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렸다는 것 하나님이 당신을 개방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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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렸다는 것 하나님이 당신을 개방했다는 '말'
  • 백창욱
  • 승인 2020.01.1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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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0. 1. 12)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 하늘이 열렸다

그전에 저는 사실을 진리나 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저 진실에 접근하는 데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방송이나 신문은 사실전달을 중시합니다. 그런데 사실이 전부는 아닙니다. 매체 뉴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가치이지만, 지금 사실만 가지고 말하는 매체는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가짜뉴스가 문제라고 하지만 가짜뉴스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왜 그런가요?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가짜뉴스를 목말라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상파 방송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자기들이 잘 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하는 말을 듣고 세상을 판단합니다. 사실 자체보다도 사실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흡입도가 달라집니다. 또 소식전달자가 누구냐가 신뢰도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사실을 가공하는 건 진영을 불문합니다. 똑같은 사실이라도 진영에 따라 해석이 완전 달라지는 건 이제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 됐습니다. 조국사태부터 추미애장관의 검찰인사까지 평가가 극과 극입니다. 이처럼 21세기 이성과 합리의 시대라고 일컫는 세상에서도 사실의 한계는 뚜렷합니다. 그런데 문자주의 기독교인들은 일세기 기록인 복음서를 사실주의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사실만 아는 것은 일차원입니다. 유아기 수준입니다. 성서는 일차원보다는 훨씬 심오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행적은 AD 30년경, 몇 월 몇 일, 어디에서 예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뉴스가 아닙니다. 복음서는 일이 다 지나고 난 후의 서술입니다. 복음서가 증거하는 예수의 행적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신 후의 관점입니다. 서술형식은 역사 예수의 현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의 관점을 예수가 활동했던 과거로 소급해서 그 때 일처럼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행적을 신앙고백 차원에서 서술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를 증언하는 게 가장 크고 유일한 목적입니다. 복음서를 대할 때, 이 기본적인 전제를 기억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에 대한 사후관점이 잔뜩 담겨 있다. 보이는지요? 
오늘 복음내용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 받는 사건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의 관점이 물씬 담겨 있습니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받는 사건을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어떻게 소개하는지 비교해보겠습니다. 마가는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막 1:9)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 세례를 딱 한 문장으로 서술합니다. 이 한 문장만 봐도 마가복음의 성격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마가는 일절 살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활동에 군살 붙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속전속결로 진행합니다. 그에 비해 마태 저자는 예수 이야기를 멋있게 꾸미기 위해 창작적 수고를 많이 합니다. 예수가 세례받는 사건에서도 마가복음에 없는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 주는 것을 사양합니다. 내가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감히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까 합니다. 당시 민중의 희망인 요한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최대한 예를 갖춥니다. 그리고 예수는 당연한 듯이 괜찮다고, 그냥 하라고 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마태는 자기 편한 대로 서술합니다. 심지어 공동번역을 보면, 요한은 존대말을 하고 예수는 반말을 합니다.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자시는 대로 하였다. 

마태는 이미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기 때문에 요한도 예수를 알아 모셨다고 당연히 말합니다. 성서번역자들도 예수가 반말하고 다른 사람은 경어를 쓰는 게 당연하듯이 번역합니다. 사실과는 멀지만, 일세기 신자들은 그토록 간절히 예수를 고백하는 게 진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여러분, 이성과 합리를 너무 숭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실에 다가가는 데 사실도 일부분이듯이, 우리의 이성과 합리, 과학상식도 진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식하십시오. 

예수 행적이 고백적 차원의 진술임을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그 다음 증언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는데, 그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을 말하는 것인가요? 지금 우리 과학상식으로 말하자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층이 요단강 상공에만 살짝 구멍이 난 것인가요? 대기권은 지구를 보호하는 보호막이어서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건 지구에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기권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일세기 사람들이 이런 과학상식을 알 턱이 없습니다. 아니면 우주의 한 귀퉁이에 불과한 태양계가 이 때 임시적으로 작동을 멈추고 요단강에만 어떤 특별한 일을 한 것인가요?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지구는 한 순간에 멸망합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을 현상적으로 말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하늘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하늘이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밤하늘에 찬란한 은하수를 봅니다. 하늘이 열려 있기 때문에 우주의 기운을 받고 태양계 안에서 지구가 정상궤도로 돌아가고 지구인이 무사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차원에서 말하자면,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그냥 이심전심으로 이해됩니다. 마태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다른 말입니다. 하늘은 신성함의 은유입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개방했다는 말입니다. 초월적 존재가 하늘을 둘러싼 울타리를 거두고 현세와 통했다는 뜻입니다. 하늘존재가 땅에 내려왔다는 말도 됩니다. 이런 저런 다양한 뜻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신성하고 거룩한 하늘존재가 한 사람에게 내려 왔습니다. 우선 영으로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3:16) 그 다음 소리로 왔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3:17) 한 사람이 놀랍고 엄청난 하늘의 존재, 위엄을 한 순간에 겪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이 내려온 것을 보고, 하늘 소리도 들었습니다. 소리의 내용은 더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당신의 아들이라고 좋아한다고 공식선언합니다. 예수는 요한의  세례를 받고, 놀라운 신적경험을 합니다. 예수가 예수운동을 시작하는데 이보다 더한 조건은 없습니다. 가장 온전한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 하늘소리는 하늘 일을 땅에서도 이루라는 암시입니다. 혼자만 좋으라는 게 결코 아닙니다. 그 소명이 예수 한 사람 위에 조용히 내려온 것입니다. 예수는 말없이 하늘 소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갔습니다.

오늘 병행본문은 예수가 가신 길, 그리고 우리가 뒤따를 길이 어떤 길인지를 말씀합니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사 42:1)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사 42:6) 

하나님이 택한 사람에게 영을 주시고 부른 뜻은 공의를 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를 거쳐서 우리에게 왔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행 10:34,35) 이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다 받아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행 10:36) 우리는 예수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 행적을 사람들에게 계속 선포하고 증언해야 합니다.(행 10:42) 그것이 예수를 따르는 길입니다. 나의 내면에 있는 영의 소리를 의식하고 평화를 사십시오. 하나님의 의를 땅에 이루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본 글은 주일설교문(20. 1. 12)으로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 주님의 수세 주일, 마태 3:13-17 “하늘이 열렸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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