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사람들 곁에서 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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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사람들 곁에서 본 희망
  • 박성율
  • 승인 2020.01.12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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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봄이 올 거야.”, “추워도 끝나진 않아.”

처음으로 별빛을 본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풍경처럼 우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허가가 난 것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핀잔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듣고 또 들었다. 그때 도청 바닥에 얼지 않고 꼭 붙어 있는 십자화과 꽃다지가 눈에 들어왔다. 얼어붙어 생명이 없을 줄 알았던 그 바닥에 꽃다지는 푸른빛으로 당당했다. 분명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봄이 올 거야.”, “추워도 끝나진 않아.”

주간경향에서 내인생의 노래로 글을 한 편 썼습니다.
고통받는 분들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투쟁하는 사람들 곁에서 본 희망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지금 즉시 이곳에서 나가세요.”, “그럴 수 없어. 골프장 허가를 내주면 우린 어떻게 살라고?”, “그건 모르겠고, 도청에서 당장 나가십시오.”

 

이미 영하로 내려간 바닥에선 얼음이 보였다. 흘깃 엿듣고 가는 바람이 도청 앞 철창문을 먼저 앞서갔다. 바닥 깔개와 비닐을 들고 도청 담벼락 밑에 누웠다. 쫓겨났지만 집으로 가지 못하는 나와 주민들은 살 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비닐 속으로 몸을 넣었다. ‘끝났어’, ‘어서 집으로 가’ 그런 표정으로 달빛이 가로등을 젖히며 속삭이는 듯했다.

 

2011년 11월 초순, 일찍 찾아온 추위에서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대책위 주민들은 강원도청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골프장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했던 시장과 도지사가 약속을 어기고 기습적으로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청 406일, 강릉시청 447일, 홍천군청 206일의 노숙농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시골 주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높은 곳이라도 올라가야 한다면 올라가고 싶었지만 올라갈 굴뚝도, 크레인도 없는 사람들이다. 외면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무엇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저 찬바람 부는 도로 바닥에 누워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아픈 현장을 알리기 위해, 비닐 속에서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쓰려고 손을 올렸다. 그때 누군가 보내준 메시지에 꽃다지의 노래 <내가 왜?>가 있었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 인생도 춥더라.”

 

처음으로 별빛을 본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풍경처럼 우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허가가 난 것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핀잔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듣고 또 들었다. 그때 도청 바닥에 얼지 않고 꼭 붙어 있는 십자화과 꽃다지가 눈에 들어왔다. 얼어붙어 생명이 없을 줄 알았던 그 바닥에 꽃다지는 푸른빛으로 당당했다. 분명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봄이 올 거야.”, “추워도 끝나진 않아.”

 

꽃다지 밴드와 꽃다지 나물은 그래서 내 인생의 계시처럼 남아 있다. 오랜 세월이지만 406일 농성 후 골프장 주민들은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 토지 강제수용 문제로 강원도청·강릉시청·홍천군청·원주지방환경청·서울 등에서 노숙을 수없이 해야 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나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삶을 송두리째 내놓고 싸우는 사람들 곁에서 희망을 본다. 옷깃을 여미고 거리로 나서는 이유다.

 

<박성율 원주녹색연합·토지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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