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없는 개발, 생명없는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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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없는 개발, 생명없는 발전
  • 김경호
  • 승인 2020.04.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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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직도 소송을 통해 진행 중인 강남향린교회 강제철거사건에 대해서,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오늘이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 마지막일지도 몰라서 다시 만나 기쁜 날에 속상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오늘 설교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2년전 조합이 예고도 없이 교회를 침탈하고 여러분들은 땡볓에서 6개월간을 길거리에서 예배하면서 투쟁을 했다. 그러다가 2018. 9. 18. 교회와 조합은 관할 구청인 송파구청의 중재로합의를 하였다. 그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보면 △조합이 교회의 모든 교인들 앞에서 직접 이 사건 강제집행에 대해 사과하고 △상호 민‧형사상 일체의 청구를 포기하는 전제에서, 다만 강제집행 과정에서 창고(삼성물류보관소)로 강제 이전된 교회 소유의 물품을 교회의 새 주소지로 이전하는 비용만을 교회가 부담하는 것으로 하였다. 송파구청 측 담당 공무원인 주거재생과장과 당시 정무보좌관은 향후 조합이 교회에 민형사상 조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수차례 구두로 확인하였고, 이에 조합장 강신선도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 후 2018년 9월 30일에 조합장이 예배에 와서 사과를 하고 떡을 대접하고 서로 그동안의 투쟁을 마감하는 화해의 예배를 드렸고 교회는 거여지구에서 철수한 후 새로 마련된 오금동 성전으로 이사하였다. 

조합은 교회를 향해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왔다. 첫째, 강제집행비용(집행관비용, 집행관련비용) 208,977,100원과 둘째, “임료상당의 부당이득”으로서 2017. 2. 10.부터 강제집행일인 2018. 3. 30.까지의 임료 49,020,000원을 합하여 도합 258,017,100원의 손해배상 또는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해 교회는 아직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합의서 5항은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일방이 이행하지 않을 시 손해배상을 하기로 하며, 이상의 내용에 대해 조합, 강남향린교회, 송파구 3자가 연대보증한다”고 되어 있다. 교회는 모든 이행 사항을 다 하였고 이 합의 후 아무런 행동을 한 것이 없는데 조합이 느닷없이 손배 소송을 걸어 왔다. 이는 조합이 제기한 소송자체가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오히려 손배 소송을 해야할 당사자는 교회다. 

교회는 투쟁하는 6개월 내낸 동원된 사람들, 용역들의 불량한 눈짓과 태도, 험한 고성과 폭행들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물론 이들은 조합이 자의적으로 동원한 용역들이었고 결코 교회가 부탁한 사람들이 아님은 당연하다. 교인들은 그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욕설과 폭행을 당했다. 조합은 강제집행으로 인해 교회가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고 여러 교우들이 육체적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일에 대해서 이미 합의서를 쓰고 교회 앞에 사죄하고 화해의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그 이후에 조합은 교회를 포함한 7개의 단체와 가정에 대해 어마어마한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괴롭히고 있다. 

조합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한 비용 중에는 경호용역업체가 원고 조합에 “구역내 시설경비” 명목으로 기재된 청구서가 근거로 포함되었다. 근본적으로 경호용역비의 실질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용역깡패 동원비’이다. 이를 공익사업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가에 전혀 미치는 못하는 가격으로 부동산 소유권을 강제로 박탈당하고, 수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피수용자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자의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합의 한 후에 내가 너를 때릴 때 몽둥이가 부러졌으니 몽둥이 값을 내놓고 내가 무술을 연마했으니 무술 연마비를 내라고 떼를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자기를 감시하고 폭행하고 괴롭힌 비용을 괴롭힘을 당한 사람에게 부담하라고 하는 횡포는 또 무엇인가? 대규모 단지를 구성해서 엄청난 재산의 상승 가치를 누리는 자들이 자기 터전을 다수의 횡포로 인해 빼앗기고 쫒겨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괴롭힘을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로 가능한 일인가? 이런 가진 자들의 횡포와 괴롭힘에 우리는 궁중 족발집 사건이 왜 일어나는가를 실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공탁 한 후에 기간을 교회가 불법으로 임대한 기간으로 보고 부당 임대 수입금으로 5천만원에 상당하는 금액을 청구하였다. 당시 교회는 순순히 조합의 요구대로 따랐다. 종교부지를 받더라도 건축비용 마련이 힘들어 현금청산을 희망했기에 조합에 소속하지 않았다. 교회는 3년 전인 2015년 이미 새터전을 마련키로 결정하고, 오금동에 새로 건물을 매입하여 2018년 4월 6일 잔금을 치르고 5월 초쯤 이주를 마칠 계획이었다. 지역사회도 이를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개발조합이 공시지가에 근거한 감정평가로 시가의 50-60% 수준에서 공탁을 한 상황이어서, 교회는 평가액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개인도 아니고 교회 공동체가 장소를 옮기는데 당연히 교우들의 의견을 모으고 주변 부동산을 알아보는 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조합이 공탁한 금액이 부당하여 보상 금액을 재조정하는 소송이 진행 중이고 법원은 조합의 보상금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음을 인정하고 법원 판결에 의해 2018년 4월 3일 토지에 대해 83,572,400원을 추가 보상 받았으며, 2018. 9. 7 행정소송 판결에 의하여 조합이 47,152,060원을 교회에 더 지급하라고 최종 확정하였다. 그러니 보상금 자체에 불만이 있어 합의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사를 가고 그 기간 임료를 지불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 조합이 공식적으로 교회에 이전을 한번도 요구하거나 통보한 적도 없다. 만약 요구했다면 교회가 이사할 것을 통보한 것이 언제인지를 자료를 통해 밝혀야 할 것이다. 

이들은 2018년 3.30 아무런 예고없이 성전을 침탈하여 교회 모든 물건을 훼손하고 차로 실어 간 후에 교회당에 철제 담장을 둘러치고 대문을 봉쇄하였다. 

조합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교회를 이용했다. 아무런 계고장이나 예고조차도 없이 4월 1일이 부활절인데 성금요일인 3월 30일, 사상초유의 “예고 없는 강제집행”이라는 참사가 벌어졌다. 재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예고 없는 강제집행”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통상 강제집행이 결정될 시 법원은 계고장을 발송해 집행 사실을 예고하고 1~2주 간 자진 철거 기간을 두고 있음에도 서울동부지법은 이런 절차를 모두 무시했다. 동부지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조합장이 제출한 탄원서에는 “교인들의 저항이 강할 것이므로 예고 없이 집행해 달라”는 것과 “교회를 먼저 집행해야 나머지 남은 주민들에 대한 강제집행이 수월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종교 시설의 경우엔 강제집행 시점이 임박하더도 지역 내 역할 및 사회적 의미 등을 고려해 90-95%가 집행된 후에 후순위 집행 대상지가 되는 것이 관례기도 하다. 당시 주변의 건물의 퇴거가 60%정도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조합측에서 강남향린교회는 까다로운 교회라서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니 아무런 예고없이 집행해달라는 탄원서를 26일에 접수했고 법원은 접수 4일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런 사인이나 예고없이 교회를 침탈했다. 법원측에서도 이렇게 신속하게 알리지도 않고 집행하는 것은 유래가 없는 사례였고 법원측은 이렇다 할 설명도 하지 못한 채 “유례가 없는 상황이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조합과 법원집행관의 유착관계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조합은 강남향린교회를 먼저 시범케이스로 강제집행하면 주변 아직 퇴거하지 않은 개인들은 쉽게 물리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보호되어야할 종교의 자유는 종교인들이 매주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주변을 정리하는 도구로 삼은 셈이다. 가장 존중되어야할 권리가 가장 무시해도 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신앙인에게 예배가 신성하게 계속 드려져야 하는 것은 순교를 해서라도 지켜야할 절대명령이다. 그런데 갑자기 교회는 폐쇄되었고 십자가와 성물들은 뜯겨졌다. 이들은 교회당은 밀어 버리고 예배가 중단된들 무슨 대수냐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직도 보상금 문제로 재판 중에 있는 교회를 제멋대로 폐쇄하고 훼손한 죄는 교회를 능욕하고 신앙의 자유, 종교의 신성한 권리를 침해한 죄이다. 소수가 모이는 교회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러나 교회는 개교회가 재산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개교회의 재산이 아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며 법적으로는 공교회의 소유이다. 조합이 교회의 거룩함을 파괴한 사건에 대해서는 단지 소유권의 문제를 넘어서 중대한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우리는 법적 사회적 책임을 묻지만 하나님께서도 예배와 교회를 능욕한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것이다. 문제가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심판이 행해져 그 불의함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세상의 권력이 거룩한 것에 손대지 못하도록 하고, 원칙에 의하지 않고 불의한 유착관계에 의해 일이 처리되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떼 부자가 되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토지를 가지고 있는 개인의 경우는 토지를 수용하고 대신 아파트를 분양받기에 재산을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상가나 종교기관의 경우는 보상받은 비용으로 새로 조성된 부지를 구입하여 건축을 해야 한다. 상당한 재력이 있지 않은 경우는 종교부지나 새로 조성된 부지를 구입하더라도 새롭게 건축할 비용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 현금으로 정산받는 대상인 현금 청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교회는 그 장소에 접근이 용이한 교인들로 구성되어 이사를 하더라도 멀리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나 대개 근처의 땅값은 이미 재개발로 폭등한 상태라서 그 비용으로는 대체 건물을 마련하기 힘들다. 

그런데 현금청산자의 보상 기준이 공시지가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재산을 공시지가로 팔 고 싶겠는가? 그런데 현행법은 재개발을 하는 대형 건설업자인 재벌들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일정 비율이 넘으면 반대자가 있더라도 강제로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 법이 소수의 재산권과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수많은 강제집행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자기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히고 쫒겨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실제 재개발 지역에 지역 주민이 정착하는 비율은 10-15% 정도 밖에 되지 못한다. 

1-2층 짜리 낡은 주택을 빼앗아서 30-40층의 고층 아파트를 짓는데 그 개발 이익은 왜 재벌, 대규모 건설사가 다 챙겨가고 그 안에서 살아 보겠다고 애쓰던 서민은 헐값에 강제수용 당해야 하는가? 게다가 세입자들 역시 그 지역에 삶의 토대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당장 자기 삶의 터전에서 쫒겨나야 함은 물론 상가의 경우 막대한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고스란히 날려야 한다. 

전문 꾼들이 고용된 조합과 법원, 지방 자치 단체, 경찰, 공무원의 부정한 유착으로 계속 국민의 눈에서 피눈물이 솟고 있다. 이들이야 말로 아직까지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는 적폐세력들이다. 이제는 이런 적폐들, 국민의 생활 한복판에서 국민을 집어 삼키는 서민형 적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 아직 무리한 재개발 집행이 도처에서 국민들을 용산 참사의 늪으로 몰고 가고 있다. 

수도권은 콘크리트 건물의 사용 가능 한도에 즈음한 20년을 주기로 대규모 갈등이 발생한다.

1970년 전후, 서울의 판자촌을 옮기는 과정에서 대규모 폭동이 벌어졌다. 당시 서울시 인구의 10%를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성남)를 만들어 판자촌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이주시켰고 결국 폭동이 일어났다. 파출소가 불타고 성난 주민은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다. 인구의 8%정도를 옮긴 후 계획은 중단되었다. 

1990년대에는 목동, 사당동, 상계동 등에서 아파트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22명이 죽고, 수십 명이 구속되고, 수백 명이 다쳤다. 당시 한국과 남아공이 가장 비인간적인 철거를 자행하는 국가로 지목받고 유엔 인권위의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다시 20년이 지난 2010년 뉴타운등 서울 전역에 27개의 광역 뉴타운개발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200여 곳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그 시작이 용산참사의 비극이었다. 

서울의 아파트 값은 부르는게 값이고 자고 나면 치솟는다. 결국 서울에서 서민들은 살 수 없게 되고, 새로운 빌딩과 아파트로 단장한 서울은 중산층 이상만이 거주하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 재개발로 주택이 신축되지만 신축되는 주택의 전용면적이 월등하게 높아지니 신축 주택의 가구 수는 오히려 소멸되는 주택 수 보다 더 줄어드는 실정이다. 평수는 넓어지고 가구수는 줄어드니 집값은 치솟고 따라서 당연히 서민들은 살 수 없는 도시가 되며 정치적으로는 보수 일변도의 성향을 가지기 쉽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현상들을 볼 수 있었다. 

집이나 도시 등 건축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지 건축 자체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특정한 사람들의 부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공의로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건축은 공공복리에 부합하고 인간과 자연의 존엄성을 지켜갈 목적 아래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있고, 생명이 있고, 그들이 함께 이루어 가는 공동체를 지켜나가는데 있다. 이런 목적을 벗어난 탐욕의 콘크리트의 숲은 죽음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개발업자는 막대한 부의 증가를 가져온다. 그 개발 이익의 75%는 개발업자의 몫이며 25%는 개발부담금으로 납부한다(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제13조). 그 중에 50%는 토지가 속한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고 나머지는 국가균형발전 특별회계에 귀속된다(제4조). 실제로 개발이익을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나누어 먹는다. 개발업자가 임의대로 가격을 조작해서 신고하기도 쉬울뿐더러 75%의 폭리를 취하게 방임한다. 그동안 왜 이렇게 공권력은 개발업자 편에서 폭력을 방관하고 서민들을 몰아세우는 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들은 한 통속이었던 것이다. 현행법은 그 땅에 살던 서민들과 세입자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면서 뒤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까지 합세하여 이익금을 나누어 먹는 구조이다. 이것은 허가된 뇌물이나 다름없다. 

개발이익을 토지 소유자 또는 세입자가 나누어 갖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개발이익 환수금을 배분하는 체계가 개발업자, 지방자치 단체, 국가가 나누어 먹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실제로 희생을 당하는 강제수용자와 세입자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보상은 시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적어도 개발이익의 절반 정도를 환수하여 그것을 개발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한다. 

또한 재건축 기간에도 계속해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대체 상가나, 임시 상가 등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주민들이 함께 기뻐할 수 있다. 개발업자나 소유주가 조금 적게 이익을 취하고 세입자들도 함께 그 열매를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야할 지방 자치 단체나 국가가 항상 개발자를 일방적인 편드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근본이유가 되는 이익금을 나누어 먹는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주택은 공공복지의 기본임으로, 오히려 공적기금을 세입자를 위하여 투입해서 재개발을 진행해야 할 텐데 왜 지방자치 단체와 국가가 공짜 숟가락을 얹고 서민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하는가? 

용산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단지 그런 대규모의 참사가 아닐 뿐 세입자들은 여전히 같은 절망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쓸어 담고 있다. 그 얼마나 많은 투쟁 현장이 계속 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든가 아니면 궁중족발 사건과 같은 일을 벌려야 하겠는가? 작년 겨울 추운 날씨에 한강에 투신한 마포구 아현 지구에서 고 박준경 열사의 장례예배 설교를 맡았다. 예배를 인도하는 내내 가슴이 메어졌다. 여전히 국가와 공공의 권력이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그들의 고혈을 짜서 벌이는 잔치, 서로 짜고 함께 이익을 나누는 불의한 카르텔을 박살내야 한다.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일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계속되지만 진보 양하는 어떤 국회의원도 이 뻔한 모순을 시정하는 법안하나 내지 않고 있다. 왜? 그들은 모두 같은 밥그릇에서 퍼먹기 때문이다. 

도시 개발 이익의 50%를 충분한 보상과 개발로 인해 피해를 입는 세입자를 위해 쓰게 한다면 모두가 기뻐하는 개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개발이 될 것이다. 화려한 도시의 건축물이 뒤에 쫒겨나는 사람들의 한이 서려있고, 가족이 파괴되고 생존권이 위협받는 다면 그것은 인간 없는 개발, 생명이 없는 발전일 뿐이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개발에 대해서 혹독한 비난을 퍼부으며 그것의 멸망을 예언한다. 오늘 예언자들의 이 불의의 조합에 주는 경고의 말씀을 읽으면서 마치겠다.  

너희는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서,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 (미가 3:10). 

담에서 돌들이 부르짖으면, 집에서 들보가 대답할 것이다. 그들이 너를 보고 '피로 마을을 세우며, 불의로 성읍을 건축하는 자야, 너는 망한다!' 할 것이다. (하박국 2:11) 

(설교문 김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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