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감싸는 5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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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감싸는 5월의 바람
  • 박병상
  • 승인 2020.04.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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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동물

남녘에서 훈풍이 다가오는 5월이다.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박재란은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와 “밀 익는 5월이면 보리내음새”가 남쪽에서 불어오니 좋다고 노래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5월에 어떤 바람이 다가올까?

사진: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될 해안의 도시를 상상한 그림.(출처는 인터넷)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될 해안의 도시를 상상한 그림.(출처는 인터넷)

이 원고를 쓰는 4월 초, 전국은 21대 국회의원 선거 열기로 뜨겁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마다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는 자신을 알리려는 후보들의 약속들로 요란하다. 패딩점퍼를 치웠으니 떠들썩한 아침 시간은 피하고, 오후 한적한 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 걷는다. 코로나19 창궐이 부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부분의 약속은 연기 또는 취소되었다. 대학의 시간강의도 온라인 영상수업으로 대체했으니 훈풍 불 때 만보를 걷는다.

복수초를 이은 진달래가 한창인 계절인데, 향기가 남에서 불어올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도 한낮은 제법 덥다.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아파트단지 구석구석에 심은 진달래는 꽃잎을 접었고, 향기를 내놓지 못한다. 며칠 전 뉴스는 관측 이래 가장 빠르게 벚꽃이 꽃봉오리를 펼쳤다고 캐스터는 걱정했다. 작년보다 일주일 빨랐다는데, 양지바른 곳의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린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한바탕 바람이 불면 올 벚꽃도 어김없이 엔딩을 맞겠지. 내년이 궁금한데, 활짝 펼친 수선화 노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조팝나무 하얀 꽃들이 앙상한 꽃대들을 도드라지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수선화와 조팝나무는 5월에 만개하는데, 이런! 5월의 여신, 라일락이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며칠 전, 베란다 앞뜰의 매화에 부리를 밀어넣던 직박구리는 짝을 지었던데, 어디에 둥지를 쳤을까? 하수종말처리장 처리수가 흐르는 승기천의 가장자리는 이맘때 버드나무들이 연둣빛인데, 얼마 전 번잡스레 짝을 찾던 까치들은 집을 지었을까? 작년 가을 구청에서 가지를 친 가로수들은 잔가지를 볼썽사납게 잃었다. 가로수가 펼칠 잎사귀 수가 크게 줄어들 테니, 까치는 새끼에게 먹일 벌레를 가로수에서 찾기 어렵겠지. 매화나무가 잎사귀를 펼치지 않았어도 개나리는 어느새 초록 잎을 선보인다. 그래도 노란 꽃잎을 많이 남겼는데, 그 아래 영산홍이 붉은 꽃봉오리를 열기 시작했다. 5월은 아직 멀었건만, 뒤죽박죽이다.

반듯반듯 아파트단지로 채워놓은 동네에서 자연을 음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리미엄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재개발을 타진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나? 완공 30년이 지난 신도시에 조경수목의 뿌리는 활착했고, 코로나19를 무릅쓰고 봄은 찾아왔다. 여기저기 볼 게 많아 봄이라던데, 평일에도 인파가 모이는 벚꽃길을 피해 빠르게 걷는다. 마감 전에 원고 넘겨야 맘 편하기 때문인데,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얇은 점퍼를 벗고 교차로에 접어드니, 같은 옷을 입은 무리가 귀를 자극하는 스피커 장단에 몸을 맡긴다. 이윽고 트럭 단상에 오른 후보는 공약을 쏟아낸다. 이크! 길을 잘못 들었다.

마스크 쓰고 교차로를 점령한 선거운동원들과 거리두기하며 빠져나가는 일은 순조롭지 않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고막을 울리는 약속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전문성 있고 힘을 가진 자신으로 바꾸자는 말, 능력자인 자신이 이 지역을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말, 이러저러한 경험과 성과가 눈부신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말들이 허공을 가르며 흩어진다. 누군가 국회의원 선거를 대의제 민주주의의 축제의 장이라 했던가? 하지만 거리의 목소리들은 대의제를 진정성 있게 인식하지 못한다. 한결같이 자신이 적임자라고 거품을 무는 후보들은 개발과 경제성장을 외친다.

내가 도로를 놓았다! 무슨 소리냐? 그 도로는 지난 지방정부가 놓은 게 아닌가! 뭐라고? 알지 못하면 가만히 있어야지! 그때 여차여차해서 어렵사리 예산을 따왔고 굼뜬 지방정부를 움직이게 만든 게 누군데! 사과하지 않으면 고발할 테다! 발전의 기초를 쌓았고 성과를 낸 건 나잖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야! 나야 나! 그깟 도로? 흥! 난 GTX노선을 놓을 거라고! 교육이면 교육. 경제면 경제, 낙후된 곳을 현대화할 적임자는 힘 있고 능력 있는 나라고! 발전, 상생, 행복, 복지, 명품도시를 만들 거라고!

콘크리트 일색인 도시는 생태적 완충력을 상실했고 기후위기와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4년 전 거리에도 비슷비슷한 공약이 난무했다. 반복되므로, 4년 전은 거짓말을 했나? 이번 공약이 이루어진다면 4년 뒤에 어떤 공약이 쏟아질까? 실상 언제든 어느 지역이든, 공약은 엇비슷하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출마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나라 밖의 사정도 대략 비슷하리라. 누가 도로를 놓았나? 국회의원은 분명히 아니다. 개막식이 아니라면 현장에 국회의원은 없었다. 도로를 놓았으므로 시민이 행복해졌나? 도로를 놓기 전에 시민과 필요성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알려고 하지 않겠지.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왕을 선발하지 않는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의원을 뽑는다. 기원전 6세기 이솝은 왕을 보내달라 기도하는 개구리 우화를 썼다. 하늘에서 나무토막을 보내자 무시했다. 그러자 황새를 보냈다. 황새는 규칙을 제 마음대로 정하고 어기는 개구리를 잡아먹었다. 유권자는 개구리이고 황새는 국회의원인가? 민의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건만 선출 이후의 행태를 보자니, 자신이 왕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선거운동할 때 잠깐 엎어져 절하며 표를 구걸하지만, 당선되기만 해봐라. 비켜! 난 왕이야!

여당 실세였던 자, 실력자 계파의 일원이 될 자는 국회의원감인가? 선망받는 대학 출신에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의 어떤 일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면 국회의원 자격을 득하는가? 어떤 권능을 노리고 출마하려는지 모르지만, 국회의원은 행정가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법과 제도를 만들거나 정비한다. 국회의원의 소임은 예산 끌어오기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대의원이다. 주권은 유권자가 가진다. 입법에 앞서, 주권자의 의견을 먼저 묻고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논의하는 자세가 대의원의 마땅한 덕목이다.

코로나19는 왜 요사이 만연한 걸까? 개발과 발전이 모자라기 때문일까? 밑도 끝도 없는 신기루, 선진국을 향해 GNP 상승과 경제성장으로 매진한 지금, 우리는 전례 없이 발전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 시방 코로나19 수렁에 빠진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모자란다고? 우리는 선조가 꿈꿀 수 없는 돈과 물건을 쌓아두고 허우적거린다. 석유위기와 기후변화의 혹독한 상황을 마주할 후손은 발전의 과실을 맛볼 수 있을까? 코로나바이러스는 없었던 존재가 아니다. 하필 이때 창궐해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강력하게 경고한다. 개발 공약에 정신 팔린 후보는 그 경고를 듣지 못한다. 목소리 큰 후보일수록 경각심은 무디다.

《작은책》 5월호가 독자 손에 들어갈 때, 어떤 후보가 당선되었을까? 서울로 빨리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를 놓겠다는 후보일까? 그는 어떤 바람을 일으킬까? 모든 후보가 비슷한 공약을 남발했으니 지역의 정체성은 무시되고 후손의 삶은 더욱 어두워지겠군.

시민 대부분이 거리두기의 피로를 이겨내면서 코로나19도 진정될 것이다. 하지만 발전과 성장을 위해 생태계를 짓밟고 파괴하는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변화돼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뿐이겠는가? 뒤죽박죽인 계절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경고는 더욱 무서워질 텐데, 작년 지구촌은 겪어본 적 없는 기상이변으로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5월이 왔다. 어떤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올까? (적은책,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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