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외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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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외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 이유
  • 백창욱
  • 승인 2020.02.0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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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 평화기도회(20. 2. 6) 하늘의 소리

진밭교 평화기도회(20. 2. 6)
마가 6:7-9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가 제자를 파송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가혹하기 그지없다. 극한훈련이라도 시키는 것인가?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명한다. 먹을 것도, 자루도,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고, 심지어 속옷도 따로 챙기지 말라고 한다. 한마디로 빈털터리로 다니라고 한다. 제자들을 지지리 궁상으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존을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지하라는 말인데, 어째서 예수는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인가? 예수는 제자들에게 매우 구체적으로 여행의 규칙을 말씀한다. 지팡이, 먹을 것, 자루, 전대, 신발, 속옷 등에 대해 시시콜콜 지시한다. 예수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예수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제국을 타파하는 민중의 소리다. 그러므로 예수의 삶과 말씀을 기록한 복음서의 성격 역시, 제국 지배체제를 거부하는 대안서이다. 다른 세상을 살자는 선언이며 촉구며 도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서를 읽을 때는 그저 고전 중 하나를 읽듯, 좋은 말씀이니 마음의 수양이나 하라는 듯, 점잖게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건 혁명의 책에 대한 결례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지배체제를 옹호하고 민중의 수탈을 정당화하는 소리라면 다 헛빵이다.

오늘 복음말씀에는 어떤 배경이 숨어 있을까? 복음저자는 우선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언하는 게 일차목적이다. 일차목적을 위해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소개한다. 그런데 예수를 증언하는 배경에는 중요한 기본전제가 있다. 그것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와는 달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주님이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임을 증언하는데 제국과 차별화하지 않는다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복음저자는 명석하다.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처럼 ‘다 계획이 있다.’ 복음저자가 말하는 모든 서술에는 로마제국에 대한 비판, 풍자가 은유적으로 숨어 있다. 예수도는 로마질서와 철저히 다르다는 선언이 깔려 있다.

그런 배경에서 예수의 제자파송은 어떤 문제의식을 담고 있나? 로마의 지배체제는 후견인제도로 돌아간다. 한 세력자가 후견인이 되어 자기 밑에 피후견인을 거느린다. 요즘 말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시스템이다. 지배세력만 공고히 하는 질서다. 황제와 원로원, 두 지배세력은 후견인제도를 이용해서 식민지를 관리한다. 이스라엘 괴뢰정권도 그 시스템 아래 있다. 그들은 후견인제도를 통해 서로의 잇속을 채웠다. 그 등쌀에 민중만 허리가 휘었다. 예수가 제자를 파송하는 이야기는 권력자들의 식민지 순회를 빗댄 이야기이기도 하다. 후견인이 방문하는 고을의 민중은 죽을 맛이다. 지방 총독은 민중의 재산을 빼앗아 후견인의 환심을 샀다. 먹을 것은 고급특산물이어야 하고 지역특산품으로 궤짝을 채워야 한다. 화려한 전대에는 각종 진상품이 가득 들어 있다. 접대가 부실하면 화가 닥치므로 울며 겨자 먹기다. 고대인들의 최고미덕이 나그네대접이지만 하도 토색을 당한지라 나그네도 반갑지 않다. 바로 이런 실상이 예수의 제자파송 규칙이 철저한 이유다. 제자들은 민중과 같아야 한다. 민중에게 폐가 돼서는 안 된다. 그들이 주는 것만 먹어야 한다. 굶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절대 소유를 취해서는 안 된다. 오직 자기방어를 위해 지팡이만 지닌다. 제자들의 여행 제일 원칙은 민중이 안심하는 것이다. 후견인은 민중을 발가벗겨 먹지만 제자들은 더러운 악령을 제어한다. 더러운 악령은 무엇인가? 지배세력이 조장하는 모든 악영향이다.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제국의 폭력이 빚어낸 악영향을 견디지 못하고 그 기운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 병자들의 신음을 틔어주었다. 이처럼 예수와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냄으로 하나님나라가 임한 증거로 삼았다.

사드철회투쟁도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진배없다. 사드는 오직 미제의 패권유지만을 위해 배치된 무기다. 미제는 사드를 자기네 땅도 아니고 우리 땅에 배치했다. 그러므로 사달이 나면 태평양 건너 미제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고 좁디좁은 이 땅 한반도에서 벌어진다. 이 땅 민중에게 재앙이 닥친다. 뿐만 아니라 안보마피아들은 분단을 빌미로 끊임없이 자기들의 욕망을 확대재생산한다. 사드배치도 그 욕망의 실현이다. 욕망의 정도가 어찌나 심한지, 제 나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고 사드를 강제로 들여보냈다. 이 어이없는 결정을 뭐라고 해야 하나? 박근혜와 달라서 잘 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미래를 위해 할 수 없다고? 한마디로 귀신들린 짓이다. 미제국이 조장한 악영향과 후견인제도에 길들여진 괴뢰정권이 귀신들린 일을 하고 말았다. 예수와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냄으로 제국의 악영향에 짓눌린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우리도 사드철회투쟁을 기필코 승리해서 미제에 짓눌려 신음하는 이 나라를 구하자. 미제와 사드를 물리쳐서 이 나라가 진정 민중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게 하자. 미래 세대는 해방시민으로 살게 하자. 아멘.

* 본 글은 진밭교 평화기도회(20. 2. 6)때 전한 말씀, 마가 6:7-9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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