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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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 김경호
  • 승인 2020.03.24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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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22. 강남향린교회 주일예배

2020.3.22. 강남향린교회 사순절 넷째주일 가정예배 안내서

열음찬송 / 다같이 
찬송가 79장, 피난처 있으니

예배에의 초대  멀리가는 물 / 도종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식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예배기원 / 다같이
하나님, 이 예배를 통해 나 자신을 낯선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주의 잔치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았던 제가 이제 발걸음을 뗍니다. 이 시간 주님 잔치의 자유함을 누리게 하소서. 세상의 한계 속에 길들여진 모든 속박을 끊습니다. 나 자신을 비우고 온전히 주님과 더불어 하나되는 시간되게 하소서. 아멘

침묵기도>

새 마음 새 삶의 결단>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오규환/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영광송 / 찬송가 418장 하나님 사랑은 

기도 / 맡은 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릴 수 있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같이 얼굴 보며 얘기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손을 잡고 인사하고
같이 찬송하고, 같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인 것을
그동안 너무 형식적으로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반성을 하게 됩니다.

“같이” 할 수 있었던 이런 일상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코로나 19가 빨리 진정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 사색에서
다른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겨울 옥살이가
사람을 열덩어리로 인식하여 멀리하게 되는 여름 옥살이보다 훨씬 낫다고 한 글처럼

다른 사람이 전염병을 옮기는 존재로 보고 피해야 되는 상황이 아닌
함께 어루만지고 보듬고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코로나 19로 인한 문제가 없어지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오고 찾아가야만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런 어려움을 세금을 투입해서 해결하려는 노력까지도
빨갱이니 하면서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더욱이 국회의원 선거와 겹쳐 더욱 이런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같이 해야 하는데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헐뜯고 모함하는 모습에 분노가 생깁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누가 진짜 전염병을 예방하려고 했는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는지 드러나서 
그 결과대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나오지 못해 안부가 궁금한 분들이 많습니다.
홍종희 장로님, 신흥식 장로님, 김태장 장로님, 심상석 장로님.
무탈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의 모든 분들도 또한 이 모든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내려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기도문 이관희 집사)

하늘말씀읽기>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내가 주님을 찾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육신도 주님 찾아 애가 타서,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봅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가 입술로 주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손을 들어서 주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  기름지고 맛깔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듯이 내 영혼이 만족하니, 내가 기쁨에 가득 찬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주님만을 기억하고 밤을 새우면서도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주께서 나를 도우셨기에 나 이제 주의 날개 그늘에서 주님을 즐거이 노래하렵니다. 이 몸이 주님 뒤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십니다.(시편 63:1-8)

하늘 뜻 나누기 > 그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시편 63:1-8)

설교자료>

유다지방이 메마른 광야이기에 이 시의 저자도 목마름의 강렬한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내가 주님을 찾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육신도 주님 찾아 애가 타서,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봅니다.(1-2절)

팔레스타인은 건조하고 메마른 땅이다. 사막과 광야에 싸여 있는 땅, 나무도 없고 풀도 없고 땅에서는 이글거리는 열선 아지랑이만이 올라온다. 입술은 바싹 말라 타오르고 목젖이 목구멍에 딱딱 마주 붙었다 떨어질 때, 통증마저 느껴진다. 목구멍에서 수수깡 타는 냄새가 올라온다. 이런 상황에서 목구멍을 적셔줄 한 방울의 물을 기다리는 것은 생명 자체이다. 물 한방울의 간구는 생명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간절함이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그것은 단지 비유일 뿐이다. 시편 기자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육신도 주님 찾아 애가 타서...” 그는 물 한 방울을 바라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바란다. 그래서 그는 성소를 찾아 주님을 뵙고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본다. 

이렇듯 생명이 소중하지만 시편기자는 그 생명보다 소중한 것을 발견한다. 흔히 우리는 생명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요 가치라고 한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사랑이 생명보다 나으므로”라고 한다. 크리스천에게 살고 죽는 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 아니다. 삶의 시간이, 그 양(量)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생명들이 참으로 가치있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지 않은 인생을 얼마나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시편기자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느끼면서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것은 생명보다 소중한 삶이며 진정한 구원이고 새벽이다. 광야에서 한 방울의 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간절히 주를 갈망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이 우리의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한다. 개역성경은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라고 번역한다. 요즈음 코로나로 온 세계가 시끌벅적하면서 그 좋은 사례가 소개되었다. 

박용하씨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 손에 의해 자라났다. 할머니는 엄마이자 큰 언덕이었다. 그러나 연로한 할머니가 중증 치매를 앓고 계셨다. 지금은 손자가 할머니를 돌보는 중에 할머니가 코로나 19에 걸렸다. 할머니는 삼일간 아무 것도 잡숫지 못했다.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데다가 호흡이 불안해지자 박용하씨는 자기 일을 그만두고 지극정성으로 할머니를 간호했다. 방호복을 입은 채, 할머니 앞에서는 장난도 치고, 얘기처럼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했다. 손자가 할머니의 언덕이 되어드렸다. 하지만 마음은 초조했고 할머니가 안 계신 곳에서는 눈물로 할머니의 완쾌를 간절하게 빌었다. 손자의 정성에 답하듯이 사경을 헤매던 할머니가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80세가 훨씬 넘은 할머니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박용하씨는 “할머니만 낫게 해 준다면 나는 걸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아니면 내가 성장할 수나 있었을까 생각했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를 저렇게 혼자 놔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누워있으면 누운대로 죄송했고, 치매로 정신이 없어 동네를 돌아다니면 그런대로 죄송했다. 본인이 여유있게 살지못해 평생 자기만을 위해 희생하신 할머니에게 맛있는 것 하나 해드리지 못하고 좋은 것 하나 해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는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할머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 뿐이 없는 것이 너무나 속상했다. 그는 할머니가 이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자기를 돌봐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정은 목숨보다 소중하다. 피보다 진한 것이다. 박용하씨는 비록 돈이 없어 할머니를 잘 해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참으로 된 사람이다. 머리 검은 동물은 은혜를 모른다는 속담도 있는데 비해 있는데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이 코로 숨쉬고 살아가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이다. 같은 가족 간에도 서로 마음이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냥 밥먹고 숨쉬는 것이지 삶을 산다고는 볼 수 없다. 박용하씨는 그의 삶에 남을 만한 마음의 나눔, 사랑의 나눔을 경험한 것이다. 

천하를 호령한 유명한 헤롯대왕은 자기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기뻐서 환성을 올릴까봐 자신이 죽을 때 유대 각 고을에 신망 사람들을 같이 죽이라고 살생부를 만들어 관리했다. 그는 유명한 왕이고 당대의 전 세계가 알아주는 건축자였지만 그가 죽었을 때 정말 눈물 흘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천하를 가졌지만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고 자신도 누구를 사랑하지 못했다. 왕위 계승과 관련해서 가족 간에도 서로 죽고 죽이는 광증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승자였다. 그런 것을 과연 삶의 승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은평구 불광동에 할아버지 한 분이 코로나 피해자에게 써달라고 500만원을 기부하고 갔다. 그의 통장을 보니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고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이름도 신분도 밝히길 원치 않아 단지 빨간 옷을 입은 할머니라고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할머니는 74만 3천원이 들은 저금통을 가져왔다. 평소 밥값을 2, 3천원씩 아껴서 모은 돈이라며 “있는 사람에겐 별 것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에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이에게 써달라는 쪽지와 함께 불광2동 사무소를 찾아 기증했다. MBC 뉴스데스크 팀이 불광2동 한 동사무소를 찾아 취재한 기사(3.18일자)이니 아마도 여기저기 미담들이 수두룩 할 것이다. 그런 것 보면 우리 민족의 심성은 참 곱다. 정말 억세게 싸우기도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자기를 희생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대형 마트의 문이 열리자마자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대기하던 카트 부대들이 일시에 마트 안에 들어서서 보이는 대로 주워 담았다. 삽시간에 마트의 물량이 동이나서 문을 닫았다. 식료품, 생필품 사재기로 전쟁터가 되었다. 대형마트 진열대가 텅텅비어 있고 남은 휴지 하나를 서로 웅켜쥐고 치고받고 몸싸움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미국의 총포사엔 권총과 실탄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있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재기가 없다. 수퍼나 편의점의 물건들이 그대로이다. 

대구에 병원에는 방호복에 달린 수경이 얼굴에 닿는 이마와 콧등 자리가 짓무른 의사 간호사들이 허다하다. 이마와 콧등에 반창고, 패드를 덕지덕지 바른 괴상한 얼굴 사진이 AFP 통신 기자를 통해 전 세계에 배달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의사와 간호사의 절반이 전국에서 대구로 달려와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보도한 기자는 “이 나라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감탄한다. 

대구 시민들도 그 정도가 되면 대구를 탈출하기 위해 난리가 났을 것이고 그로인해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인데 외국같이 도시를 폐쇄하지 않아도 대구 시민들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대한민국은 어느 도시도 폐쇄하지 않았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이탈리아는 전 도시를 폐쇄해도 국민의 40%가 응하지 않고 돌아다닌다. 

그러나 한국민들은 아주 평상적인 활동을 하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미국 ABC 통신의 기자는 사투의 현장인 대구에서 겪은 감동을 전한다. 자가 격리된 환자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고 식품이 골고루 담긴 박스를 배달한다. 박스 당 약 10만원 정도의 식료품이 골고루 담겼는데 그나마 비용도 지자체에서 부담한다. 그러니 대구에서 조차도 사재기할 필요가 없다. 이런 사진을 보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휴지를 들고 치고 받고 하는데 저 나라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냐?” 

같은 위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다. 마스크를 사기위해 긴 줄을 서서 묵묵히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까지도 그들에게는 감동이다. 

한국의 수퍼마켓에는 길가에 물건과 식료품을 쌓아놓는다. 서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저렇게 길거리에 식료품을 쌓아 놓아도 괜찮냐?”고 외국인들이 묻는다. 게다가 나와서 지키는 사람도 없는데 저 물건들이 온전하냐고 놀란다. 실제 유럽에는 아무리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수퍼마켓이나 식료품점이 밖에서 보면 구별이 되지 않는다. 모든 물건은 건물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점들 수퍼마켓은 길 밖에 탐스런 과일들이 널려있어 간판 없이도 어떤 곳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83세의 할머니는 나도 무언가 해야겠다면서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든 마스크 20개를 수고하시는 분들을 위해 내밀고 갔다. “작은 것이라서 부끄럽지만 수고하시는 여러분들 힘내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마스크 11개를 비닐 봉지에 꽁꽁싸서 파출소에 던지고 가는 청년도 있었다. 

정부가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신속한 검사를 하고, 모든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검사에서도 전례가 없지만 한 확진 판정을 받아 퇴원한 환자의 진료비 명세서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9백만원이 훨씬 넘는 청구서에는 의료보험 공단이 대부분을 내고 본인부담이 144만원인데 그것도 국가에서 재난 상태로 보고 지원해준다. 실제로는 본인이 4만원정도를 낸다. 그나마 실손보험이 있다면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명세서가 미국 TV에 나가자 미국민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 시민들에게 1000달라 한국돈으로 120만원 정도를 제공했다고 하지만 이 정도의 의료서비스를 미국에서 받으려면 수천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120만원 지원은 새 발의 피다. 코로나에 걸린다면 부자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전쟁 이상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코로나 사망률이 8.7%에 달한다. 이는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3.4%, 중국의 사망률 3.9%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한국은 0.65%다. 이탈리아가 의료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이탈리아는 세계 제국 로마의 수도였고 가장 의료가 발전한 국가였다. 의사가문인 메디치가문이 쌓은 부를 통해서 르네상스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이탈리아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의료 민영화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만 있지 공공의료 시스템이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의료비가 턱없이 높아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에서 감기만 돌아도 1만 5천명씩 죽어 나간다. 그러니 병세가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코로나가 유행하면 미국도 높은 사망률을 보일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의료보험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에 외국으로 나갔던 한국민들이 한국정부가 대응하는 것을 보고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는 한국이라며 다시 들어오고 싶어한다고다. 모든 일에 좌경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을 팔아먹고 있는 낡은 세대의 기득권들만 아니라면 우리의 시민의식으로 최고의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 가는 한국인들의 여정을 소개한 영상 한 편이 지구촌을 감동시키고 있다. 지난 17일 유튜브에 올라온 '참 이상한 나라'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공개 나흘 만에 조회수 210만 회가 넘어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기부 행렬에 동참하는 국민들을 소개하면서 '이 이상한 나라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이 늘 이렇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에도 전세계인들이 놀랐었고,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이 지역을 휘감은 기름을 온 국민들이 기름 범벅이 된 채로, 해안가에 달라붙어서 걸레로 닦아내는 모습,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 끝없는 자원봉사 행렬을 상기한다. 

지금 세계가 한국의 신속하고 투명한 그리고 뚝심있는 코로나 대응에 극찬을 보내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대웅도 대응이지만 세계민들이 놀라고 있는 것은 자기들과는 너무나 다른 한국민의 놀라운 시민의식이다. 
 
영상을 본 외국인들이 만개 가까운 댓글을 올렸는데 “한국민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상식적인 행동이 무엇인지, 투명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며  "한국에게서 영감을 얻어 함께 코로나19에 맞서야 한다. 나도 이런 사회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했다. 자신을 유럽인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이 영상을 보면서 왜 내가 자긍심을 갖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 영상은 나를 일깨운다.” “이것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난다"고 반응을 보였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지금 세계 언론이 한국의 공격적인 코로나19 대응과 한국민들의 시민의식에 놀라듯이 2020년 대한민국 국민은 반드시 이 코로나 19를 극복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 위기를 이겨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괴롭힐 지라도 그것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요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 민족이 생명보다 소중한 사랑을 경험하고 잇다는 것이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민족이다. 다음 주는 우리가 어떤 기회들을 만들어 갈까에 대한 꿈들을 펼쳐보겠다. (설교문 김경호 목사)

봉헌 및 감사기도 / 다같이

사랑의 하나님,
바이러스로 어지러워진 세상 속에서 오늘 집에서, 혹은 거리에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건강과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 
지금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과 질서를 무너트린 대가로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파괴하고, 그 속에 있는 생명을 가벼이 여긴 대가를 이를 저지른 자들 보다, 예수님의 친구들인 가난한 자, 굶주린 자, 거대한 자본으로부터 빼앗기고 내 쫒기는 자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바이러스의 공포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 공동체적 자본의 순환구조가 무너져 내려 경제적인 고통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감내 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들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적인 위로뿐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제적인 위로도 함께 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난한 자들과 나눌 수 있는 부족하지 않은 예산이 있습니다. 이 예산이 가진 자들이 더 가지는데 보탬이 되거나,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데 쓰이지 않고, 가난하여 진심으로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쓰일 수 있도록, 그래서 정신적인 위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위로가 함께 하여, 이 어려움이 극복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내가 너를 고쳐준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건강과 시간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또, 길고 추운 겨울을 물리치고, 다시 생명이 부활하는 따뜻한 봄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 내가 너를 고쳐 준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빨리, 이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다 함께 예배당에 모여 반갑게 만나고 함께 찬양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기도드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기도문 하영만 집사)

결단찬송 / 찬송가 316장 목마른 자들아

공동축도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응답송 / 주여 동행-하사 손잡아 주시고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케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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