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위해 폭행의 질서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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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위해 폭행의 질서 버려야
  • 백창욱
  • 승인 2019.12.13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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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 평화기도회

오늘은 전두환 일당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꼭 40년 되는 날이다. 1979년 12월 12일 보안사 사령관 전두환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 일당을 움직여서 계엄사령부를 진압하고 사령관을 체포했다. 북한군의 침략에 대비해서 전방을 지켜야 할 부대를 후방으로 이동시켜 군사반란에 이용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전두환은 졸지에 대한민국의 실권자가 됐다. 쿠데타를 합법적 권력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권력찬탈 시나리오를 가동했다. 그 음모를 알아챈 광주민중들이 항쟁을 일으키자, 학살로 응답했다. 제 나라 국민을 지키라고 있는 국군이 제 나라 국민을 무참히 살육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두환을 단죄해야 나라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미국은 전두환 권력찬탈 시나리오에 어디까지 개입했는가 이다. 의문의 근거는 미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이다.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한국군이 미국 모르게 대규모 부대이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다. 어림없는 소리다. 전두환 일당은 미국의 허락 아래 부대이동을 했다. 전두환 배후에는 미국이 있는 것이다. 그 때 미국 대사 글라이스틴도 전두환 정권 세운 것을 가장 큰 보람이라고 지껄이지 않았나. 금년 5월에는 미국 정보요원인 김용장씨가 전두환의 광주 행적을 증언하기도 한 바, 미국은 전두환을 통제한 게 분명하다. 미국은 박정희 유신독재가 끝나고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천신만고의 기회를 빼앗았다. 광주항쟁 시민 학살을 방조, 교사한 원흉이다. 미국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배신한 것부터 한국의 민주주의를 엎은 것, 가장 최근 소성리에 사드를 박아 놓은 것, 한국 정권을 협박해서 지소미아를 연장시킨 것, 미군 주둔비를 6조원 뜯어내려는 것까지 모든 면에서 철천지원수다.

나는 전두환이 자행한 비극의 역사를 84년 가을에 알았다. 복학 후 학교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다가 대자보를 봤다. 게시판은 광주항쟁의 전말로 도배했다. 그 대자보를 꼼짝도 않고 다 읽었다. 그리고 한참 붙박이로 서 있었다. 어떻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이런 비극이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런 비극을 어째서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말인가. 자연히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돌아보았다. 나는 학교와 집, 교회만 규칙적으로 다녔다. 뭘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광주를 말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분신과도 같은 교회에서도 광주의 비극을 듣지 못했다. 그 때서야 비로소 내가 속한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가을학기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국 근현대사와 한국 신학을 독학하고 난 후,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전향했다. 한국교회를 점령한 근본주의신학과 문자주의와 결별했다. 오늘 복음과 연관지어 말하자면, 사람을 폭행하는 종교를 버리고 새 종교를 찾아 나섰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다. 나의 뼈아픈 경험 때문에, 우리 교우들이 청맹과니가 되지 말라는 뜻에서, 반드시 오늘날 시국에 대해서도 설교한다.

오늘 복음말씀은 난해하다. 한글번역본마다 뜻이 다르다. 나는 공동번역을 택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이해하기 좋도록 하늘나라 대신에 민중을 넣었다. 하늘나라와 민중은 동의어다. 하늘나라는 민중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하듯이, 민중도 폭행을 당해왔다. 누가 폭행하는가? 지배권력이다. 세례 요한을 보면 안다. 요한은 어떻게 죽었나? 누가 죽였나? 요한은 민중을 지배세력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세례운동을 했다. 민중을 끝없이 속박하는 성전제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물세례를 주었다. 짐승 제사로 속죄하는 대신 물세례로 새 사람을 만들어줬다. 권력은 요한의 세례운동 기세가 민중들 속으로 크게 번져나가자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죽였다. 그렇게 민중 편에 선 사람과 그를 따르는 무수한 민중이 폭행을 당한다. 요한이 허무하게 죽은 것처럼, 하늘나라도 민중도 허무하게 폭행당하듯이 보인다. 그러나 끝이 있다. 그런 폭행도 요한의 때까지다. 이스라엘과 민중을 지배하던 예언서와 율법이 영원할 것 같지만, 요한에게서 끝난다. 그 다음은 무엇이 오는가? 복음저자는 복음이라고 불렀다. 예언서와 율법을 등에 업은 폭행의 시대를 끝내고, 뛰어넘는 새로운 말이다. 요한은 복음이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도록 예비하는 마지막 마중물이다.

미제와 미제의 통제를 받는 안보마피아는 주구장창 한미동맹을 구실로 민중을 폭행한다. 나라의 미래지향적 가치들을 삼켜버린다. 끝없는 군비확장으로 자기들의 탐욕그릇을 넓히기만 바쁘다. 내년 나라 예산이 500조가 넘으면서 국방부 예산도 50조가 넘어버렸다. 이 어마어마한 돈이 이 나라를 자주국방, 주권독립국가로 가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나라 군사력은 세계 7위라는데 슬프게도 나라의 핵심 주권인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다. 안보 명목으로 돈을 쓰면 쓸수록 더욱 미제에 예속되는 폭행을 당한다. 어떡하면 좋은가? 기존의 틀을 끝내고 뛰어넘어야 한다. 새로운 질서를 살기 위해서는 폭행의 질서를 버려야 한다. 안보, 한미동맹, 적대노선 대신 평화, 화해, 동포애가 있다. 언제까지 폭행당하며 살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폭행을 끝내자. 사람을 해방, 자유, 구원시키는 복음으로 살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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