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새로운 윤리의식과 신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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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새로운 윤리의식과 신앙적 상상력
  • 유미호
  • 승인 2020.04.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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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시대를 앞서가는 윤리의식과 소망을 지녀야 합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윤리의식이란 사회 일반보다 늘 한 발자국 먼저 앞서가며 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포괄하고 다룰 수 있는 윤리적 민감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인권에 대해 일반적 이해가 편파적이고 폭력적일 때, 교회는 좀 더 보편적인 인권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는 자국에 머무는 외국인들의 차별적인 지위와 대우에 대해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길 때, 이것에 대한 의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라면 이러한 실천의 근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하며, 신앙적 결단의 차원에서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소망은 현재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나 현실적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이 적은 것에 대해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내적인 자세를 전제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소망은 상상력을 전제합니다. 상상력이 없이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고 이를 향해 무언가를 추진해나가기 어렵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악이 득세하는 듯이 보이는 세상의 흐름과 현실을 마주하며 살면서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양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사건과 의미들을 자신의 삶과 연결할 줄 압니다. 예언자들이 기록한 글을 읽으며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소망하면서 이에 대한 상상력으로 시대의 악한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COVID-19 이후 한국 정부는 놀라운 대응능력을 세계 사회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교회의 협조와 대응 방식은 정부의 수준을 따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도움을 주어도 부족한 시기에 오히려 교회가 공중보건과 사회 안전망을 위협하는 불안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매 주말 지자체는 재난문자를 보내는데 이때 주요 메시지는 종교행사 자제에 대한 것입니다. 전 세계적인 난리 속에 적지 않은 기성 교회들이 아직도 종교탄압이나 공예배 준수와 같은 논리를 내세우며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형식의 예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COVID-19로 인해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와 공적 요구에 기독교가 부응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은 실로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 보입니다.

사실 교회와 다수의 목회자는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논의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정치나 사회적 사안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종종 목회자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아는 척하고 그것에 대해 발언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가짜 뉴스 유포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할 강단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이야기들이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채 목회자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재난을 다루는 연구자들은 왜 같은 규모의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따라 피해 수준이 다른지에 집중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강도의 지진이 발생했더라도 미국이나 일본에서 발생했을 때와 아이티나 중국에서 발생했을 때의 사상자 수가 크게 차이나 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재난 발생 후 선진국 사회는 빠르게 복구되어 이전보다 더 나은 도시가 형성되는 반면, 가난한 나라는 큰 재난을 겪은 후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됩니다. 존 머터라는 학자는 “재난이 자연적 사건일 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 재난은 자연적이다. 그 순간은 자연의 탓이다. 그러나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사회현상을 다루는 학자들은 자연재해 하나를 다룰 때에도 이렇게 다각도로 접근하여 세부적으로 분석합니다.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봐 다른 학문이나 이론을 찾아보고 직접 현장을 방문하면서까지 그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놓치는 것이 있을까봐 사건의 당사자들과 관련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해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하여 발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줄도 압니다.

이에 반해 몇몇 목회자들의 발언은 가히 재난 수준입니다. 우리는 재난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유명 목회자들을 자주 보아 왔습니다. 이들은 주로 피해를 입은 도시를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며 정죄하는 데에 힘을 쏟습니다. 성적 타락이나 교회 탄압 등이 그 도시에 만연했기에 심판받은 것이라 말합니다. 언론이나 비기독교 영역에서 이들을 비판하더라도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굳게 믿어주는 이들이 있기에 이들에게 사과와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동조하고 4대강사업을 지지하던 많은 유명 목회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반성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아직까지도 전두환을 찾아가 ‘각하’라고 높이며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 확인을 전제로 한 연구나 깊은 고민 없이 예나 지금이나 개인구원을 강조하고 개인의 죄책을 자극하며 심리적 위안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소망을 심어주는 설교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여차하면 종교탄압이나 반공주의의 프레임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드러냅니다. COVID-19 사태 속에서 일부 교회는 공중보건과 사회 안전을 고려하며 교회의 역할과 기여를 고민해야 하지만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예배중단 권고에 대해 종교탄압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동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기독교에 대한 얼마만큼의 기대를 그동안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 상황에 대처하는 교회의 방식에 대중들은 크게 놀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교회가 공공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참여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행동해왔다는 것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바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반응을 보면 한국교회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혀를 차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교회가 외치던 사랑과 희생이 어떤 수준인지를 적나라하게 인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입니다. COVID-19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세계적 재난과 재해는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며 국제사회는 지금과 같은 혼란을 자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정부가 비교적 잘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이 정도이지만, 우리나라가 아직도 미온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기후변화의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도 우리 정부가 이렇게 선방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한국교회의 시대역행적인 사고와 착오적 대응 방식은 그러한 위기가 나타날 때마다 계속 드러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지도력과 지적 수준이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함이 연일 드러나고 이것이 이들의 도덕적, 영적인 수준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수년 전, 우리나라의 한 신학자는 그의 연구논문에서 천주교 신학자들을 중요하게 인용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신학과 신앙을 의심받아야 했습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본주의 및 세계화로 인한 환경파괴와 전 지구적 위협에 대해 신앙적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며 ‘찬미 받으소서’라는 글을 발표했고, 이는 전 세계 종교인들과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프란시스 효과(Francis Effect)라는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천주교의 것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개신교 교회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리고 역사가 기억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역사상 누가 전도를 가장 많이 했는지, 누가 가장 큰 교회를 이끌었는지, 누가 설교를 제일 잘 했는지 대해 역사는 말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히틀러의 통치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했던 독일의 ‘고백교회’와 그에게 저항한 신학자 본회퍼(D. Bonhoeffer)를 기억합니다. 또한 흑인의 인권을 외친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일제에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그리스도인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역사와 후손들이 기억하고 물려받을 신앙적 유산은 역사적 상황과 시대적 과제에 대한 바른 의식과 실천적 행위에서 발생하고 거기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모이는 것만으로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공감이 자라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 그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인권이나 생태적 감수성이 성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보여주기식 행태로 명맥을 유지해 오던 정치인들은 이제 COVID-19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무능함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요즘 COVID-19에 대한 대응이 각 지자체 별로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로운 환경과 시대적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교회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선교도 어려워지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들 먼저 세상을 보는 바른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르는 것에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 일 줄 알아야 하며, 그들의 말을 이해 못 하겠다면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그것에 대해 더욱 공부해야 합니다. 시대가 많이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목회자들은 선생 노릇 하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성도들은 목회자들의 선생 노릇을 제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목회자들의 공감능력과 사회적 경험은 일반 성도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워할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병을 잘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병은 의사가 잘 고칩니다. 목사가 정치와 경제를 가장 잘 알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더 잘 아는 성도들이 여러분들의 교회에 더 많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한 명이고, 성도는 여럿입니다. 서로 배우고 나눌 수 있는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는 것이지요. 최근 한 목사님이 암치료를 받으며 지난 세월 자신이 목회 현장에서 암환자를 더욱 세심히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겪으니 그제야 암투병으로 고생한 성도들의 고통과 심정을 알게 된 것이지요. 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아무도 그 목사님이 목회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목회자 한 명이 모든 직업을 다 경험하고 모든 병에 다 걸려볼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비단 목회자에게만 해당하는 요구가 아닙니다. 성도들 중에도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들은 이런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주 다른 교우들에게 정답을 주거나 조언을 해주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식견과 신앙이 얼마나 좁고 얕은지에 대한 반성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말이 너무 많습니다. 목사도 말이 많고, 성도도 말이 많습니다.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얼마나 듣지 않는지, 수 시간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의 응답은 듣기 싫어할 정도입니다.

COVID-19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교회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 이제 교회 밖으로 나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보여줄 때가 된 것입니다. 전에는 드러나지 않던 좋은 목회자들과 작은 교회들이 사회적 위기에 앞장서며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헌금을 지역사회를 위해 내놓으며, 마스크를 만들어 지역주민에게 제공하고,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돕고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며 대형교회보다는 지역사회에 오래 뿌리내리고 있던 교회들이 오히려 빛을 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윤리의식과 신앙적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이 이 위기에 복음을 전할 때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불만할수록 교회는 사회적 권위와 지위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여길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성도들은 신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며 교회의 질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김신영  / 목사,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부소장

- 원글보기 / https://ecochrist.blog.me/2218968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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