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평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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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평전을 읽고
  • 백창욱
  • 승인 2020.03.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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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단재 신채호를 들은 풍월로만 알았다. 일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과정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름, 그 이상 아는 게 없었다. 지식이란 게 얼마나 옹졸한지. 코로나 여파로 주어진 강제휴가 덕에 단재 평전을 독파했다. 단재가 남긴 주옥같은 어록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집안현(고구려)의 유적을 한 번 보는 것이 김부식의 고려사를 만 번 읽는 것보다 낫다.”

그 중 압권은 이승만에 대한 평가다. “미국에 들어앉아 외국의 위임통치나 청원하는 이승만을 어떻게 수반으로 삼을 수 있단 말이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 등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

임시정부가 내각제의 첫 국무총리로 이승만을 선출하자, 단재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한 말이다. ‘완전독립’과 ‘자주독립’을 주창해 온 단재로서는 미국에게 한국에 대한 위임통치를 주장하는 이승만이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그리고 이승만에 대한 단재의 평가는 지나간 역사를 볼 때,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이는 임시정부가 현실에 안주하면서, 국민의 3.1봉기로 무장투쟁을 통해 일제를 축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그 뒤 일제는 더욱 무력을 갖추어 나가고 임정은 사분오열돼서 그나마 있던 동력도 다 흩어지고 말았다. 결국 단재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단재의 기개는 유명하다. 단재의 글로 판매부수가 사오천부 증가한 중화보 신문사가 단재의 논설 중 ‘어조사 의’ 하나를 고친 것 때문에 관계를 끊었다. 유일한 생계원인데 말이다. 이유는 중국인들이 조선인을 무시해서 함부로 글자를 고쳤다는 것이다. 구한말 홍명희, 정인보와 더불어 천하 삼재라 불린 조선 최고의 엘리트가 조선 최고의 독립투쟁가로 생을 보냈다. 괴팍, 고집불통은 신념을 지키기 위한 단면이다. 그보다는 정확, 예리, 통섭의 식견이 누구보다 뛰어났고, 기개와 실천성은 당대 제일이다.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 집필은 다 그런 바탕에서 나온 작품이다.

1928년 일제관공서를 폭파하는 폭탄제조소를 설치하기 위해 외국위체(위조통화) 임무수행에 나섰다가 체포되어 1936년 2월 21일 향년 57세로 옥사했다. 운명하기 전, 병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는데, 보증인이 친일분자여서 출옥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망명길 26년, 뤼순감옥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쓸쓸히 떠났다. 위대한 패배자이지만, 칼보다 강한 조선의 붓이다. 단재가 있기에 일제 독립투쟁이 더욱 빛난다. 단재를 더 자세히 알게 된 기회를 받들어, 앞으로 쟁쟁한 독립투쟁가들이 많지만, 단재의 삶과 식견을 최우선으로 존숭한다. 그리고 오늘 미제추종자들은 단재를 좀 배우고 따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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