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와 여섯 번째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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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와 여섯 번째 대멸종
  • 박병상
  • 승인 2020.01.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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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들이 최대한 행복할 수 있도록 파국의 시간 뒤로 연장해야

"인류세 살아남기"

5명이 같이 쓴 책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를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보냈고, 오늘 받았습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환경운동의 장르를 펼쳤던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펴낸 책입니다. 저도 그 단체에 4년 가까이 대표를 한 인연으로 특강을 했고,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그 내용을 녹취해서 책으로 엮었습니다. 저는 "인류세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 내용을 제 블로그에 올렸고 그 링크로 아래 잇습니다.

줄여서 '풀꽃세상'이라고 말하던 그 단체는 지금 소박해졌어도 꾸준히 "자연을 존경하는" 환경운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단체의 초대대표인 정상명 선생과 현 대표인 심재훈 선생, 그리고 평화운동가 이시우 선생, 환경운동가 이상수 선생, 모두 5명의 강의 내용을 묶은 책 표지를 아래 링크 내용에 사진으로 올렸습니다. 아직 시판 전일 텐데, 관심이 있는 분은 철수와영희 출판사(02-332-0815)에 문의하거나 곧 전시될 서점에서 확인하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인류세(anthropocene)'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나친 개발과 훼손, 오염으로 돌이킬 시간, 살아남을 시간이 지났어도 행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 그들이 살아 숨쉬는 동안 만날 생명들이 최대한 행복할 수 있도록 파국의 시간을 뒤로 연장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몽상가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진을 보며 강의한 내용의 녹취라서 다소 어수선합니다만, 아렵지 않게 풀어내려 노력한, 쑥스러운 글입니다.

사진: 왼쪽은 철수와영희 출판사 2020년 간행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오른쪽은 이상북스 2018년 간행, 인류세
사진: 왼쪽은 철수와영희 출판사 2020년 간행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오른쪽은 이상북스 2018년 간행, 인류세

 

인류세와 여섯 번째 대멸종

 

지층을 보면 다양한 생물들이 번성했던 흔적이 존재합니다. 대부분 사라졌어요. 그중 마지막으로 번성했던 생물종들이 눈에 띄게 사라진 것이 6500만 년 전입니다. 당시 대략 70퍼센트의 생물이 멸종했다고 분석합니다. 개체로 따지면 아마 99퍼센트 이상은 사라진 거로 보고요. 생물학적 단위로 800과가 사라집니다. 어마어마한 수의 생물이 없어진 거예요.

 

생물을 분류하는 단위가 계-문-강-목-과-속-종, 이렇잖아요. 뒤로 갈수록 작은 단위입니다. 예를 들면 물고기는 잉어목의 붕어과, 이런 식으로 분류하지요. 그런데 800개의 ‘과’가 사라졌다는 거니까 어마어마한 규모로 생명이 사라진 겁니다. 이렇게 대규모로, 당시 생존했던 생물종의 60% 이상 사라지는 현상을 대멸종이라고 하는데요. 지구 역사상 다섯 번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분석해 그 이유를 추정합니다. 어떤 환경적 변화가 생물의 대량 멸종을 유발했다고 파악하는데요. 그중에는 화산 폭발도 있습니다. 다섯 번째, 즉 마지막 대멸종의 원인은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진 운석 때문이라고 추정하는데요, 대략 직경 10킬로미터 이상의 크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떨어지자마자 높이 300미터짜리 해일이 대륙을 육지를 덮쳤다고 상상해요. 그 여파로 지금의 미국 플로리다 지역이 거의 물속에 잠겼을 겁니다.

 

운석이 떨어지고 그 충격으로 해일이 일어나고 연이어 터진 화산으로 발생한 분진이 태양을 가립니다. 지구는 얇은 지각으로 덮인 펄펄 끊는 거대한 액체 덩어리로 보면 좋겠습니다. 얇은 지각이 운석으로 뒤틀리면서 흔들렸고, 이어 지진과 화산 폭발이 연쇄적으로 발생했겠지요.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면서 지구 전체의 생태계가 일순간 재앙에 휩싸였고 이런 일련의 재앙이 나타났을 거로 봅니다. 지금도 화산이 크게 폭발하면 대기로 뿌려지는 막대한 재 때문에 인근의 지표면은 태양 빛을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기온이 1도 정도 떨어진다고 해요. 별거 아니다 싶겠지만 생태계에 큰 충격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재앙은 당시 살고 있던 생물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진행된 사건입니다.

 

현재 우리가 절박하면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입니다6500만 년 전 다섯 번째 대멸종은 1만 년이라는 아주 짧은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 대표적으로 번성했던 공룡들, 2억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생태계의 주역이던 공룡들이 한꺼번에 사라졌죠. 공룡이 사라지기 전, 포유류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미천한 존재였는데 아마도 설치류가 아니었을까 추정하고요. 이들이 공룡이 사라진 후에 번성해서 6500만 년 사이에 다양한 생물종을 이룹니다. 그게 최근까지 이어진 거고요. 그런데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번성했던 새로운 생물종들이 인간의 출현으로 급격하게 변합니다. 사라지는 겁니다. 이른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작이지요.

 

인간은 지구상에 등장하고도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하는 생물종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불과 1만 년 전, 농업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때부터 자연과 대결하기 시작하지요. 인간은 자신이 먹을 작물을 키우기 위해 자연을 변형시킵니다. 불필요한 식물을 뽑아내고 심은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다가오는 곤충을 해충이라 여기며 없앱니다. 그런데 이게 다 인간 기준이에요. 세상에 쓸모없는 생명이 없잖아요. 어쨌든 그 후 인간은 엄청난 과학 문명의 진보를 이룹니다. 인간의 탐욕도 그와 함께 커지지요. 그러면서 자연에 대한 착취는 규모를 키우더니 이제 지구의 생물 종들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해진 거예요. 그 결과가 바로 현재 직면하는 여섯 번째 대멸종입니다.

 

어쩌면 핵전쟁으로 인간 자신까지 포함하는 대멸종이 발생할지 모르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바로 현세의 모습입니다. 소련과 미국이 패권을 경쟁하던 시절, 그렇게 걱정스런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나왔죠.

 

그래서였을까요? 이제 우리가 사는 현세가 누구도 아닌 우리 인류에 의해 지구의 운명이 좌우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시대가 ‘인류세’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습니다. 이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은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이에요. 오존층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입니다. 이 사람이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처음으로 제안해요.

 

언제부터 인류세라고 보아야 할까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많은 사람이 1945년을 꼭 짚어 이야기합니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물질로 방사능, 미세먼지, 그리고 플라스틱을 꼽거든요. 이 모두가 이전에는 지구 전체로 볼 때 아주 드물었거나 없었던 물질입니다. 인간이 탐욕스러워지면서 폭증한 것들이에요. 언론에 의하면 몇몇 과학자 그룹에서 인류세를 공식적인 용어로 추천했다고 하네요.

 

그럼 그중 하나인 핵과 관련해서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본에 다카기 진자부로라는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한때 일본에 노벨상을 안겨줄 거로 기대를 받는 젊은 과학자였는데요. 나중에 ‘원자력 자료 정보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요. 핵화학 전문가였던 이 사람은 자연에서 인공 방사능이 계속 검출되는 데 충격을 받습니다. 미국과 소련에서 핵실험 경쟁이 치열했던 1945년 이후의 남극 빙하에 발견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시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핵의 위험성을 계속 주장했지만 그가 속해 있던 국구의 연구소는 외면해왔고, 결국 그 연구소를 그만둡니다. 대학교수를 좀 하다가 한계를 보면서 원자력 자료 정보실에서 남은 생을 반핵 운동가로 살았습니다.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를 무대로 탈원전 운동을 이끌며 몸을 사리지 않다가 결국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이분은 그 공로로 ‘대안 노벨상’이라 불리는 ‘바른 생활상’을 받습니다. 스웨덴에서 만든 상이에요. 기존의 노벨상이 왜곡된 수상자를 선정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요. 그래서 진정한 평화의 취지로 정한 상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상금은 좀 적어도 이 상을 받은 분들은 진정 인류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추앙받아요.

 

자, 다시 핵 이야기로 돌아와서, 일본은 인류 역사상 핵폭탄의 피해를 본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 후로 어디에도 직접 핵폭탄을 쓴 적이 없어요. 그런데 핵폭탄을 누가 개발했습니까? 우리는 보통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생각하지만 엔리코 페르미라는 사람도 크게 기여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노벨상 수상자였어요. 인류의 삶에 기여한다는 노벨상의 취지가 무색한 일입니다.

 

핵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예는 일본 원폭투하 외에도 많아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존 웨인은 서부영화의 단골 주인공이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잘 아실 거고요. 그런데 이분이 계속해서 암으로 시달리다 죽어요. 폐암에 걸렸다가 수술을 받고 다시 위암이 발병하면서 사망합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당시 존 웨인과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배우와 스태프 다수가 암과 백혈병으로 사망합니다. 무슨 저주라도 걸린 걸까요? 지은이는 그들이 1950년대 중반 미국의 서부 지역인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에서 영화 작업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합니다. 1951년부터 1958년 사이 네바다 사막 지상과 지하에서 무려 97회에 걸쳐 핵실험이 진행됩니다. 이때 발생한 방사능이 분명히 그들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주장해요. 어때요, 오싹하지 않습니까? 지은이는 사고 발생 25년 전에 책을 통해 후쿠시마 사태를 예고했다는 반핵 언론인 히로세 다카시예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꼭 읽어보세요. 멀게만 느껴지는 핵의 위험성을 아주 잘 드러내는 책입니다.

 

풍요의 상징인가 멸망의 징후인가

 

다음으로 인류세의 증거가 될 두 번째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볼까요?

 

이산화탄소는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로 그 자체로 해가 될 게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적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양이 많아질 때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쓰고 또 화석 연료를 사용하면서 지구에 이산화탄소가 급증합니다.

 

인천 송도에서 2018년 10월에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를 개최했습니다. 여기서 「지구온난화 1.5도」라는 특별 보고서를 채택해요. 2100년까지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총회가 열린 장소가 갯벌을 매립한 곳이에요.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을 없애고 그 위에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엄청나게 배출하는 초고층빌딩들을 잔뜩 지었습니다.

 

저는 요즘 이런 모순적인 일들을 많이 느낍니다. 멀쩡한 자연을 훼손시키고 그 위에 생태 교육장을 만들고요. ‘녹색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강을 파헤칩니다. 최첨단 농법이라고 선전하는 걸 보면 농토는 사라지고 거기에 인위적인 장치들을 설치해요. 자연에서 벗어난 농법은 그자체로 반환경적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스마트 농장’은 농사짓는 곳이 아니에요. 그저 자본이 지어놓은 시설입니다. 그러면서 식량 자급률을 따지는데, 그렇게 먹을거리를 생산한다고 해서 자급률이 높아지지는 않아요.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한다고 해서 지구에서 굶주림이 사라지지 않았듯이 말이지요.

 

말이 나온 김에 식량 자급률을 더 말씀드려보면, 지금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0퍼센트가 겨우 넘습니다. 거기서 쌀을 빼면 3퍼센트가 될까 말까 해요. 왜 이럴까요? 수입해서 먹기 때문이에요. 싸다고 밖에서 사서 들여옵니다. 그런데 왜 가격이 쌉니까? 화학비료 치고 농약을 사용해서입니다. 공장식 축산으로 건강하지 못한 먹을거리를 생산해요. 그런 음식이 몸에 좋을 리 없습니다. 게다가 바깥에서 들여오니 스스로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지를 갈아엎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깨려면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데는 화석 연료의 책임이 큽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석유’가 주범이에요. 불과 100여 년 전부터 이걸 지구 생태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태워서 공기 중으로 막대하게 날려 보내면서 문제가 생기고 커진 거예요. 우리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걱정을 크게 하지요?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여전히 지구는 인간으로 넘칩니다. 그런데 지구에 인간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인간이 먹으려고 키우는 동물들의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닭도 많지만 무게로 따지면 대부분 소와 돼지와 같은 포유류입니다. 지나치게 많아졌어요. 일반적으로 생태계가 안정되려면 먹이가 되는 생물에 비해 먹는 생물이 훨씬 적어야 합니다. 흔히 생태계를 이야기하는 삼각형을 생각해봅시다. 먹이가 되는 생물이 아래에 있다면 그 생물을 먹는 동물, 그리고 그 동물을 먹는 포식자가 있을 겁니다. 포식자는 자신이 먹는 동물보다 적어야 합니다대략 10퍼센트 정도를 넘으면 안정적일 수 없지요. 그래야 먹이사슬이 깨지지 않고 생태계는 유지돼요.

 

그런데 인간이 가축을 키우면서 육식을 과하게 즐기면서 그런 균형이 깨졌어요. 자연적인 상태에서 유지가 안 되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겁니다. 어떻게요? 과학기술과 석유라는 에너지원이 이 비자연적인 상황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어요. 인간의 주된 먹을거리인 소와 닭, 돼지 등을 키우는 데 엄청난 양의 자원이 소비됩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소고기를 1킬로그램 수입한다는 것은 그 16배 양의 옥수수를 소비한다는 뜻입니다. 예전과 달리 사람이 사육하는 소는 풀을 뜯지 못합니다. 주로 옥수수를 가공한 사료를 먹이잖아요. 사료는 어떻게 만들까요? 만드는 과정에서 막대한 화학 비료는 물론이고 제초제와 살충제 같은 농약이 포함됩니다. 모두 석유를 가공한 물질입니다. 그런 물질로 재배한 옥수수를 운송, 저장, 그리고 남아 폐기하는데 들어가는 석유도 포함해야죠. 물도 많이 소비해야 합니다. 소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 쓰이는 물이 1만 5000리터라고 해요.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입니다.

 

여러분, 요즘 거의 매일 보게 되는 뉴스 중 하나가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 소식이지요? 빙하가 녹는다는 건 그만큼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사막화도 이어집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몽골에 간 적이 있는데요. 구경을 다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작은 도시에 들렀는데 주변이 온통 사막이에요. 예전에는 풀이 무성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축들을 키우고 했던 곳인데 지금은 모래바람만 날려요. 멀쩡하던 호수와 강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몽골 환경부에 의하면 지난 30년 동안 1166개의 호수와 887개의 강이 없어졌다고 해요. 이유는 바로 지구 온난화입니다. 이게 석유에 의존해온 인류세의 본 모습이에요.

 

해결책은 분명합니다. 석유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어떻게요?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석유가 무한할 거라는 가정으로 마구 퍼다 썼잖아요. 그러나 이 역시 머지않아 고갈될 거라는 게 과학자들의 예측입니다.

 

리처드 하인버그라는 사람이 쓴 파티는 끝났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파티’는 바로 ‘석유 파티’예요. 우리는 현재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호화롭고 윤택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기저에는 바로 석유라는 자원이 있고요. 석유는 그 자체로 에너지원이지만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전기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여러분, 전기 없는 삶을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무인도에 살아도 전기는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전기가 말이죠. 생산지와 소비지가 일치하지가 않아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지역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지 않아요. 멀리 지방에서 생산된 전기를 끌어들이지요.

 

요즘은 핵발전은 전기 생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중국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핵발전소를 짓고 있지요. 지금 있는 것만 서른여섯 개이고 매년 6~8개씩 더 지어서 2030년에는 110여 기를 보유할 예정이랍니다. 그런데 이 핵발전소들이 주로 해안에 몰려 있어요. 그중엔 우리 서해와 맞닿은 지역도 있습니다. 심지에 바다에 띄운 핵발전소도 계획하는데,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산둥반도 앞에 위치합니다. 발전소가 해안에 위치한 것은 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터빈에서 나온 고온, 고압의 증기를 식히는데 바닷물을 써요.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화력발전소는 대략 초당 50톤 정도. 핵발전소는 100톤 정도의 물을 씁니다. 그런데 뜨거운 열을 식힌 바닷물은 당연히 온도가 높습니다. 이게 바다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요. 플랑크톤이 바뀌면 플랑크톤을 잡아먹는 그 위 포식자가 바뀝니다. 우리 서해안과 동해안이 위험합니다.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의 원전을 식히고 나온 바닷물 때문입니다. 태풍이 잦아지면서 강력해집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과학자들은 계속 핵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인공 태양’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마치 현대 과학기술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그 기술은 다름 아닌 핵융합이에요. 언론에서는 청정에너지로 홍보하지만 본질은 핵발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과학적 가능성을 벌써 60년 이상 광고하지만 그 실체는 불분명한데, 밑빠진독처럼 막대한 국가 예산이 낭비됩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핵발전소들은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생산된 전기를 끌어와서 쓰지요. 그런데 그렇게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시설을 왜 서울이나 수도권에 짓지 않는 걸까요? 당연하게도 혐오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위험해요. 그래서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은 늘 도시의 안락함을 위해 희생당해요. 더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생산된 에너지가 소비를 위한 소비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값이 싸다고 선전하지요? 하지만 안전에 관한 비용, 폐기물 관리비용을 후손에게 떠넘겼기 때문입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에서 보고 있듯, 사고는 국가의 존망을 뒤흔들 정도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도 해결이 어렵기만 합니다. 그 비용은 당연히 전기요금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나라나 후손에게 떠넘깁니다.

 

에코토피아를 그리며

 

다음으로 말씀드릴 게 ‘플라스틱’인데요. 요즘은 미세 플라스틱이 또 문제가 되고 있지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세계로 퍼져나가서 먹을거리들을 오염시킵니다. 그리고 그 생물 속 미세 플라스틱은 상위 포식자인 우리 몸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여요.

 

플라스틱은 자연계에 없던 물질입니다. 인간이 발명하고 1945년경부터 지구 생태계에 마구 뿌렸습니다. 지금 플라스틱을 안 쓰는 곳은 없습니다. 플라스틱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인데, 플라스틱이 가진 치명적인 문제가 뭐예요? 분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미생물들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분해해서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수십억 년 이상 계속된 생태계의 안정적 순환입니다만, 플라스틱은 그 순환을 방해합니다. 그냥 두고두고 변하지 않는 상태로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가 망가진다는 거예요. 불과 100년도 못되는 세월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일례로 태평양에는 해류를 타고 모인 플라스틱 때문에 거대한 섬이 생길 지경이에요. 이것들은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동시에 인류의 먹을거리들을 오염시킵니다. 플라스틱은 먹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도 동물들이 먹을 게 없으니까 삼켜요. 이게 나중에 탈이 나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방송에도 몇 번 나왔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가 플라스틱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요. 또 인류세와 관련한 물질이 콘크리트인데요. 이건 따로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땅속에 묻혀 있어야 할 석회석으로 만든 시멘트, 자갈, 모래 등이 섞여서 콘크리트가 되지요. 그런데 이 콘크리트는 생명이 살지 못하는 죽음의 물질이에요. 여러분, 콘크리트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나요? 콘크리트에 미생물이 살 수 있나요? 그럼에도 전 세계의 땅은 빠르게 콘크리트로 덮이는 상황이고요. 콘크리트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상상해봅시다.

 

그래서 핵과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 이러한 것들이 바로 현세가 인류세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하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지엠오(GMO)를 포함하고 싶어요.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든 먹을거리잖아요. 이것도 원래 자연계에는 없던 겁니다. 유전자 조작이라는 기술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느냐면, 여러분이 지금 먹는 음식의 재료 중 상당수가 지엠오입니다. 콩, 옥수수, 감자, 면화 등이 그래요. 유전자 조작 기술은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소와 돼지가 우리 식탁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인류세의 특징이 아닐까 해요.

 

어니스트 칼렌바크라는 사람이 쓴 《에코토피아》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75년도에 출판된 책인데 아마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건 절판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소설을 보면 미래에 에코토피아라는 독립 국가가 미국에 생겨요. 그곳은 완벽한 생태도시로 그려집니다. 매연 없는 친환경적인 탈것, 재생 가능한 자원과 에너지, 자급자족인 먹을거리 생산과 같이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부분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주인공은 서방세계에서 파견한 기자로 이러한 에코토피아의 사회와 제도들을 구석구석 취재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요.

 

그동안 제가 어두운 이야기만 했습니다만,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렌바크가 소설에서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이미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류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핵과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 미세먼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편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 더 불편해지기를 실천한다면 지구 생태계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거라 꿈꿀 수 있어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탐욕이 이끈 분별없는 편의를 외면하는 일 아닐까요?

 

선조가 우리에게 물려주었듯, 최대한의 건강한 삶을 후손에게 넘겨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불편해지기를 여러분께 권하며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 풀꽃세상 환경 특강, 철수와영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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