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화 함정에 빠지지 말고 참된 의식으로 우리 뜻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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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화 함정에 빠지지 말고 참된 의식으로 우리 뜻 이루자
  • 백창욱
  • 승인 2020.01.23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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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 평화기도회(20. 1. 23), 마가 3:7-10 “작은 배를 준비하라”

리처드 로어 신부. 훌륭한 영성가이다. <불멸의 다이아몬드>, <물 밑에서 쉼 쉬기>, <야생에서 아름다운 어른으로> 등의 주옥같은 영성 책을 썼다. 이 책은 참 사람, 참된 영성으로 사는 길잡이다. 독실한 신앙인이 되려면 우선 참 사람이 돼야 한다. 나는 이 분을 이현주 목사님이 발행하는 <풍경소리>에서 처음 알았다.

‘단순함’이라는 큰 제목 아래 매달 소주제 글을 실었는데, 그 중 한 글을 읽고 크게 각성했다. 이유가 있다. 그 때 나는 삼평리 철탑투쟁 이후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 정권과 한전으로부터 형사민사로 재판받고 전과자 되고 손해배상 등으로 심신이 시달린 것 말고도 내부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했다. 그 모든 후유증은 단체 대표인 나의 책임이기도 했다. 내 몸을 바쳐서 희생을 감수하며 전력을 다해 투쟁했는데, 상은 못 받더라도 마음은 편안해야 하는데, 우울과 분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 상태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원인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그 때 우연히 <풍경소리>에서 리처드 로어의 글을 읽었다. 내 의식을 크게 깨우쳐 준 글은 동일화하지 말라는 요지의 글이다. “우리는 자기를 다른 무엇에 동일화시키지 않는 기술을 잃어버렸고 그 때문에 중독된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놓아버리는 법을 배워 익히지 않는 한, 우리가 그것들을 부리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를 부리게 마련이지요. 그것들과 맞서 싸우거나 그것들에 여러분을 동일화시키지는 마십시오.” 밑줄 친 부분만 인용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단순무식한 성정인지라, 뭐 하나에 꽂히면 물불가리지 않고 그 일에 나를 전적으로 동일화하는 게 문제였다. 지금 겪는 고통은 지나친 동일화에서 오는 후유증이었다. 이때부터 항상 그 무엇이든 동일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식하고 산다.

그런데 동일화하지 말라는 교훈은 리처드 로어 만의 주장이 아니다. 그 뒤 <풍경소리>에서 톨텍의 네 가지 합의라는 또 다른 고대지혜를 접했는데, 거기서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톨텍은 고대 멕시코 인디언들의 지혜다. 네 가지 합의는 이렇다. 첫째 무고(無辜)한 말을 할 것. 즉 허물없는 말을 할 것. 둘째 그 무엇도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셋째 추측하지 말 것, 넷째 언제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중 두 번째 합의는 동일화하지 말라는 교훈과 같은 말이다. 여러분, 동일화하지 마시라.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가 운동을 시작한 후,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는 장면이다. 갈릴리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온 사방에서 민중들이 예수께 몰려온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예수 몸에 손을 대려고 한다. 예수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작은 배 한 척을 띄웠다. 뭍에서 사람들 속에 파묻히지도 않고 바다 멀리 가지도 않고 아주 적당히 무리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 덕에 예수는 할 말을 하고 무리들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왜 예수는 거리를 둔 것인가? 사람은 거리를 둬야 관조한다. 거리가 없이 바로 닿으면 동일화하기 쉽다. 우리의 본성이 우둔하고 선하지 않은 까닭이다. 예수가 무리들과 동일시되면, 무리들은 예수를 그저 자신들의 욕망실현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무리들이 자기를 찾는 이유를 말하기를,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고 하듯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의 성향이 그렇다.

예수는 쉽게 동일화하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마가복음 강해에서 예수가 작은 배를 띄워 거리를 유지한 이유는 무리가 예수를 무등 태워서 반란의 우두머리로 삼으려고 하는 군중심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무리들의 봉기와 동일시할 수 없는 평화운동이기에 거리를 두는 것은 서로에게 매우 중요하다.

사드철회투쟁을 하는 우리도 두 가지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급한 마음으로 투쟁 하는 것이다. 당장 사드를 뽑을 수 있을 것처럼 투신하다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지레 지쳐서 중도하차하기 쉽다. 실제 많은 사람이 왔다가 떠났다. 이미 햇수로 오년이다. 서두르는 마음과 거리를 두고 뚜벅뚜벅 가자.

두 번째는 괴물과 싸우다가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괴물이 될 수 있다. 우리의 투쟁 상대는 미제다. 그리고 미제의 요구에 꼼짝 못하는 정권이다. 2017년 9월 7일 이차사드 들어갔을 때 이후, 문재인은 무려 다섯 차례나 경찰을 풀어서 제 나라 시민들을 짓밟고 사드배치를 진행했다. 호르므즈 파병하는 거 봐라. 문재인이라고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식민국가의 비애다. 미제는 양심에 털 난 나라이다. 오직 제 나라 탐욕을 위해 남의 나라 민중이 어찌되든 구애받지 않는다.

게다가 식민지인 이 땅에는 미제의 탐욕이 더욱 활개 친다. 청교도의 나라라는 건 그냥 자기들의 악함을 세탁하는 소리다. 청교도들은 자기들을 환대하고 목숨을 부지시켜 준 인디오들 등에 칼을 꽂았다. 그렇게 욕망과 악으로 지금까지 내달려온 나라다. 이런 괴물을 상대하므로 우리도 매사에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동일화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참된 의식으로 우리 뜻을 이루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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