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애와 민중사랑으로 담대히 사드철회투쟁 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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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애와 민중사랑으로 담대히 사드철회투쟁 임하자
  • 백창욱
  • 승인 2020.01.0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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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 평화기도회(20. 1. 9) 마가 6:47-51 “바람이 그쳤다”

예수의 이적은 치유이적과 자연이적으로 나눈다. 치유이적은 말 그대로 병을 고치는 이적이다. 자연이적은 자연계의 상식을 초월하는 이적이다. 예를 들어 오천 명을 먹인 일,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일, 바다를 잔잔케 한 일 등이다. 예수가 바다 위를 걷는 오늘 복음도 자연이적 사건이다. 이런 자연이적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복음서의 사건은 사실로 보기보다는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자연이적은 더 그렇다. 

우선 예수의 치유이적에 대해 살펴보자. 크로산은 그의 명저 <예수>에서 예수의 치유이적의 핵심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물리적인 세계에 개입해서 질병을 치료했던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세계에 간섭해서 고통을 치유한 것이었나? 그 병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병도 치료하지 않았고 치료할 수 없었던 예수는 그 질병에 따르는 종교의례적인 불결과 사회적인 배척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가련한 사람의 고통을 치유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142쪽) 나도 크로산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율법이 지배하는 이스라엘 사회문화에서 병은 죄의 결과이다. 따라서 병자는 병에 더하여 병에 대한 정죄와 배척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예수는 율법의 정죄문화에 동조하지 않았다. 손가락질하고 외면하는 대신, 병자가 당하는 고통에 공감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감싸주었다. ‘긍휼히 여기다’가 그런 뜻이다. 애간장이 녹도록 위한다는 뜻이다. 따돌림과 배제에 눌린 병자가 자신의 병을 똑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감동이 병을 낫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본다. 흔치 않은 사건이기에 사람들은 그 치유를 이적이라고 부르지만, 치유이적의 본질은 예수가 능력자라는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민중을 늘 대상화하는 이스라엘 주류들과 달리 예수는 병자 한 사람도 대상화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데 뜻이 있다. 

자연이적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자연이적에 담긴 상징은 무엇인가? 사람의 조건이 뻔한 현실에서 절박하고 반드시 뚫어야 하는 난관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열망을 묵시적이거나 초월적 언어로 나타낸다. 성서의 많은 책들이 묵시 언어인 이유이기도 하다. 로마라는 절대권력과 이스라엘 괴뢰정권 밑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체념하지 않고 그들의 현실을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직접적인 소리가 봉쇄된 현실에서 뚫고 나갈 방법은 상징과 은유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의 후예 민중들은 고백적 언어로 자신들의 절박한 열망을 예수께 투사했다. 오늘 복음 무대는 갈릴리 바다다. 갈릴리 바다는 갈릴리 민중들에게 온갖 애환이 스며 있다. 얼마나 많은 의식있는 민중들이 죽임당해 바다에 수장됐을까? 얼마나 많은 가장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바다에 실종됐을까? 지극히 잔잔하다가도 바람불고 파도치는 사나운 바다로 돌변해서 배가 뒤집힌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갈릴리 바다는 천혜의 환경이면서도 한 서린 곳이다. 한편 천하를 제패한 로마황제도 바다에서는 쪽도 못 쓴다. 정복을 위해 위풍당당하게 군함대오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서 간신히 몸만 건진 황제도 있다. 바다는 그 자체로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는 그 바다를 걷는다. 땅을 걷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게다가 그냥 심심해서 걷는 게 아니다. 제자들이 역풍을 만나서 노를 젓는데 쩔쩔 매는 것을 보고 뭍에 있다가 바다로 들어선 것이다. 권력자가 민중의 아픔을 보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놈들은 그저 권력보전이 최고 관심사 일뿐이다. 그런데 예수는 방관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간다. 그들이 탄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혼비백산했던 제자들이 예수가 배에 오르고, 바람이 그치자, 그저 놀랄 뿐이다. 바다 위를 걷는 분, 바람을 다스리는 분. 예수의 행보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위엄이다. 즉 복음저자는 예수가 제자들의 위기 역경을 돕기 위해 로마황제도 어쩌지 못하는 성난 바다까지 잠재우시는 진짜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 치유이적이나 자연이적을 그저 간단히 이적이라고 칭할 게 아니다. 치유이적 저변에는 병자에 대한 지극한 애닮음이 있고, 자연이적 뒤에는 역경에 처한 민중을 위하는 형제애가 충만하다. 결국 사람사랑이 이적을 낳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조건은 어떤가? 미제는 동맹을 빌미로 우리 등에 빨대를 꽂고 무한정 빨아먹는다. 진짜 동맹이라면 도저히 말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마구 내지른다. 미제는 우리를 천하의 호구로 얕잡아 본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우리다. 이 나라의 외교안보담당자들은 저 미제의 파렴치한 강도같은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끌려가는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식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독립, 자주, 주권의식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이란이 미군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미제는 첨단레이더시스템이 있다면서도 단 한 발의 미사일도 요격하지 못했다. 이런 엉터리 요격무기가 이 나라를 지켜준다는 요설을 뚫자. 강제, 배치한 사드를 물리치는데서 부터 이 나라의 자주독립은 시작한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맞이할 수 있다. 미제를 두려워말고 조국애와 민중사랑으로 담대히 사드철회투쟁에 임하자. 진리가 승리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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