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하나님의 구원행동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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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하나님의 구원행동의 상징
  • 새마갈노
  • 승인 2019.12.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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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2:1-14 “하늘군대가 나타나다”

성탄절 구주 예수님 은총이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가득하시기를.

오늘 본문은 역사적으로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제는 이런 말을 해도 여러분이 혼란을 느끼지 않는 것에 대해 목회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맹목적인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성서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저자는 역사적 소재를 빌려서 예수 탄생에 관해 멋진 이야기를 창작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육하원칙에 근거하여 사실이 무엇이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고대인들의 언어방식은 우리와 다릅니다. 고대인들의 이야기방식은 신화입니다. 신화적인 이야기로 그들 세계 진실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에 관한 성서말씀에 대해 분간력을 가지게 된 데는 역사 예수 학자들의 공이 큽니다. 대표적인 역사예수 학자인 크로산은 오늘 본문이 사실이 아닌 점을 몇 가지 말합니다.

첫째는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투스 통치 때에 범세계적인 인구조사가 없었습니다. 저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중 여섯 번째 책은 아우구스투스가 이룩한 팍스로마나에 대해 썼습니다. 그 책에도 인구조사 이야기는 없습니다. 둘째는 호구조사를 하는 이유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세금징수에 가장 좋은 방법은 현주소에서 받는 겁니다. 오늘 본문처럼, 인구조사를 위해 모든 사람이 고향 본적지로 돌아갔다 온다는 것은 그 때나 오늘이나 행정적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등록 칙령은 다윗의 인구조사를 떠올립니다. 다윗은 권력과시를 위해 인구조사를 시행하지만, 그 일로 하나님께 심판 받습니다.(삼하 24장) 마찬가지로 황제의 호구조사 칙령은 정치권력의 오만함과 타락을 암시합니다.

크로산은 『예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구조사와 납세등록을 위해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행은 완전히 꾸며진 이야기이다. 예수의 부모로 하여금 예수의 출산을 위해 베들레헴에 있게 만드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누가 자신의 상상으로 창작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본문을 역사지식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누가 저자가 창작을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 속의 진실을 캐는 일입니다. 오늘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이야기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습니까? 이 본문을 접할 때마다 늘 아리송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13절 하늘군대입니다. 왜 하늘군대가 등장하지? 하는 의문점이 있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드디어 오늘 하늘군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황제와 아기 예수를 대조하는 여러 상징들이 출현합니다.
제일 우선 눈에 띄는 대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포대기에 싸인 그리스도 주님입니다. 두 사람 모두 구세주 주님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팍스 로마나를 이룬 로마의 초대 황제입니다. 내전을 끝내고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를 가져온 인물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원로원이 그에게 ‘신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가이사(카이사르)보다 더 영예로운 이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목자에게 말하는 10, 11절은 황제에게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소아시아에서 발견한, 기원후 9년의 한 비문에는 카이사르가 이 세상 전체에 ‘평화’를 가져온 ‘우리의 하느님’이며 ‘구세주’로서 그의 출생은 세상에 ‘기쁜 소식’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황제 주님에게만 쓰는 표현을 아기 예수에게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복음서는 그들만 듣는 비밀문서였다고 생각합니다. 로마권력이 황제의 전유물을 그대로 차용하는 집단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대조되는 것은 말과 말구유입니다. 말은 군사력의 상징입니다. 황제는 최고로 멋있는 군마를 타고 위용을 과시합니다. 오늘날 성능 좋은 최신예 전투기가 군사력의 상징이듯이, 고대에는 잘 훈련된 말이 군사력의 상징입니다. 정복의 상징으로 말발굽 아래 놓였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는 그 말의 먹이통에 피동적으로 눕혀 있습니다. 황제는 정복하고 빼앗아서 물리력으로 평화를 이루었지만, 말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는 자기가 먹이가 돼서 평화를 이룹니다. 전쟁의 동물을 평화의 동물로 바꿉니다. 아기 예수는 제국의 지배방식을 통째로 뒤집습니다.

아기 예수의 표징은 황제의 표징과 비교할 때 가장 극적입니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12절) 그리스도 주님이시라는 표징이 온갖 치장을 입힌 백마에 올라탄 황제 같은 모습이 아니라,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갓난아기입니다. 이것은 황제의 위용을 조롱하는 강력한 풍자이기도 하고 무력으로 이룬 팍스로마나를 허무는 결정타이기도 합니다.
 
이제 하늘군대를 말씀하겠습니다. 왜 군대라는 용어를 썼나요? 두말할 것도 없이 로마군대와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천하무적 로마군대가 대오를 갖추고 깃발 들고 정복지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정복해서 사람을 닥치는 대로 도륙합니다. 전리품을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입니다. 로마군대는 로마시민에게만 기쁨일 뿐, 다른 나라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로마군대는 정복자만 좋은 평화를 이룹니다. 우리가 미제의 평화를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미제가 선전하는 평화는 한반도에는 굴욕이고 수탈이고 제 숨 편히 못 쉬는 신음입니다. 그 세월이 74년입니다. 분단 80년을 넘기지 말아야 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습니다. 615 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우리나라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찾아 실현하는 일입니다. 통일방안을 실현하는 가운데 사드철회하고, 종전선언, 평화협정 하고, 한미동맹과 조중동맹 등을 폐기합니다. 통일한국은 중립국으로 가는 게 최선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군대가 있습니다. 하늘군대는 평화를 위해 로마군대를 평정합니다. 하늘 군대는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노래합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 로마황제가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무력과 독점이 없는 영광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낮은 자를 위한 영광입니다. 그래서 그 영광은 자연히 땅에서 가장 낮은 자에게 제일 먼저 전해집니다. 하늘군대는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지켜줍니다. 하늘군대가 있기에 정의와 진실을 향한 투쟁이 결코 질 수 없습니다.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로마황제와 대조되는 아기 예수의 탄생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요? 예수는 어둠을 비추는 빛입니다. 밤에 들에서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난 현상은 빛입니다. 빛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목자는 일세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자들입니다. 한 밤 중에 양 떼를 지키고 있는 신세가 그들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말합니다. 그들에게 예수 탄생소식이 전해집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10-11절)
 
빛은 하나님의 구원행동의 상징입니다. 빛이 어둠을 밝힙니다. 어둠에 신음하는 민중에게 새 소식을 전합니다. 새 소식은 다른 그리스도 주님이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소식입니다. 이 빛은 오늘 우리에게도 비추입니다. 우리가 어둠의 현실에 좌절하지 말라는 기운입니다. 분쟁현장에서 권력이 무력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하지만,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민중은 다시 일어납니다.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어둠의 권세를 제어합니다. 그리스도 주님은 그 빛의 원천입니다. 구주 탄생을 기뻐하십시오. 어둠에서 신음하는 우리를 위해 오신 분입니다. 기쁨의 기운으로 예수 따라 진리 따라 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본 글은 성탄절 설교문(19. 12. 25)으로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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