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겪은 과정은 우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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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겪은 과정은 우리의 길
  • 백창욱
  • 승인 2019.12.31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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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13-23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다”

2019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교회와 함께 동거동락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이 무궁하시기를 빕니다.

걸그룹 AOA의 멤버 찬미의 어머니 임천숙씨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지요? 임천숙씨 어린 시절은 정말 불우했습니다. 노름과 술에 쩐 아버지 밑에서 온 가족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린 딸들을 내몰아서 소매치기를 시켜서 돈을 벌게 했습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소매치기는 경찰에 걸린 덕에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고 나서야 끝났다. 아버지는 일 년 살고 나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자식들을 데리고 무작정 가출을 했습니다. 떠돌이 생활이지만 겨우 숨 쉬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천숙씨를 따뜻하게 거둬준 미용실 주인 덕에 천숙씨는 자기 길을 찾았습니다. “아이고마, 참 잘하네! 니는 평~생 미용해서 먹고살 팔자 같다.” 미용실 주인의 칭찬 한 마디가 어른한테서 처음 들어본 격려였습니다. 미용실을 하면서 자기같이 불우한 환경 속에서 떠도는 청소년 수백 명을 거두었습니다. 천숙씨 미용실은 청소년 아이들의 아지트고, 보호소입니다. 지금도 백 여 명이 연락을 합니다. 가정다운 가정을 갖고 싶어서 일찍 결혼했는데 남편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술과 노름으로 인생을 허비하였습니다. 남편이 진 빚을 대신 갚기로 하고 이혼했습니다. 십년에 걸쳐서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딸 찬미 이야기도 먹먹합니다. 찬미가 걸그룹에 뽑혀서 데뷔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에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소속사를 탈퇴하고 싶지만 위약금이 너무 많아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혹시 딸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릴까봐 너무 걱정됐습니다. 천숙씨는 구미에서 일 마치고 밤차로 서울 가서 딸 옆을 지키다가 딸이 출근하면, 아침 차로 내려오는 일을 두 달 간 했습니다. 나중에 찬미씨가 눈을 떠 보니까, 자기보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 엄마의 지극정성이 딸의 방황을 끝냈습니다. 지독히 불우한 환경에서 잘못되지 않고 오히려 불우한 아이들을 선도하고, 방황하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엄마 모습이 놀랍습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고백이 감사합니다. 천숙씨의 살아온 길을 보면서, 결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그룹 노래를 경청하기로 했습니다. 걸그룹 한 사람 한 사람이 극한의 과정을 거쳐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팬은 못 되더라도 무지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주일 설교본문인 마태 1장에서 마태가 이사야 7:14을 찾아서 예수 탄생을 예언자의 성취로 연결 지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구약의 성취로 연결하는 마태의 의도가 더욱 빛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가 최종적으로 나사렛 사람이 되기까지의 경로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구약 인용이 세 군데 나옵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서술로 아기 예수의 행보가 예언의 성취라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마태의 구약인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언의 성취라기보다는 마태저자가 대강 비슷한 구약 말씀을 인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인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은 꿈에 천사의 지시를 받는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라는. 그래서 요셉은 급히 피신한다. 이 일에 대해 마태는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는 호 11:1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동경로를 보죠. 요셉은 이스라엘에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호 11:1은 반대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분명합니다. “out of Egypt I called my son” 애굽으로부터(애굽에 있는) 나의 아들을 불렀다는 말입니다. 호세아 말씀의 이동경로는 요셉의 이동경로와 반대이지만, 마태는 그냥 인용했습니다.

두 번째 인용을 보겠습니다. 헤롯의 유아학살로 인해 아기를 잃은 엄마들이 크게 애통합니다.(역사 근거는 약합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헤롯의 유아학살은 바로의 유아학살을 흉내 낸 이야기 소재입니다.) 어쨌거나 마태는 렘 31:15 말씀의 성취라고 합니다. 그런데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팔 키로 위에 있는 동네입니다.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베들레헴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애통 장소인 라마와 헤롯의 유아학살이 일어난 베들레헴 근처는 지리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어쨌거나 예언의 성취라고 인용했습니다.

세 번째 인용을 보겠습니다. 요셉 가족이 나사렛으로 가서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이것 역시 예언자들이 말씀 한대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구약 어디에도 이런 말씀은 없습니다. 그래서 앞부분과 달리 구약출처가 없습니다. 이처럼 마태가 인용하는 구약 말씀이 모두 자세히 따져보면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태는 그냥 예언의 성취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요? 드라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정확성을 기해야 하는 과학논문이나 육하원칙에 충실한 역사서술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티브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현실에 비추어서 저건 사실과 달라 하면서 따따부따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행여나 문학 작품을 가지고 사실성 여부를 따지는 건 문학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짓입니다.

마태가 예수의 유아시절 이야기를 예언의 성취라고 주장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23절입니다. ‘예수는 나사렛 사람인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다. 예수가 시골 벽촌 나사렛 출신이지만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암시입니다. 이런 설정은 예수 가족의 애굽 피난이야기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기 예수 가족의 애굽 피신과 이스라엘로의 귀환, 헤롯의 유아학살 사건은 완전 모세와 판박이입니다. 모세는 예수탄생과 마찬가지로 바로가 애굽에 있는 히브리의 남자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한 와중에 살아남았습니다. 또 천사가 요셉에게 하는 말,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그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20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는 말씀과 똑같습니다. "이집트로 돌아가거라. 너의 목숨을 노리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출 4:19)
마태는 모세이야기를 그대로 예수에게 덮었습니다. 왜? ‘예수도 날 때부터 민족의 지도자 모세와 같은 고난을 겪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기에 충분하다’는 암시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셉가족의 생존분투기입니다. 요셉은 아기와 아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안주하지 않습니다. 피난민, 떠돌이, 난민을 감수합니다. 생존을 위한 성실한 분투로 그리스도를 보호합니다. 우리 선조도 구한말부터 생존을 위해 조상 땅을 떠나서 중국으로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피난 갔습니다. 떠돌이 난민신세였습니다. 이스라엘만 디아스포라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못지않은 디아스포라입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우리의 선조들도 난민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면, 또 우리도 언제 신세가 바뀔지 모른다는 운명을 생각하면, 낯선 손님에게 잘해야 합니다. 백인에게는 특히 미국인에게는 관대하고 동남아시아 사람에게는 매정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어제 교회 카톡에 올린 그림에서 보듯이, 피난하는 요셉가족이 백인 금발이 아니고 이주노동자 행색입니다. 어느 게 더 역사사실에 가까운가요. 우리의 판단근거에는 많은 오류장치들이 얽혀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류를 조금이나마 방지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생존을 위한 분투에 하나님이 끝까지 동행합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요셉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중요한 고비마다 지시하고 길을 인도합니다. 임천숙씨가 미용실 원장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도 회고해 보면 중요한 고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요셉만 특별히 이뻐하셔서 그의 길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같은 은총으로 임하십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꿈으로 지시하지 않고, 여러 다른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성서말씀에 감동을 주거나, 기도 중 마음에 세미하게 일어나는 감동이나, 특히 각 사람의 환경에 맞게 인도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인도는 일상입니다. 일상에서 만나고 보고 겪는 일들이 모두 주님의 인도입니다. 저는 한 주 동안 겪은 일들,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일들을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의 인도가 특별히 따로 오지 않고 일상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나사렛 사람이라는 불리함을 가지고 예수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시골벽촌 변두리라고 주눅 들지 않고 기득권 주류들의 세상에 도전했습니다. 같은 민중들끼리 새 세상을 찾았습니다. 그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렸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 안에 거하듯이, 우리에게도 당신 안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 15:7) 우리 역시 나사렛 출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가 겪은 과정은 우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역경을 두려워 마십시오. 올 한 해도 최선을 다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합니다. 더욱 멋진 예수인이 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본 글은 주일설교문(19. 12. 29) 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 송년주일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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