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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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의 길
  • 김기원
  • 승인 2020.04.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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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셋째주일 성서정과

사도행전 2:14;36-41, 베드로전서 1:17-23, 루가복음 24:13~35 (시편 116:1-4;12-19)

나눌 때 기쁨 온다. 예수 만난다.
나눌 때 기쁨 온다. 예수 만난다.

13 바로 그날 거기 모였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가면서 14 이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15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18 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20 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23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25 그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26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29 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30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32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33 그들은 곧 그 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가보았더니 거기에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34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35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가 24:13~35)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31절)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동네입니다.

삼십 리쯤 된다니 당시 사람들에겐 당일에 왕래할만한 이웃동네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거기 살던 두 사람도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일정에 동참했습니다.

입성한 후 예수공동체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글레오파와 그의 친구는 예루살렘 입성시 환호했던 사람들 틈에 끼어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였던 전형을 보여주지요.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21절)

그토록 기대를 모았던 분이 창졸지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정신적 공황상태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총선에서 패배한 진영 사람들보다 더 지독한 패닉상태를 보였을 것입니다.

두 친구는 예루살렘 성안의 아지트를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화, 절망감, 당혹감, 억울함 등등 주체하기 어려운 가슴을 부여안고.

그런 그들에게 부활의 영, 스러짐 없는 예수 혼이 접근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낭패한 모습으로 걷고 있느냐는 질문.

낙심의 근원을 뚫어보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마리아의 전갈을 듣고 예수 무덤으로 달려갔던 베드로와 요한처럼,

그들 눈에는 빈 무덤만 보였고 그들의 뇌는 예수의 죽음만 생각했습니다.

세속적 기대를 담은 신앙은 그 기대가 물거품 되었을 때 어둠으로 변하지요.

진리로, 생명으로, 구원으로 예수가 다가와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반짝여야 할 뇌세포가 어둠에 질식해 있는데 어찌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참된 신앙은 나의 기대보다 하느님의 기대에 주목하는 거지요.

하느님의 꿈은 언제나 바래지 않는 빛이기에 어두울수록 빛납니다.

엠마오의 친구들은 주님의 자비하심을 입어

하느님의 꿈 이야기에 젖어들며 조금씩 깨닫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자신들의 기대는 잘못 겨눠진 과녁이었음을.

마침내 모든 것이 확연해진 것은

그분이 마지막 만찬상에서 하셨던 행위가 재현될 때였습니다.

십자가의 도(道).

그때 비로소 이들은 눈이 열립니다.

이제는 모든 상황에서 예수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실천을 통해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가까이 계신 예수 숨결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잘못된 기대에 파묻힌 신앙이 아니라

참된 기대로 충만한 희망을 품고

빛에 머무는 눈길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내 곁에 다가오는 예수들을 반갑게 만나고

뜨겁게 포옹하고 따뜻하게 대접하며

기쁨과 평화 참된 자유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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