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살림의 관점에서 본 코로나19
상태바
생명살림의 관점에서 본 코로나19
  • 유미호
  • 승인 2020.04.01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는 단순한 독감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는 1968년 홍콩 독감과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에 이어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세계 어디서든 누구든 병에 걸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그가 '나'이거나 '내가 사랑하는 이'일 수 있다는 불안함으로 일상을 살아온 지가 벌써 석 달이다.

코로나19와 일회용품

연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숨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마스크 없이 다니려 해도 몸이 먼저 긴장한다.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확산되고, 전 세계적으로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질병이 빈번해지고 있음을 몸이 먼저 아는가 보다.
이번 코로나19는 변종 바이러스로 원래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았다. 박쥐 등 다른 포유동물 간에 종의 벽을 넘어 우리를 위협하게 된 건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인수 공통 감염병 대부분이 그렇지만, 우리가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우리 중심으로 자연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변형되어 생긴 질병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코로나19도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해 확산되고 있는 전염병들처럼,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분해 두셨던 것, 선악과와 생명 나무를 침범하여 피조물들이 극심한 고통에 빠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이나 자연이 보낸 경고라기보다 신음하는 피조물이 자신들의 몸을 던지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인 거다.

감사하게도 지구는 여전히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 문제는 필요 이상의 '선악과'를 취하는 것을 멈춰도 시원찮은데, 또 다른 하나님의 영역인 '생명나무'까지 탐하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 5개월간 지속되었던 호주 산불로 타버린 숲이 우리나라 크기만 하고, 10억 마리의 야생동물들이 제 생명을 못 살고 죽은 것도 우리의 삶을 바꿔내기에 부족한가 보다.
코로나19가 심각 단계에 이르기 전부터, 늘어나는 일회용품의 사용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생명의 위급한 상황에 무슨 일회용품 타령이냐 하는 이도 있겠지만, 불편해도 지구를 위해 힘껏 줄여오던 일회용품이다.
지난해에는 2021년부터 카페에서의 일회용 컵 무상 제공, 포장과 음식 배달에서 제공되는 일회용 식기류 무상 제공이 금지되고 친환경 소재 또는 다회용기로의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있었다. 그만큼 발생 되는 폐기물이 계속 늘어 넘쳐나고, 쓰레기장도 임계점에 달했다.

정부가 코로나19의 중점관리가 필요한 공항과 항만, 기차역에 일회용품의 한시적 허용을 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지역의 일반 카페나 식당 등에서 일회용품의 사용이 계속 늘었다. 지자체들도 덩달아 한시적이라는 전제하에 일회용품의 사용을 허용했다.
감염병의 예방을 위해서라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깨끗하게 잘 세척 하면 예방이 가능하니 식품과 식기 위생을 더 철저히 관리하게 하고, 개인적으로 자기 컵(텀블러)이나 개인 수저 세트를 가지고 다니는 등 이 기회에 지구를 위한 습관을 정착시켜가도 좋지 않았을까? 불편함이 아쉬움으로 변할 때쯤 코로나19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었다.

코로나19와 '살림'의 일상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순절 동안 진행해갈 '기후 회복을 위한 탄소 금식'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코로나19의 상황을 맞았다.
재의 수요일(2월 26일)로부터 40일 동안 이웃과 함께 묵상 여행을 하며, 5개월 동안 지속된 호주 산불을 비롯한 기후 위기에 매일 혹은 매주 한 차례씩 먹고 입고 쓰고 이동하고 머무는 일상 가운데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실천을 제안하고 관련 콘텐츠를 무료로 나누다가 지역사회로의 집단감염 소식을 접했다. 질병의 확산을 늦추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니, 최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일상을 살며 최소한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지역 교회들의 강의와 방송이 연달아 취소되었고, 내외부의 회의도 연기 내지는 취소되었다.
가장 아쉬웠던 건, 한 달에 한 번씩 숲길 마을 길 물길을 걸으며 창조주의 숨결을 느껴오던 '계절에 말 걸기'와 살림 책 읽기, 생활재 만들기 등 소모임 활동을 통해 살림 식구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거였다. 지난해 자연과 사람을 그리는 '살림 드로잉' 수업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작품화하여 소박한 전시회를 하려던 것도 두 차례 연기되었다.
올 한해의 살림 교육으로 진행될 '환경선교사 과정, 생태 리더십 아카데미, 지구돌봄 서클, 생태 리트릿' 등의 교육과, 교회 자모실이나 교회학교 공간의 유해물질 조사를 위해 신청한 지원사업 선정결과의 발표도 기약 없이 늦춰져 그저 멈추어 기다릴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계절은 벌써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어, 살림도 피어나는 봄꽃들처럼 웅크렸던 기지개를 켰지만, 첫 상영(1월) 후 중단되어있던 '살림극장' 등 멈추어둔 것들은 어느 날로 시작해야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40일의 실천 약속, 탄소 금식'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묻는 일에 주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와 모두의 건강

지극히 작은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 속수무책인 우리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안간힘을 쓰지만 아직도 긴장을 놓을 수도 놓아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초기 바이러스가 급속히 번진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는 점점 더 아프게 퍼져가고 있다. 이대로는 사회가 붕괴하는 곳이 나올 수 있다는 이들도 있다. 인류 문명 자체의 위기가 이야기되고 있다.

그래도 다들 기대하듯이, 코로나19는 지나갈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이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끝나면 우리는 달라질까? 마스크를 벗고, 우리는 다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문화, 육식에 길들여진 일상으로 다시 복귀할 것이다. 지구 기온은 계속 올라가 북극의 빙하는 녹는 등 기후 위기를 부추기는 우리들의 욕망의 열차는 멈추지 않고 달릴 것이다.

'총, 균, 쇠'를 쓴 제럴드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우리가 인간에 대한 착취를 넘어 자연을 파괴하여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인간의 생활공간도 위협받게 되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끝나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와서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우리의 상황과 삶을 돌아보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보자. 위기는 기회다.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아파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지구의 지속성'을 지켜내기 위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다행히 코로나19 억제를 위한 긴급조처가 아픈 지구에게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어 간만에 웃음 짓는다. 경제가 둔화되어 산업 생산속도가 늦어지고 공휴일이 연장되고 여행이 제한되면서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다.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만 볼 때 4분의 1이나 줄었다. 코로나19의 확산방지를 위해 취한 정책이 낳은 결과라지만 지구의 희망적 미래를 엿보게 해 주는 듯해 안도한다.
하지만 감염에 따른 두려움과 다소 과격한 정책이 낳은 결과이다 보니, 지속될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감염 현상이 진정되고 경기 부양책을 펴기 시작하면 오히려 이전보다 오염물질과 탄소배출량이 더 늘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살림은 '지구와 생명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고요히 '지구이웃과 함께하는 40일 묵상여행'을 하며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로 함께 탄식하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고통 묵상', 고통 속에서도 다가오는 봄에 다가서 산책을 하고, 침묵의 말을 걸고, 그가 건네는 말을 경청하는 '계절(창조) 묵상,' 기후 회복을 위한 40일의 약속인 탄소 금식 등의 실천을 A4 한 장에 살림 글쓰기를 하고, 일간/주간 탄소 일기를 써서, 우리와 지구의 건강을 되찾아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살게 할 '일상 묵상'이 그것이다.
고통, 창조, 일상을 묵상하는 가운데, 지금의 위기가 과다하게 부추겨진 우리의 욕망(탐욕)에 의한 것임을 알아차리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오늘도 기후 위기와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고통 중에 보내는 신음소리에 귀 기울인다. 무디어진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실 주님(막8:17), 우리가 의뢰하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 믿으며 기도한다. 지나갈 것이다. 그의 깃으로 덮으시고 날개 아래에 피하게 하실 것이다(시91:3~4).

지구의 시간과 상처 입은 치유자

두려운 것은 지금껏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한 것들로부터 우리가 돌아서지 못한다면, 계속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와 그 안의 생명들을 해치며 인간 중심의 삶을 산다면, 사스나 메르스에 이어 나타난 이번 코로나19처럼 또 다른 모습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고통 중에 있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에 둔감한 채 달려왔다. 이대로 계속 달리다 보면 지구는 더 심각한 위기로 구조신호를 보낼 것이다. 우리가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고 행동할 때까지 말이다.

도대체 하나님이 허락해두신 지구의 지속성과 풍성함은 어떻게 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당장은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으니, 긴급히 대응하되 멀리 내다보며 기도로 길을 찾자.
우선은 오는 3월 28일 토요일 8시 30분, '지구의 시간(Earth Hour)'에 '불을 끄고 기도의 불을 켜고' 기도해보자. 지구의 시간은 세계자연기금(WWF)이 전 세계인들과 하는 행사이니, 연결되어 길을 찾아봐도 좋을 듯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특별하게 준비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으니, 실질적인 탄소 제로의 '지구의 시간'이 될 듯하다. 가능한 대로 홀로 혹은 소모임으로, 아니면 온라인으로 지구가 더 온전히 쉼을 누리도록 '지구의 시간'을 준비해보자. 단순한 것이 더 좋다. 그래야 1년 내내 지속시킬 기후(지구)행동의 힘도 솟아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묵상하며 사순절을 보내고 있으니, 진심으로 '지구의 안녕'을 묻는 '지구의 시간'을 갖게 되길 소망한다. 진심으로 아픈 지구에게 건네는 물음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면 자신의 일상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변화시킬 수 있다.
가능하다면 다가오는 고난주간에는 매일 매일 1시간씩 '지구의 시간(Christian Earth Hour)'을 정해 불을 끄고 주님의 고난과 피조물의 고통을 묵상하며 기도해 봐도 좋겠다. 상처와 고통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코로나19가 지나가도 결코 새로워질 수 없다. 상처는 아물 것이나 그간의 고통과 상처가 지구와 지구 생명들을 치유하는 원천이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혼자 하기 막연하다면, 코로나19 이후 진행될 '지구 돌봄 서클'에 함께 해도 좋다.

혼자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 하는 질문과 답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지구상에서 함께 숨 쉬며 주님을 뒤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입은 상처를 안고 '지구의 안녕'을 묻자! 지구가 아프게 된 이유와 돌봄에 필요한 것들을 '사랑으로' 묻자! 그러면 두려움과 불안함, 막연함에서 벗어나,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이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날에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골고루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되리라!

- 유미호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살기까지" 함께 성찰하며 행동하기 위한 살림글쓰기를 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A4 한장으로 함께 나누실 내용을 쓰시게 되면 "살림브런치(https://blog.naver.com/ecochrist)" 편집팀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낼 곳 : ecochrist@hanmail.net). 를 열었습니다. 

- 원글을 보실 수 있는 장신대 홈페이지에 가시면, 코로나19 회복을 위한 신학적 성찰, 목회/기관현장, 교회현장에서의 성찰시리즈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의 글은 시리즈12번째 글입니다.  :
http://www.puts.ac.kr/suggestion/seosin/seosin_mok_2020_ct12.asp?fbclid=IwAR2LEUQJVkfRXXZAFFrASPyce5At6E9XvHPIEU0kJu7UgzENnbG5Un1XkDI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