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 대보름 풍경 +
유응교
흥겨운 풍물놀이 패가
집집이 찾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하고
오곡으로 찰밥을 지어
소쿠리에 담아내면
나는 으레 이웃집으로
희덕거리며 / 찰밥을 얻으러
쏜살같이 내달렸다.
대보름 전날은
상자일(上子日이)이라
쥐불놀이를 하였으니
빈 깡통에 바람구멍을 송송 뚫어
쇠줄로 묶어 들고
숯불을 담아 빙글 빙글 돌리며
논두렁으로 내달렸다.
쥐를 잡고 벌레를 죽여
마른 풀이 재가 되어 거름이 되게 하면
풍년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무병장수를 빌며 부럼을 깨물고
귀밝이술로 청주 한 잔을 억지로 마시고
살찌라고 두부를 먹은 뒤에
친구 이름 불러내어
더위를 파는 맛은 고소했다
해가 뉘엿뉘엿 할 무렵
생솔가지와 대나무를 잘라내어
논바닥에 달집을 지어 놓고
연을 높이 매단 후에
한해의 모든 액을 거두어 가게하고
달이 동산에 휘영청 뜨기를 기다려
불을 질러 꼬실라 대니
온 동네가 불꽃으로 휘황하고
대나무 튀는 소리가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였다.
어른들은 / 새끼를 꼬아
암줄과 숫줄을 만들어
길게 용처럼 늘어놓고
윗 뜸과 아랫 뜸 끼리 줄다리기를 하여
이기는 쪽이 풍년이 든다 하였으니
벌겋게 상기된 얼굴마다
힘줄이 솟아오를 즈음
나는 잘 익은 농주를 가지러
집으로 내달렸다.
그 허연 고샅길에
슬쩍 슬쩍 마시던 술에 취하여
버얼건 얼굴로
비틀거리며 달집을 돌고 돌았다.
그 때 소원을
제대로 빌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던 걸음을
지금까지 계속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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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립고 정겨운 풍경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이젠 정월 대보름 축제라는 이름으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올 핸 바이러스로 그 마저도 볼 수가 없다
온 동네가 한 가족이었다
놀이는 흥과 멋과 맛을 주었고
전체가 거룩한 의식이었다.
그 때 불타오르는 달집을 돌면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아랫마을 영희랑 짝꿍 되게 해달라고,
그 덕분에 난 영희랑 짝꿍이 되었다
엊그제 친구 아들 혼인식에 갔다가
영희를 만났다
영희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늙고 있다
늙으면 기억을 먹고 산다더니
그 유년의 멋진 풍경이 그립다
그 유년의 정겨운 힘이
자본주의와 나르시즘을 물리고
더불어 사는 공감의 길로 나서게 한다
(0208, 정월 대보름에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