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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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인가 ?
  • 김기원
  • 승인 2020.05.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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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4. 부활절 일곱째 주일 설교, 본문 : 행 1:1-11 / 엡 1:17-23 / 마 28:16-20 (시편 47)

오늘은 부활절기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교회는 예수 승천, 곧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모든 것의 모든 것인 하늘의 자리로 돌아가신 것을 기억합니다. 때문에 성서정과는 그분의 유지를 받들어 현실화할 땅의 교회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읽은 복음은 마태오에 의한 교회론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보편교회가 주창하는 교회에 대한 정의를 선도합니다. 일반적으로 교단헌법 등에서는 교회를 이렇게 정의하지요. “교회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에 응답한 이들의 모임(고전 1:2)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신 하느님의 뜻을 지상에서 함께 실천하고자 모인 공동체이다.”

표현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성서를 최종적 식별도구로 삼는 교회라면 대체로 이러한 정의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논할 때면 반드시 세 가지 뷰포인트viewpoint를 두어야 합니다.

춘무인추무의도,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다. 예수정신을 구현하려는 현장에서 교회가 드러난다. 복음화의 결기와 기쁨이 창출되는 자리다
춘무인추무의도,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다. 예수정신을 구현하려는 현장에서 교회가 드러난다. 복음화의 결기와 기쁨이 창출되는 자리다

먼저 교회의 주체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치밀하게 계획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요. 만일 그리된다면 그것은 사람이 만든 조직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없으면 교회는 성립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신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구체적 비전과 계획도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비전과 계획은 하느님 앞에서의 가난이라는 기본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란 성화의 순례길을 걷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미 완성된 이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성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구도자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은 마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그중에는 못나고 어긋난 이들도 포함될 수 있고 잘나고 식별력 높은 이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죄인들의 집합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히 회개하는 공동체이며 그리스도를 따라 걸으려 서로 도와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비록 죄인들의 모임이긴 하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려는 목적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교회를 순결한 창녀라고 표현했습니다.

 

셋째 교회는 세상을 성화시키려는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자기만의 성(城)을 잘 지켜서 자기들만의 천국을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녹고 빛으로 타오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비록 스스로 완벽하다 할 수는 없으나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도정에 있기에,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진리를 선포하고 세상이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도록 힘쓰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은 오늘 마태오복음이 적시하는 지상명령입니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각 구성원들이 바로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어느 교회가 있고 내가 거기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교회를 구성하는 주체이기에 내가 곧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성립요건은 무엇일까요? 예배당 건물이 있고 장로교 헌법이 규정하듯 30명 이상의 성도가 있어야 교회가 됩니까? 당회조직과 구역조직 혹은 성가대 같은 것이 있으면 교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듯 구성방식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액션을 기준한 성립요건이자 본질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교회이고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라는 집을 떠받치는 다섯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예배와 성사(전례)생활, 가르침과 배움, 희생과 봉사, 친교와 소통, 사랑의 선교 등 다섯 행위입니다. 통상 외래어를 써서 케리그마와 리투르기아, 디다케,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미션이라 표현하지요. 이 다섯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고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어느 하나가 소홀해지면 집의 기둥 하나가 무너지듯 교회 전체가 위태로워지게 됩니다.

 

귀가 따갑도록 들으신 원론입니다만 오늘 마태오복음이 예수님의 유언처럼 제시한 교회론 앞에서 다시 새겨보겠습니다.

 

첫째, 둘이나 셋일지라도 공동의 예배와 성사생활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반대로 진실된 예배와 신실한 기도생활이 없으면 교회가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자기 뜻 대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일을 게을리하면 교회의 근간이 무너집니다. 성도가 예수와 친해지고 그의 말을 사모하여 마침내 자신을 비워 하느님이 자신을 채우실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둘째로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늘 겸손히 배우려 하고 영적인 갈망이 있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으므로 영적 성숙과 변화가 없으면 이내 무기력해지고 맙니다. 교회는 신앙 선배들의 놀라운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생활을 통해 교우간에 서로 긴밀히 배웁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가 늘 견지되어야 합니다.

 

셋째, 디아코니아 즉, 사랑의 실천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아가페)이라는 말 한마디로 수렴됩니다. 그런데 사랑은 희생과 봉사를 통하여 실천됩니다. 왼손 하는 일 오른손 모르게 자기의 몫을 떼어내는 일은 하늘도 감동하고 사람도 감동하는 법입니다. 이 감동이 없으면 교회는 활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넷째로 진실한 소통과 친교입니다. 이는 공동체를 이루는 덕목입니다. 교우들 간에 깊은 사랑이 담긴 교통이 없으면 교회는 메마르기 마련입니다. 사랑의 충고와 배려깊은 기도 대신에 시기하고 비방하면 공동체는 깨집니다. 코이노니아는 하늘과 나, 나와 교우, 교회와 세상과의 입체적 소통을 통하여 완성됩니다. 하느님과의 교통이 배제되거나 세상과의 교통이 배제된 교우들만의 교통은 교회를 친목서클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교활동입니다. 오늘 복음과도 연결되는 교회 본질입니다. 먼저 갈릴리로 가라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으로 가서 함께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교회의 지상명령입니다. 또 모든 이들을 예수 제자로 만들라 하셨습니다. 세상을 예수정신으로 무장시키고 개벽시키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생명다움 회복, 정의에 기초한 평화의 조성, 평등에 기초한 자유의 기쁨 창출 이것이 세례를 베풀고 제자화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단사이비처럼 자칫 옹졸하고 독선적인 선교방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세례와 제자화 말씀은 삶의 현장에서 복음적 가치를 구현하고 복음의 기쁨을 나누라는 뜻입니다. 세례는 단순히 교회 다니는 표식을 심는 게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삼위 하느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되게 하는 상징행위입니다.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인즉 사람들을 교인으로 만들라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로 온통 적셔지도록 하라는 광의의 뜻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교회의 진실한 사랑,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랑이 사람들에게 하느님 체험의 감동을 일으킵니다. 교회의 듬직한 믿음 - 돈보다 하느님 통치에 삶의 가치를 두고 세상권력 눈치보지 않고 하느님의 정의를 철저히 구현하려 하는 믿음이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이처럼 교회는 삶을 통해 예배드리고 가르치고 섬기고 교통하며 선교합니다.

 

이상의 것들이 교회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입니다. 교회마다 나름의 색깔이 있는 것은 다섯 기둥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세워내느냐 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 교회는 정관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보편교회와 더불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서로 합력하여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교회공동체로서 사랑 안에서 서로 교통하고 영적 성장을 도모하며,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언하려는 것이며, 아울러 선한 이웃들과 더불어 생명과 평화를 일구고, 해방과 정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하느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려는 것이다.”(정관 제2<목적>)

나아가 정관 45조에는 우리가 특별히 지향하는 바가 적시되어 있습니다. 침묵 관상생활의 강조, 영성과 정의의 조화를 위한 노력, 교파·종파 구분을 넘어서는 예배예전의 갱신, 비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자유와 개방성 등이지요. 이참에 교회정관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특별히 지향하는 바가 교회활동 다섯 기둥을 효과적으로 지지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노력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기둥에 종속되는 일이 기둥 세우는 것을 앞지르게 되면 집은 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시기를 마무리하는 오늘 예수승천을 기억하며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승천'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하느님나라 일꾼으로 나서야 한다는 당위와 사명을 일깨우는 개념입니다. 예수의 부재 속에서 예수를 선명히 드러내는 일이 교회인 우리 각자가 받은 지상명령입니다. 그 은총의 선물을 잘 받아 키워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1: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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