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철회투쟁 승리해서 기필코 자주주권독립국가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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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철회투쟁 승리해서 기필코 자주주권독립국가 세우자
  • 백창욱
  • 승인 2020.01.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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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 평화기도회(20.1.16), 막 1:40-42 “손을 갖다 대다”

이번 주는 역사에서 여러 의인들의 죽음이 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열사가 고문으로 죽은 날이다. 1994년 1월 18일은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또 그제 14일에는 1992년 ‘관권선거 양심선언’을 한 한준수 전 연기군수가 별세한 날이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전두환 군부독재를 끝장내는 도화선이 됐다. 수배중인 선배의 행방을 대라는 경찰놈들의 고문을 견디다가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 때 민주시민들은 지독한 최루탄 가스를 참고 시내거리를 뛰어다녔다. “종철이를 살려내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전두환 정권을 밤낮으로 규탄했다. 지금도 그 때 빌딩에서 시위대에게 던져주는 수많은 두루마리 화장지가 펼치는 멋진 장관이 떠오른다. 박종철 열사 죽음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민주시민들은 기어이 전두환 정권을 굴복시켰다. 작년 11월에 박종철 열사가 죽임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현관 입구에는 “국가폭력으로 점철되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문구를 보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문구는 한 개인의 죄책고백이 아니라 국가의 죄책고백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문에 굴하지 않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이 땅에서 고문이라는 야만을 끝장냈다. 그렇더라도 14일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자식을 그리워하는 박종철열사 아버지의 일기는 우리 가슴을 매이게 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바친 의인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반석 위에 세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은 남북이 서로 쌓아놓은 분단의 장벽을 일거에 허물었다. 문목사님의 방북은 그 장벽이 실제 물리적인 장벽이 아니라 마음의 장벽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 천하에 증거했다. “아, 갈 수 있는 곳이구나, 가면 되는구나”하는 것을 깨우쳤다. 그리고 그 때 문목사님과 김일성주석이 합의한 통일방안은 그 뒤 남북정상 합의에 토대가 됐다. 내가 문목사님의 삶에 특별한 뜻을 부여하는 게 있다. 문목사님이 대학이라는 안전지대를 박차고 3.1 구국선언을 주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선 1976년부터 1994년 돌아가시기까지 세월이 18년이다. 우리 현대사에 박정희의 18년 독재만 있다면 얼마나 비루했을까. 그러나 문목사님의 18년 민주화투쟁이 박정희의 18년을 상쇄시켜 버렸다.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정권에 굴하지 않고 전 인생을 걸고 정면도전한 문목사님 덕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떳떳할 수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준수 전 연기군수도 관권이 총선에 개입했다는 양심선언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관의 정치적 중립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군수의 의로움 덕에 세상은 그만큼 진보했다. 

오늘 복음말씀은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고침받는 이야기다. 여느 병치유처럼 나병환자도 고치는 평범한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평범해 보이는 병치유 같지만 실은 체제도전적인 비범함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이 그런가? 예수의 치유방법을 보자.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갖다 대시며, ‘깨끗하게 되어라’ 했다. 나병은 정결례에서도 가장 천대하는 병이다. 나병에 걸리면 공동체에서 무조건 격리 당한다. 접촉하는 모든 물건과 사람도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나병환자는 지독한 소외와 배제를 당한다. 표면적으로는 전염성을 우려해서 엄하게 단속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지배세력의 노림수가 있다. 나병을 엄격하게 취급해야 율법이 더 잘 먹히는 것이다. 민중이 벌벌 떨어야 자기들의 지배가 수월하고 천년만년 해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나병환자는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대상이 됐다. 그런데 예수는 나병 율례를 깨버렸다. 접촉하면 자신도 부정하게 된다는 금기에 매이지 않고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댔다. 예수의 행동에 나병환자가 제일 먼저 놀라고 감동 먹었을 것이다. 모든 이가 자기만 보면 쫓아내고 피하기에 급급한데, 예수는 자신을 보고 측은히 여기고 또 자기 몸에 손을 대니 말이다. 예수의 전복적인 행동에 이미 치유는 시작됐다. 치유의 바탕은 사람사랑이다. 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자가 아니다. 지배질서의 규정에 매이지 않는 사람사랑의 지존이기에 치유가 일어난다.

분단질서, 국가보안법, 반북친미사상, 한미동맹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나병이다. 지배세력은 시민들이 분단이 빚어낸 나병에 벌벌 떨고 찍소리 못하고 숨죽여야 좋다. 안보마피아들은 쾌재를 부른다. 이 질서는 우리를 끝도 없이 억누른다. 저놈들만 좋은 세상은 평화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단질서를 깨뜨려야 한다. 한미동맹 세력들은 분단을 구실로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오만방자함으로 그동안 이 나라 안보를 좌지우지해 왔다. 이제 끝장을 볼 때가 왔다. 사드강제배치는 한미동맹세력의 연장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드를 물리치는 투쟁으로 우리가 이 땅의 주인임을 입증하는 기회다. 한미동맹 신주단지를 깨자. 의인들의 정면도전이 불의한 세상을 바꾸었듯이, 우리도 사드철회투쟁 승리해서 기필코 자주주권독립국가를 세우자. 사드가 퍼뜨리는 거짓선전을 뚫고 참 자유를 누리자. 평화를 세우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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