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헌장(1968.12) 이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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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교육헌장(1968.12) 이갸기
  • 새마갈노
  • 승인 2020.04.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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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시대 연재(15)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내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다. '조국의 근대화' 와 '민족의 중흥' ‘역사적 사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뜻도 모르고 외웠다. 뜻은 모르지만 무엇인가 내가 대단한 일을 할 사람이구나 라는 묘한 흥분감도 있었다. 이것을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 군인, 공무원, 교사, 기업체 직원 등이 외워야 했다. 외우는 것이 당최 서투른 나는 그것이 큰 어려움이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외웠다. 선생님은 학생들 하나하나가 그것을 외우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집으로 보냈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은 선생님 앞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운다. 선생님은 꾸벅꾸벅 조시고 창밖으로는 해가 넘어간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선생님 앞에 서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한 학급은 75명 정도였으니 시간이 꽤 걸렸을 것이다.

당시 말단 공무원인 내 아버지도 외웠다. 직장 상사 앞에서 외웠다. 아버지는 잘 외우셨을까? 망신당하지는 않으셨을까? 나에게는 절대자와 같았던 아버지도 그것을 외워야 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 때 처음으로 그것을 외울 필요가 없는 어머니가 부러웠다.

비슷한 기억이 있다.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다. 동네 야학으로 2-3년 다니셔서 한글을 간신히 깨우치셨다. 철자법은 모른다. 그래서 받아쓰기는 가르치실 수 없다. 내가 받아쓰기 20-30점에도 어머니는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용케도 구구단을 외우신다.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치실 수 있는 것은 구구단이 유일했다. 어머니 앞에서 구구단을 외운다.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고 꾸벅꾸벅 조신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진땀을 흘리며 서있었다. 어머니에게 학습지도를 받은 기억은 그것이 유일하다.

국민교육헌장은 당시 최고의 지성인이라 할 박종홍 박사를 비롯한 26명의 기초의원과 심사위원 48명이 초안하고 국회에서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 1968년 12월 5일 발표하였다. 그 후 각종 교과서에 인쇄되었으며 새마을 운동과 함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크게 보급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은 많은 이들로부터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지탄받기도 했으며 군부독재 시기에 국민들의 삶과 정신에 크게 각인되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사실상 폐기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은 그 내용이 ‘반공’, ‘민족 중흥’, ‘국민에 대한 국가의 우위’등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적,·전체주의적 교육 이념을 담은 헌장으로 과거 일제의 천황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교육칙어'(敎育勅語)를 그대로 본뜬 면이 없지 않았다.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비판도 있었으니 1975년 3월 1일 재야단체인 민주회복국민회의 "우리는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고, 압제와 불의를 거부하는 민주국민이다"로 시작하는 '민주국민헌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1978년 6월 27일 송기숙·명노근·이홍길을 비롯한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이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하면서 민주교육을 질식시키는 국민교육헌장과 유신헌법의 철폐를 요구하였다. 이로 인하여 성내운·이효재 교수 등이 해직·투옥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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