하게, 창조적으로, 함께, 회복적으로, 구속적으로 먹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만드시고 보살피며 고치시는 은혜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흙으로 지음 받아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지음 받았다. 날마다 흙에서 난 것, 특별히 건강한 흙에서 난 곡채식을 즐겨 먹음으로, 사는 동안 생명(生命) 됨을 다하고,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여는 씨앗이 되어 하늘의 열매를 맺고 또 나누어주게 되기를 소망한다(목회와 신학 2020년 6월호 ‘이슈와 진단’ 기고글).

- 글/ 유미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픽사베이
@픽사베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