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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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와 십자가
  • 박철
  • 승인 2020.02.27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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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예수살기 총회에 붙여, 우리가 가야할 길, 예수의 길

작은 종달새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았고, 또 가시관을 보았습니다. 새는 가시를 뺄 방법을 찾을 때까지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가시를 빼다가 가시에 찔리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코러나 바이러스가 도처에 창궐합니다. 이때 우리 각자는 이 새처럼 되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어떤 위안을 주었는가?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의미 있는 것인가? 작은 종달새는 가시 한 개를 빼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면, 그 종달새를 생각합니다. 십자가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은총의 장소입니다.

종달새는 이른 봄날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싫더라
명랑한 봄 하늘,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요염한 봄 노래가
좋더라
그러나,
오늘도 구멍뚫린 구두를 끌고
훌렁훌렁 뒷거리 길로
고기 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
가슴이 답답하구나
-윤동주. <종달새>-

우리가 가야할 길, 예수의 길

-예수살기 10년 이정표를 기리며-

주전 4년 경 척박한 땅 펠레스타인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 예수는
왜 어떤 사람은 주인으로 살아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일평생 노예로 살아야 되는가
왜 농촌 사람은 하루종일 일해도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왜 권력층과 不在地主者들은 떵떵거리며 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질병을 고통을 당하고
너나 할 것 없이 평화를 얻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아파했다
이런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예수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보았다

예수는 모든 민중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드디어 큰 뜻을 세우고 出家를 결행한다
예수는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모든 소유를 떠나
갈릴래아 해변 주위에서 유랑 乞食한다
예수는 한 때 세례 요한의 회개운동에 가담하기도 하고
엣세네파의 영적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들어간다

낮에는 40도가 넘는 폭염과 밤에는 영하의 추위가 엄습하는 곳
독사와 온갖 맹수와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곳
인간이 살 수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예수는 금식기도를 한다
40일 동안 용맹 정진 끝에 드디어 예수는 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가난한 목수에 불과한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고귀한 존재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깨달음을 깨달음 그 자체로 머물지 않았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창녀나 죄인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하나님 아들이라는 깨달음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했다
하나님 아들 의식의 사회적 실천이 곧 하나님나라 운동이었다
得道한 예수는 제자들을 선발하고, 그들을 훈련시킨다
그들을 민중의 삶의 현장으로 派遣한다

예수는 한 마디로 혈연과 지연과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다
모든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그 경계들을 해체하는 삶을 살았다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유대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
변두리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곧 죄인, 창녀, 세리, 질병과 정신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곁으로 서슴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소외된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삶의 동반자로 살 수 있었다
그들과 더불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가족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거침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수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결국 십자가에 처형되는 悲運을 맞기도 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다
넓은 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길이다
좁은 길은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자유케 되는 길이다
그런데 제자들과 바울로는 넓은 길을 택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 길이 훨씬 편하고 가기 쉽기 때문이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예수살기 나의 동지들이여
우리는 어찌하여 그를 따르려고 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외로운 길 험한 길 좁은 길을 가려고 하는가
눈에 보이는 세계, 손에 잡히는 세계가 세계의 전부인 줄 착각하며
거기에 코를 박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어찌하여
예수의 삶을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의 길을 가려는 이유는
거기에 생명이 있고 평화가 있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땅의 고통의 현장이고
그곳이 바로 우리의 기도처요 至聖所임을 발견한다
예수가 펼친 하나님 나라는 彼岸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예수의 깨달음은 사회에서 소외된 민중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을 보살피는 삶에서 완성된다
예수는 위선적이고 엄격한 바리새파의 계율종교의
멍에로부터 민중을 해방시켰다

오늘 우리는 예수의 길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는다
우리는 단호히 교리적 예수, 剝製化된 예수를 거부한다
이제 예수를 예배당에 그만 가두라
치열한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그를 살려내야 한다
이웃을 내몸처럼 귀히 여기는 그곳에서 예수를 부활시켜야 한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예수살기 나의 동지들이여
2천년 팔레스타인 청년 예수처럼 더욱 치열하게 살자
가난하지만 더욱 당당하고 의연하게 살자
더욱 열심히 共同善을 추구하며 利他的인 삶을 살자
이땅에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더욱 헌신하자
예수를 본받아 우리의 의식과 신앙을 더욱 확장시켜 나가자
열심히 아파하자 열심히 사랑하다 죽자 예수처럼.

• 이 시는 2019년 2월 25일 저녁 향린교회에서 개최된 예수살기 10년사 "작은 이들의 벗" 출판기념회에서 낭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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