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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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언
  • 박철
  • 승인 2020.04.0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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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언

내일은 고난주일입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교차하는 이때, 우리는 차마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요 며칠 전부터 저는 함석헌 선생이 1953년 휴전 3주 전 발표한 <대선언>을 곱씹어 읽고 있습니다. 감격스러워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집니다.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는 대목에선 흐느껴 울고 말았습니다.

박철님(사진출처 : 박철님 페이스북)
박철님(사진출처 : 박철님 페이스북)

그는 기독교에 입문한 후 무교회주의로 갔다가 다시 퀘이커교로 바꾸었는데 말년에는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앙의 행각을 변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는 기독교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파만 바꾸었기 때문에 변절이라기보다는 신앙의 새롭고 바람직한 틀을 찾아 순례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고 그것을 더욱 풍성케 하는 높은 이상의 꽃을 중단 없이 추구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만년 청년이었고 진지한 신앙인이었으며 현대 한국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천천히 말과 뜻을 마음에 새기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대선언 / 함석헌

일천 구백 오십 삼년 칠월 사일 
그 옛날 구대륙의 낡은 집 뛰쳐난 젊은 역사의 혼
대서양 날뛰는 물결타고 건너 새 대륙에 올라
뉴잉글랜드 언덕 높이 자유 종 울려
새 시대의 아침을 외쳤던 이 날

여기 아시아의 큰 길목
세기의 새 아들 낳으려 아픔에 떠는 고난의 여왕의 꽃동산의 동남쪽 끝에 서서 
뒤로 세계 갈라 쥐는 두 무리 싸움에 타 녹는 땅을 돌아보며
앞으로 더 큰 싸움 나타내는 물과 바위 어우러져 우는 바다를 내다보며
밀려드는 평화의 물결 삼켜버리자 이빨 옥무는 
노한 용의 내젓는 대가리를 발 밑에 밟고 서서

나는 큰 말을 내붙이노라
버마재비 큰길 위 수리 막으려 도끼를 들듯이
계자 씨 얼어붙은 땅의 가슴을 박차려 발꿈치를 들듯이
어안이 벙벙한 소리
어림없이 내 하노라

들으라 오 들으라
하늘이여
땅이여
그 사이에 소용돌이쳐 오르는 인간의 회리바람이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줄 아느냐
못될까 걱정이로다
오 나로 늘 새 끝을 들게 합소서

앞으로밖에 모르는 몰아치는 영이 이를 명한다
내 감히 자신 있어 지어먹는 맘에서랴
내 속에 분명 딴 뜻을 나는 듣노라
나의 나직 하잠에는 거슬리는 뜻을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에야 어디 딴 끝 있으리오
그것은 교회주의자의 안경에 비치는 허깨비뿐이니라
미움은 무서움 설으고 무서움은 허깨비를 낳느니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
교회당 담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라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

생명은 난 끝에 있나니
레바논 백향목의 자람 그 순 끝에
역사의 나감 시대의 뾰죽한 끝에
거룩한 영의 피어남 맘의 풋 끝에
묵은 가지의 짙은 그늘을 수북이 두고
생명의 원줄기는 사정없이 올라만 가나니

부사산 만고 눈물 흘러넘쳐 윗뎀베르히 높은 숲에 대들었듯이
태평양은 또 그 무한의 구름을 일으켜 그 봉우리를 덮고야 말리라
굳어진 가톨릭 성다락 북유럽 광산군의 망치에 부셔졌고
얼크러진 프로테스탄트 그물 동아시아 무사의 칼에 찍혔고
그리고 역사는 또 나갔더라
무섭게 날개치는 그 바퀴가 오늘 너와 나를 끌지 안나

어렴풋한 느낌을 서슴치 말고 내 외치자
물냄새 맡고 달리는 사막의 약대처럼
스며든 빛 잡으려 허우적이는 움 속의 새싹처럼
가쁜 숨으로
떨리는 맘으로

영의 안테나에 간신히 느껴진 파동을 너는 가장 큰 마이크로 부르짖으라
길은 뵐듯 말 듯
참은 들릴 듯 말 듯
삶은 잡힐 듯 안 잡힐 듯
말하는 네 입이 아니
행하는 네 몸이 아니
아는 내 맘이 아니

시대 떨어진 삭은 못으로
흐르는 역사를 못박아는 못 놓는다
식물에 양치류 지금도 있더라만
동물에 파충류 오히려 살더라만 
그들은 이미 이 날 이 지구의 주인은 아니더라. 

자라는 생명은 또 한 매디를 맺었노라
역사는 자랑하듯 새로 페이지를 뒤집는다
중세의 맘 착한 일의 무거운 짐 들치고 났듯이
오늘의 정신은 복음주의의 굳은 덮개를 터치려 않나
아직도 도마뱀 같이 갑옷 입는 교파 교파의 
제각기 닦아 들고 나서는 가지가지의 무기는 문제도 않된다

‘나’의 걸음은 쾌한 것이다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육신
져서 날리는 연꽃인 듯 아름답지 않으냐
의롭담 받고 나서는 양심의 얼굴
신부 방에서 나오는 신랑인듯 빛나지 않느냐

그러나 시대의 까꿉서는 재를 넘는 역사의 바퀴소리
그것은 무엇에나 비 할 수 있게 감격스런 것인가
보이는 세계의 지평선이 깨지고
보다 무한한 것 너머에 나타나며
이제껏 안 역사 스스로 쫄아들어
없을 수는 없으나 까만 한 점에 지나지 않게 되는
그래 예언의 이루어짐을 몸으로 보는 자리
아니다 절대의 음악에 이 내가 녹아버리는 시간

나는 옛날의 모험가와 한가지로 노래하련다
나가는 역사의 수리채를 메고 달려나 보련다
내 아직 얻었담도 아니요
흐린 거울 속 보듯 내 눈에 희미는 하나
앞엣것 잡으려 뒤엣것 잊고 나는 닫노라
이제부터 나를 붙잡지 말라

내 즐겨 낡은 종교의 이단자가 되리라
가장 튼튼한 것을 버리면서 약하면서
가장 가까운 자를 실망케 하면서 어리석으면서
가장 사랑하는 자의 원수가 되면서 슬퍼하면서

나는 산에 오르리라
거기는 꽃이 피는 곳
히말리야 높은 봉 그윽한 골 피는 이상한 꽃같이
그 향 냄세맡는 코를 미치고 기절케 하는 꽃
그 꽃을 맡기전 나는 벌써 취했노라

내 다시 내려오는 때면
시내 산 올랐던 모세 돌아오듯
헤르몬 꼭대기 섰던 사람 아닌 사람 내려오듯이
구름 위 끌려 올라갔다 내 다시 내려오는 때면

내 다시 살아있지 못하리라
거룩한 불꽃에 내 연한 얼굴 끄슬리고
독한 생명의 향기에 내 약한 가슴 녹아
풀무에서 튀어나는 쇠찌기처럼
내 몸 쫄아들어 시체 되어 골 바닥에 굴러 떨어지리라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내 부탁한다
그 때도 나를 쓸어안기를 부디 잊지 말라
내 그대를 저버렸음
미움에서도 교만에서도 다 아니요
코카서스 높은 봉 만년 흰 눈 위에
즐겨 저주받은 자의 이름 들으며 
영원한 고통의 불 술잔 기쁨으로 마시던 
저 이방의 영웅같이
나도 모르는 막아낼 수 없는 영에 끌려
하늘에 올라가
영원의 빛 따 내려다 그대들 눈동자에 쏟아넣고
사라지지 않는 향기 받아다 그대들 코에 불어넣어
그대들로 이 역사의 법궤를 메고 요단을 건너는
거룩한 제사가 되게하기 위해서임을
죽는 순간에도 오히려 그것을 빌며 그 빛을
그 빛을 먹고 죽었음을 
그 말없는 시체를 안는 찰나
그대들은 맡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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