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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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합니다만
  • 백창욱
  • 승인 2020.02.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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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 평화기도회(20.2.13) 말씀나눔

진밭교 평화기도회(20. 2. 13)   
마가 7:24-30 “그렇긴 합니다만”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휩쓸었다. 한 매체에서 기생충 상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오스카상 영화제가 미국의 백인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혹평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오스카 스스로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영화 기생충은 미국이라는 로컬에서 헤매면서도 길을 찾지 못하는 오스카를 구원한 동아줄이라고. 매우 설득력있는 분석이다. 자체적으로 길을 찾지 못할 때는 강력한 외부인자가 길을 열어주는 것도 묘수다. 

사진은 김천시민촛불집회에서 발언하는 백창욱님
사진은 김천시민촛불집회에서 발언하는 백창욱님

도올 김용욕은 마가복음 강해에서 마가복음이 잘 짜여진 드라마라고 말한다.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을 때, 시원함을 느꼈다. 복음서에서 나름 풀리지 않는 말씀들이 많은데, 드라마라는 말에 복음서를 새롭게 풀 수 있는 안목이 열리는 기분이다. 오늘 복음말씀을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풀어보자. 오늘 복음에서 제일 난제는 예수의 태도다. 이방여인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가 친절하지 않다. 예수는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나에게 오면 쉼을 얻는다고 했다. 또 병에 시달리는 민중을 보면 한없이 불쌍히 여겼다. 그래서 만져주고 고쳐주고 병과 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는 당신이 평소 한 말과 모순을 보인다. 이방여인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쌀쌀하다. 

한 이방여인의 딸이 악한 귀신이 들렸다. 어머니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심정이다.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 한달음에 예수께 달려왔다. 그리고 엎드려 간청한다.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이쯤 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 파악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 예수와 여인의 대화를 보자. 오늘 복음에서 핵심이다. 먼저 예수의 말.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여인의 말.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 탄복할만한 응수다. 
어째서 예수는 이런 경우 없는 말을 하는가? 아무도 모르게 쉬러 왔는데 사람들이 쉼을 방해해서 짜증이 난 것일까? 아니면 예수의 자비는 유대인만을 위한 국수주의인가? 그래서 이방인에게는 무심한 것인가? 그동안 교회와 신학교는 이 대목에 대해 어떻게든 예수를 옹호하는 쪽으로 해석했다. 예수가 여인을 시험한 것이라는 둥, 진짜로 예수의 자비 대상은 유대인이고 이방인은 아니라는 둥. 나는 이렇게 봤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되기 전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판단이나 인식에서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었다고. 

마가복음이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예수와 여인의 태도를 해석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 마가작가는 드라마의 극적요소를 위해 얼마든지 다양한 소재를 동원할 수 있다. 그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작가의 고유한 재능이다. 오늘 복음은 유대지역을 벗어나서 이방지역에서도 민중을 위하는 예수의 그리스도 됨이 일어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그냥 서술하면 얼마나 밋밋한가. 예수는 냉랭하게 말하고, 여인은 예수의 말을 지혜롭게 반전시키는 설정은 극적반전을 위한 소재이다. 그러나 드라마지만 얼마든지 사람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두로라는 국제도시에 사는 사람답게 세련된 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에서 상대를 설복시키는 기술쯤은 얼마든지 체득해 있다. 상대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치면서도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화술은 그 당시 현대인의 교양이다. 게다가 엄마가 자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랴. 마가작가는 복음서라는 드라마 장르에서 유대를 넘어 이방지역까지 섭렵해가는 예수의 행적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사람살이에서 새로운 자극은 매우 중요하다. 나태와 무지, 무의식과 관습에 길들어져 있는 사회를 깨기 위해서는 외부자극이 필수다. 한국사회는 어떤 외부자극이 필요한가? 광복 75년은 그대로 분단 75년이고 미제점령 75년이다. “일본놈들이 쫓겨나가고 미국놈들 들어와서 해방인줄 알았더니 그 놈이 그 놈이더라” 주한미군 철거가 가사 그대로다. 이 긴 세월 미제의 지배아래 살다보니 의식과 삶도 고스란히 미제놈 수하에 녹아들었다. 그래서 미제 아니면 당장 절단나는 줄 알고 절절 맨다. 안보마피아들은 한미동맹이 이 나라를 지켜준다는 거짓신화를 주구장창 우려먹고 대중에게 유포시켰다. 대중은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진리처럼 수용했다. 진짜 진리는 거부하면서 거짓 진리는 잘도 받는다. 사드강제배치는 우리의 무의식 속 맹종을 강타했다. 우리가 여전히 미제의 속국이며 문재인정권도 미제 앞에서는 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우쳤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드를 기필코 물리쳐서 우리가 살아있는 시민이라는 것을 증거하자. 주체자주독립시민으로 서자. 우리의 의지와 신념, 결단에 달렸다. 일제 때 독립투쟁 했듯이 미제놈 물리치는 독립투쟁을 하자. 하나님이 동행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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