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신음하는 마을에서 뜻 깊은 성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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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에 신음하는 마을에서 뜻 깊은 성탄예배
  • 새마갈노
  • 승인 2019.12.2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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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2:13-14 “하늘군대가 나타나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성탄절 때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저 듣기 좋은 주례사가 아니다. 누구나 부르기 좋은 무난한 노래가 아니다. 당시 로마황제가 들으면 몹시 기분상할, 체제전복적인 노래다. 민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사에 당대 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 있듯이, 오늘 복음도 권력비판으로 가득하다. 이 노래에는 어떤 저항이 숨어 있을까? 13절을 보면, 하늘군대가 등장한다. 왜 이런 군사용어를 쓸까? 무슨 의도일까? 하늘군대는 두말할 것도 없이 로마군대에 대한 상대어이다. 로마군대는 천하무적이다. 오직 물리력으로 세계를 지배한다. 팍스로마나의 중심이다. 로마시민들은 로마군대가 한없이 자랑스럽고 이쁘겠지만, 정복당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로마군대 만큼 저주스러운 상대도 없다. 누가 이들을 제압하랴? 누가 내 원수를 갚아주나! 오직 하늘군대만이 로마군대를 평정할 수 있다. 즉 하늘군대의 등장은 로마군대에 한맺힌 이들의 원성, 비명, 외침, 아우성이다. 로마군대를 거꾸러뜨려야 그 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임을 노래한다. 

사진은 소성리 사드 일기 카페에서(http://cafe.daum.net/tjdwn4d)
사진은 소성리 사드 일기 카페에서(http://cafe.daum.net/tjdwn4d)

체제변혁은 노래 가사에도 담겨 있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노래 앞과 뒤가 짝이 맞지 않다. 
우선 뒤부터 보면, ‘땅에서는 평화’라고 했다. 그럼, 앞에는 운율에 맞춰서 ‘하늘에서는 영광’이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이 노래말을 따서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서는 하늘이라고 말하는 대신, 다른 단어를 쓴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새번역) ‘하늘 높은 곳에는’(공동번역)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개역개정) 등이다. 왜 간단하게 땅의 상대어인 하늘이라고 하지 않고 ‘더없이 높은 곳’이나 ‘지극히 높은 곳’이라고 말한 것일까? 이 표현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자리다. 존엄한 신의 아들의 보좌를 말한다. 더없이 높은 곳 그 자리에는 언제나 ‘황제의 영광’ 이 있다. 그런데 황제의 영광은 어떤 영광인가? 폭력과 독점으로 누리는 영광이다. 모든 사람을 말발굽 아래 제압하고 차지한 영광이다. 저자(민중)는 그런 황제의 영광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을 넣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황제의 영광과 정반대이다. 오직 가장 낮은 자를 위한 자비와 은총이다. 그래서 그 영광은 자연히 땅에서 가장 낮은 자에게 제일 먼저 전해진다.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 예수의 탄생소식이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알려졌다는 것은 그 자체가 메시지다. 이 풍경은 목가적인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당시 목자들은 죄인 중 죄인이다.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다. 누구보다도 현실에서 위로와 새 세상에 대한 갈망이 절실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일부러 목자들에게 구주예수탄생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예수탄생 자체가 기존 질서 대신 새 세상을 연다는 뜻이다. 

그저 성탄절 때마다 기분이 들떠서 부르는 이 말에 이처럼 엄청난 전복적인 내용이 있는 줄 알면, ‘어마 뜨거라’ 하고 부르기를 주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 예수 탄생은 팍스로마나를 거부하고 새 세상이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내가 인정하든 부인하든 진실이다. 모순과 불의로 가득한 현세를 그대로 추인하는 그리스도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눌리고 빼앗기고 신음하는 민중의 세상을 변혁하지 못하는 그리스도라면 무슨 보람이 있는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고 환영하는 사람이라면 예수의 노선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사진은 소성리 사드 일기 카페에서(http://cafe.daum.net/tjdwn4d/E6wK/1273)
사진은 소성리 사드 일기 카페에서(http://cafe.daum.net/tjdwn4d/E6wK/1273)

어제 삼평리에서는 뜻 깊은 성탄예배를 했다. 국가폭력에 신음하는 마을들, 소성리-삼평리-밀양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를 위로하고 우리는 연결돼 있음을 확인했다. 이 마을들은 모두 국가폭력에 억눌린 공통점이 있다. 평택, 제주 강정, 밀양의 마을들, 청도 삼평리, 성주 소성리는 공권력의 폭력에 신음하는 마을들이다. 이 중 평택, 강정, 소성리는 우리 땅을 전진기지로 이용하는 미제의 패권이 배경에 있다. 이 땅 정권은 미제새끼들을 떠 받드느라 제 나라 시민 숨통을 조이는 일을 거리낌없이 행사하고 있다. 미제의 강압에 꼼짝 못하는 이 땅 현실에 우울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민중은 좌절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시 일어난다. 그 어디에서도 정권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지금도 줄기차게 모여서 폭력을 규탄하고 평화를 되찾고자 저항한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있다. 로마군대를 평정하는 하늘군대를 의지하며, 폭력으로 독점하는 황제의 영광 대신 낮은 자, 약한 자들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뒤에 있다. 그 힘으로 평화를 구하는 발걸음을 뗀다. 하늘이 우리 편이다. 정의 진실 양심이 이길 수밖에 없다. 이 신심으로 사드철회투쟁을 완수하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아멘. 

* 본 글은 진밭교 평화기도회(19. 12. 26)로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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