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컬럼- 사회적 거리와 생태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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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컬럼- 사회적 거리와 생태적 거리
  • 유미호
  • 승인 2020.03.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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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재난상황이 펼쳐지면서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를 두며 바이러스 확산을 예방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물리적 거리를 확보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만 사회적 거리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근접학 이론은 친밀도에 따라 사람 간의 거리를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사람 간의 간격은 친밀할수록 가까워지며 사무적이고 형식적일수록 멀어진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람과 장소에 대한 사회적 개념이 재구성되고, 친밀함이 표현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그런데 에드워드 홀이 말하는 거리 개념과 요즘 우리가 언급하는 사회적 거리는 주로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의 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태적 맥락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는 사고는 인간 이외의 것을 비물질화, 대상화하여 인간과의 유기적 관계를 간과하고 무시한다. 자연은 ‘스스로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있어도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인식되지 않음으로 인식되는 것, 굳이 인식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과거 백인들은 밤중에 갈증이 생길 경우를 위해 침실 한 구석에 흑인 노예의 잠자리를 만들어 두고는 했다. 백인들은 그 곁에서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성생활을 자연스럽게 했는데 이는 그들이 흑인 노예를 보이지 않는 존재,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주체성이 주어지지 않았다. 과거와 같은 노예제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불평등과 착취에 기반하고 있는 다양한 노예제가 사람과 자연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화, 경제성장과 같은 그럴듯한 논리 속에 잘 포장되어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잔혹성, 불평등, 부정의, 비생명성 등이 은폐되고 있을 뿐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최재천 교수는 산업화와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인간과 자연의 거리가 좁아졌고, 이로 인해 야생동물로 인한 전염병이 증가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열대우림의 파괴 등으로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로 인간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는 사람 간의 거리가 상호 존중되며, 그 거리가 매우 신중한 배려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질 때 구성될 수 있다. 속된 말로 “너무 훅 들어가면” 관계가 망가질 수 있다.

생태적 무관심은 자연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으로만 보게 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관계 방식을 망각하게 하였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에 대한 배려와 돌봄 없이 경제성장, 풍요, 편리함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너무 빠른 속도로 너무 깊숙하게 자연에 접근했다. 그리고 인간은 생태적 교란의 수준을 넘어 지구시스템의 균열을 야기하는 수준에 다다르게 되었고 결국에는 인류세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은 자연을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자연을 다루었던 그 무정한 방식으로 지구시스템은 우리를 유례없던 방식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창궐, 기후변화, 재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빠르게 우리 삶의 깊은 영역까지 미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존의 사회적 제도와 과학기술만으로 이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러한 변화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과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인류가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이제는 지구시스템도 더 이상 인류를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에선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랑이 있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머문다(where love is, there is the eye).”고 말했다. 새로운 윤리와 가치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부여한다. 이로써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다른 존재들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음’과 ‘존재하지 않음’을 특성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자연이 이제는 나와 뗄 수 없는 관계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앎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고, 느껴지고, 만져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인류세를 살아가는 현 인류에게 요구되는 인식과 존재의 방식이다.

 

- 김신영 / 목사,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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