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민중 저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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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민중 저항성 
  • 박철
  • 승인 2020.05.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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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 망월동 연합예배 설교

저는 목포에서 태어나 한 살 때 광주로 이사를 가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습니다. 광주는 저의 어릴 적 추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고향입니다. 그리고 한국신학대학과 군복무를 마치고 1979년 미국으로 갔는데 간 지 한 달 만에 박정희의 죽음이 있었고, 다음 해 518민중항쟁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5월17일, 구 망월동묘역 상단 공터에서 전국예수살기 회원교회들이 '기억하라 5월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이란 주제로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 연합 주일예배 현장
사진은 5월17일, 구 망월동묘역 상단 공터에서 전국예수살기 회원교회들이 '기억하라 5월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이란 주제로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 연합 주일예배 현장

그리고 독일 기자 힌치펜터와 선교사들이 몰래 찍은 사진들을 엮은 오 광주!로 시작하는 기록 영화를 보면서 기억 속에 아스란히 남아 있는 금남로의 간판들과 피로 얼룩진 주검들을 보면서 피가 솟구치는 전율을 느끼곤 했습니다. 처음 이곳 망월동 묘지를 찾은 게 1982년이었습니다. 초가을이었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수십 개의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비석도 없이 뗏장이 떨어져 나간 무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칠팔명의 청년들이 누군가의 무덤 앞에 서서 소주잔을 놓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운동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하얀 소복을 입은 어느 어머님이 다가오더니 ‘여보세요, 내 아들 보셨어요?’ 그분은 1980년 이후 매일 아침이면 깨끗한 소복을 입고 그 묘지에 나와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마도 저 세상 사람이 되었겠지요. 

제가 미국에서 다시 돌아오려고 했을 때에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한 10년쯤 공부 마치고 돌아오는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24년을 살다 다시 돌아오는 것은 귀국이 아닌 또 하나의 이민이었습니다. 아들은 대학, 딸은 고등학교 재학 중이었으니 가족과도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돌아가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이날 망월동에서 만났던 그 어머니의 외침이 제 귓전에 계속 맴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망월동 묘지를 함께 갔던 사촌동생이 있었습니다. 조헌장이라고. 한신대 2년을 다니다 목포로 내려와 노동운동을 하던 동생이었습니다. 광주항쟁 소식을 듣고 시민군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26일 마지막 날 저녁에 도청을 떠났는데, 그때 자신 또한 목사 아들로 윤상원열사를 비롯한 문용동 류동운 동지를 버려두고 떠났다고 하는 자책감 때문에 폭음이 잦아 채 나이 50이 되기 전에 삶을 마쳤습니다.

518 광주민중항쟁에 관련한 또 한 사람의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저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조그마한 슈퍼를 운영하면서 아이 셋을 낳고 잘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가정불화가 심해지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와 얘기를 할 때마다 FBI가 전화를 도청하고 가게와 집 안방에 감시카메라를 통해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직접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주위 친척분들이 말하길 80년 당시 공수부대 중대장으로 광주에 와서 저지른 과도한 폭행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518 당시 폭력을 저지른 공수부대원 대다수가 이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이가 헬기기총 사격이 없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얘기가 언론에 떠오를 때마다 당시 헬기에 탔던 조종사나 기관총 사수는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생활을 담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양심선언밖에 없습니다.

그간 진압군으로 참여했다가 양심선언을 하신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작년 518때에는 미군정보요원이었던 김용상님의 증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두환의 광주방문과 사격명령, 공수부대 요원들의 성폭행, 헬기 사격 등등 그동안 논란들을 잠재우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증언하는 가운데 편의대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수십 명의 보안사 요원들이 민간인 복장(이중에는 넝마주의 복장)을 하고 시민들 사이에 들어가 여러 가지 악소문과 폭력 조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편의대에 직접 참여했던 분이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저들이 퍼트린 거짓 소문 가운데는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광주에 파견된 군인은 모두 경상도 출신들이다. 북한 간첩이 쏜 독화살에 의해 사람이 죽었다. 교도소를 습격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방화나 폭력을 앞서서 이끌었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당시 언론에 등장했던 얘기들입니다.

또 허장환 전 505 보안부대 수사관은 외딴 건물을 화장터로 만들어 상당량의 시신을 화장 처리하였다는 증언을 하였습니다. 광주항쟁 사망자의 숫자는 정부 발표 168명입니다만, 이는 완전한 허수입니다. 2017년 5.18 연구소 정수만 비상임연구원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당시 체포 구금된 2,500여명의 명단과 병원 기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 900명 정도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저는 이 숫자 또한 최소한의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이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태워 없앴거나 암매장한 경우 행불자로 가족의 신고가 있는 경우에만 여기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 숫자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민군으로 끝까지 저항하며 총을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는 고아 출신의 구두닦이, 넝마 줍는 사람들, 거지 등등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는 무연고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그 짧은 며칠 사이에 주먹밥과 헌혈을 통한 시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고아의 설움과 한을 풀 수 있었고,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작년 여수의 한 교회 목사가 설교를 하는 도중에 자신도 직접 518을 경험했다고 하면서 518민주항쟁을 폭력시위로 비난했습니다. 광주NCC를 비롯한 전국의 여러 목사님들이 항의성명을 내고 규탄기자회견을 하자 사과를 하였습니다만, 그런데 만약 그분이 당시 거리에 서 있다가 곤봉에 맞아 머리가 깨졌거나, 날아다니는 총탄에 다리를 다쳤거나 아니면 임신한 부인이 남편 돌아오기를 문밖에서 기다리다 날아오는 총탄에 맞아 죽었다면 그분의 518에 대한 기억은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신앙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는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질문 앞에서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의 문제이고, 원수가 오른뺨을 쳤을 때 어떻게 왼뺨을 돌려댈 수 있을까 하는 실천의 문제입니다. 사실 폭력에 관한 문제는 본훼퍼목사께서 이미 히틀러와의 관계 속에서 답안을 이렇게 제시한 바 있습니다. 내가 목사로서 버스에 치여 죽은 시민들을 장사만 치르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시민을 치어 죽이는 저 미친 운전수를 끌어내릴 것인지.

역사도 그러하지만, 정의가 뭔가요? 엄격히 말하면 그건 힘을 가진 자의 논리입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가 정의가 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세상 역사입니다. 성서가 역사에서 새로운 것은 바로 이러한 강자의 힘의 논리를 거부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요 야훼 하느님은 언제나 눌린 자와 함께 한다는 역사 이해였습니다. 이것이 출애굽신앙이요 예언자 정신이요 예수의 하느님 나라 복음 정신입니다. 

복음에 대한 근본 이해가 달라지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근본이 달라지고 말씀 해석이 180도 달라집니다. 하나하나의 문구 해석에서 벗어나 글자 너머의 뜻을 찾아내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언급할 때 가장 자주 말해지는 단어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용서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 죽음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다 보니 비폭력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전제가 되곤 합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웃 사랑을 넘어 원수 사랑을 말씀하시니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인 듯 보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사랑을 많이 외치는 교회일수록 교회 내분이 잦고 북의 형제들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이름에 사랑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교회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북의 기본 이념 체제인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고 거부합니다. 사탄 마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 용어는 잘못된 용어입니다. 예수 말씀 근본에 충실하려면 원수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들을 비근본주의자라고 불러야 합니다. 태극기집단이라는 용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태극기를 들고 나타나니 가장 애국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매국노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함께 들고 다니는데 이는 외세를 의존하는 식민지 노예근성의 발현입니다. 태극기가 19세기 외세의 힘 앞에서 대한제국의 독립과 주체의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게 지금 저들에 의해 반대의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도신조에서 우리는 예수가 빌라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고백하지만, 네 개의 복음서는 하나같이 빌라도를 예수 처형의 책임에서 면제시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는 친로마적입니다. 예수에게서 가장 믿음이 좋다고 칭찬을 받은 사람은 종의 병을 예수의 말씀 한마디로 고친 로마 백부장이었고 십자가 처형 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 또한 로마 백부장이었습니다. 마치 일제강점기 때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예언자가 나타나 조선의 백성들이 모두 따르는데, 그가 믿음이 제일 좋다고 칭찬한 사람이 일본장교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진짜 알아본 사람 또한 일본군장교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아예 데오빌로 각하라는 로마 관료에게 보내는 보고서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여기 일제 강점기의 어떤 위대한 한 종교지도자의 삶을 기록한 평전이 있는데, 그 책 서문에 일본에 있는 고위 관리에게 보내는 보고서 형식으로 시작한다고 하면 우리가 그 문서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제 말은 기록된 문자 너머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천명하는 복음서 안에는 로마제국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게 아니라, 불을 던지러 왔다. 옷을 팔아 칼을 사라. 예수의 마굿간 탄생 또한 낮아짐의 상징으로 이해하지만 왜 하필이면 유대의 가축이 아닌 로마군의 상징인 마굿간을 말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계속 질문을 해보면, 예수의 제자 시몬은 무장독립투쟁그룹인 젤롯당 출신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도 있습니다. 저는 헬라어 원문이나 영어에 iscariot이라는 단어가 우리 말로 옮기면서 첫 두 철자가 사라지고 왜 갑자기 가룟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흔히 가룟지방 출신이라고 해석하지만, 가룟이든 이스카리옷이든 그런 지명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로 말하면 몸에 폭탄을 두르고 적의 심장부에 들어가 단추를 누르는 일종의 자폭단과 같은 단검 시카리파 독립투쟁단을 말합니다. 재정을 담당했던 유다가 노예 한 명 값에 해당하는 은전 30냥을 받고 스승을 팔았다는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를 하기보다는 예수께서 민중봉기를 포기한 일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배반했다는 해석이 더 이성적인 해석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왜 유다를 스승으로 모시는 유다신앙공동체가 있었고 저들의 예수 증언인 유다복음서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비폭력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성전 숙청시 예수께서는 폭력을 사용하셨나요? 아닌가요? 채찍을 휘둘러 성전제사용 희생제물을 팔고 있던 상인들을 내어쫓고 로마의 동전을 사람 얼굴이 들어가지 않은 성전헌금용 동전으로 바꾸어주던 탁자를 뒤집어엎고 환전상들을 내어쫓은 것은 폭력인가요? 아닌가요? 성전 경비병은 물론이고 돈을 취급하였으니 당연히 경호원을 몇 명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저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당연히 물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에서는 숙청 직후 아무도 제사용 기구를 들고 성전 뜨락을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성전 뜨락의 크기가 오늘날 어느 대형교회 뜨락 크기만 하면 가능한 얘기이겠습니다만, 당시 예루살렘 성전 뜨락은 수만명의 순례객이 운집하는 축구장 3개를 합친 크기였습니다. 이 넓은 장소를 예수 혼자서 아무도 지나다니지 못하게 했다. 이게 마가의 창작이라면 괜찮지만, 만약 이게 사실의 기록이라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우리는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해서 예수그리스도에게만 붙이는 특수용어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천년 전 복음이라는 단어는 예수 제자들이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라 로마황제에 연계된 단어였습니다. 전쟁의 승리 이후 로마황제가 전하는 말을 유앙게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약탈한 보화와 노예들이 곧 로마시민 여러분의 손에 선물로 주어질 것이라는 기쁨의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 또한 기독교용어가 아니라 본래 로마 시의회를 일컫는 단어였습니다. 옥타비아누스 장군이 악티움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을 격퇴하고 로마 황제로 군림하자 로마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합니다. 그 뜻은 신의 아들(호 휘오스 투 테우)이라는 뜻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단어들, 곧 은혜(유카리스), 구원(소테리아), 재림(파루시아) 이 모든 단어들이 본래는 로마 황제에 연계되는 언어들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거부하고 저항했던 정치범 게릴라들을 처형하던 극형이었습니다. 사람을 처형하는 게 목적이 아닌, 여러 날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게 만드는 방식이 십자가 처형법입니다. 동네 가장 높은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게 되면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로 밤에는 까마귀떼와 늑대들의 공격에 의해 눈알이 파이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마을사람들의 심장을 파고 듭니다. 너희들도 로마를 반대하면 저렇게 된다고 하는 일종의 고문형이었습니다. 이렇게 저주받아 죽어간 예수를 향해 복음서 저자들과 바울은신의 아들로, 주로, 은혜를 베푸는 자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로 고백한 것입니다. 당시 가장 높게 추앙을 받던 로마 황제에 연계된 단어들을 모두 당시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 사형수 예수에게 연계시킴으로 그 의미를 180도 바꾸었습니다. 단어의 의미만 180도 바꾼 것이 아니지요.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힘이 센 자들을 향해 굴러가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우고 거꾸로 돌린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짧은 백 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는 외세에 빼앗기고 나라는 반쪽으로 쪼개졌습니다. 참으로 암울한 백년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저항하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시작한 항일독립투쟁, 31혁명과 610광주학생항쟁, 해방 이후 분단을 거부하는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 군사독재타도에 앞장서는 419민주항쟁, 부마항쟁, 518민중항쟁, 그리고 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끝내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처넣었고 문재인정권과 함께 이번 총선에서 민의 뜻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바라는 완전한 민의 역사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5월17일, 구 망월동묘역 상단 공터에서 전국예수살기 회원교회들이 '기억하라 5월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이란 주제로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 연합 주일예배 현장
사진은 5월17일, 구 망월동묘역 상단 공터에서 전국예수살기 회원교회들이 '기억하라 5월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이란 주제로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 연합 주일예배 현장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함께 모인 것은 40년 전 희생당한 영령들을 위로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저들이 어떤 꿈들을 갖고 투쟁하다 죽음을 맞이했는가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함입니다. 518정신이란 자유와 해방, 평등과 자주라는 민주와 민족 정신의 구현이요, 민 주체의 역사 회복을 말합니다. 이 자리는 개인의 물질 욕망이 각자의 삶을 옥죄이는 시장자본주의 경쟁사회 속에서 주먹밥과 헌혈이 갖는 시민공동체 정신을 회복함으로 참다운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허리가 끊어져 피가 통하지 않음으로 서서히 썩어 문들어져 가고 있는 한반도의 혈류를 터야 합니다. 철조망을 뚫고 만주와 시베리아를 거쳐 저 유럽과 아프리카 땅끝까지 주먹밥 공동체 시민정신으로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518 정신입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우리 민족역사를 고난이라는 한 단어에 비추어 설명하면서 여기에는 분명히 뜻이 있다. 한반도는 세계의 썩은 물이 모이는 하수구와 같다. 그러나 이 하수구에서 분명코 세계를 구원할 옥동자가 태어날 것이다 라는 얘기를 했으며, 김교신 선생은 한반도의 지리적인 형태가 사람이 그 어깨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막 일어서려고 하는 隆起의 모습으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이 솟아오르는 융기의 힘은 발목에서 나오는데 광주는 바로 사람의 발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자리는 단순히 518 희생자의 무덤이 아니라 한반도가 일어서기 위한 힘의 원천이 되는 아킬레스 힘줄인 것입니다.

바로 이곳이 3천오백년전 폭력과 오만의 제국 바빌론 그발강가에서 에스겔 예언자가 목격했던 마른 뼈들이 일어서는 민중 부활의 현장인 것입니다.

글쓴이 조헌정님의 2020.5.17. 예수살기 망월동 연합예배 설교(본문 : 막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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